[의학 역사] 마을 전체를 사라지게 만든 ‘각기병', 닭장에서 해결되다? | 밸류체인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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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유제욱 수습기자] 1897년 어느 날 새벽, 한 남자가 닭장을 배회했다. 반쯤 눈을 감은 채 졸고 있던 닭들은 밤 동안 굳어버린 다리 근육 때문에 도망치지도 못하고 구구 소리만 냈다. 벌써 몇 년째 이 닭장을 드나들고 있는 남자는 네덜란드인인 크리스티안 에이크만이다. 그가 오랫동안 닭장을 들쑤신 경험은 훗날 인류가 비타민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밑거름이 된다.
에이크만은 1886년,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동인도의 각기병 조사원이었다. 각기병은 비타민 B1이 부족할 때 발생하는 영양 결핍 증상이다. 병에 걸리면 팔 다리가 부으며 신경 염증이 생긴다. 악화될 경우 심장병이나 경련으로 사망할 수 있다.
각기병은 당시, 동인도 도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질환이었다. 마을 사람 전체가 각기병에 걸려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각기병은 군대 내에서도 유행했는데 각기병이 군사력 손실을 초래하자 네덜란드 정부는 각기병 조사원을 급파했다.
19세기 말쯤에는 루이 파스퇴르와 로베르트 코흐의 연구를 토대로 한 ‘미생물 병원체설'이 각광받았기 때문에 각기병 조사원 에이크만은 각기병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원인균에 의해 발생하는 전염병이라고 추측했다.
미생물 병원체설이란 ‘대규모로 발병되는 질환 뒤에는 반드시 원인균이 존재한다’는 이론으로 에이크만이 조사하던 시기에는 이미 한센병(나균), 임질(임균), 장티푸스(티푸스균), 폐렴(폐렴구균), 결핵(결핵균), 콜레라(콜레라균) 등의 많은 질병 원인균이 밝혀져 있었다.
에이크만은 코흐의 연구실 경력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생물 병원체설을 받아들였다. 그는 각기병의 원인균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곧 난관에 봉착했는데 그가 예상했던 미생물 병원체설과는 다르게 각기병은 전염력이 없었던 것이다.
에이크만은 4년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원인균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닭을 관찰하게 됐다. 여느 건강한 닭들과는 다르게 비틀거리며 쇠약해진 몇몇 닭들이 그의 눈에 띄었다. 각기병에 관한 그의 집념 때문이었는지 그는 닭의 증상을 각기병과 연관시켰고, 바로 연구에 들어갔다.
연구가 한창일 때, 그는 닭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닭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가 연구하던 비실비실한 닭들이 사라지고 건강한 닭만이 남아있었다. 이상한 것은 닭들의 마리 수를 세어보니 전체 닭의 수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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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을 수도 있던 닭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는데 며칠 만에 회복된 것을 보고 에이크만은 곧바로 상황을 분석했다. 조사 결과, 닭장에 일어난 변화는 관리인 교체로 비롯된 닭의 사료 변화였다. 사료를 백미에서 현미로 바꿨을 뿐인데 각기병에 걸린 닭이 회복된 것이다.
현미는 쌀과 같은 종자이며 가공방법에만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료 변화는 닭의 소생과 무관해 보였다. 그러나 닭을 이용해 몇 번의 실험을 진행한 결과, 현미를 먹인 닭들은 언제나 건강했고 백미만 먹여 골골 해진 닭도 현미를 주었을 때 빠른 회복력을 보였다.
에이크만은 현미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가 인근 교도소에서 같은 방법의 실험을 진행한 결과, 현미는 닭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실험결과를 정부에 보고했고 동인도 각기병 유행지역에 현미가 보급되며 각기병은 자취를 감춘다.
에이크만은 현미가 각기병 치료제임을 밝혔지만 원리는 알아내지 못했다. 현미가 각기병을 치료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현미에 비타민B1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이는 폴란드 태생의 미국 생화학자 풍크에 의해서 발견된다. 그러나 에이크만은 원인을 밝혀낼 수 없었지만 각기병으로 인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구출한 공로를 인정받는다. 10년간 각기병 치료만 강구하던 그는 192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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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유제욱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