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은 현실이 되고, 현실은 꿈이 되다 – 살바도르 달리 | 밸류체인타임스

황지민 인재기자
2025-02-19
조회수 4687

(출처: http://p3.storage.canalblog.com/31/08/1299180/104191582_o.jpg 캡처본)


[밸류체인타임스=황지민 수습기자] 시간이 녹아내리고, 사물은 본래의 형태를 잃은 채 비현실의 공간을 떠돈다. 마치 꿈에서 걷는 듯한 기묘한 풍경들. 이러한 세계를 현실에 입힌 화가가 있다. 바로 초현실주의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다. 그는 단순한 화가가 아니라, 상상력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예술적 연금술사’이자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문 예술가였다.


달리의 작품은 무의식의 세계를 탐험하며, 인간의 꿈과 광기,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선사한다. 그의 그림 속에서 녹아내리는 시계, 허공을 떠도는 형상, 뒤틀린 자연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인간 내면 깊숙이 자리한 감정과 기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살바도르 달리는 어떤 예술가였으며, 그의 작품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기묘하고 매혹적인 달리의 세계로 발을 들여보자.




현실을 거부한 소년의 첫걸음


1904년 5월 11일, 살바도르 달리는 스페인 카탈루냐의 프랑스 국경과 인접한 엠포르다 지역의 피게레스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카탈루냐계 변호사이자 공증인이었던 '살바도르 달리 이 쿠시(Salvador Dalí i Cusí)', 어머니는 '펠리파 도메네크 페레스로, 둘 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1903년 첫 번째 '살바도르 달리' 즉, 달리의 형이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아 뇌수막염으로 사망했다. 이듬해 1904년 두 번째 살바도르 달리, 우리에게 익숙한 달리가 태어났다. 첫 아이가 뜻하지 않게 죽고, 다음 해 태어난 달리를 형의 환생이라고 생각한 부모는 형과 같은 이름인 ‘살바도르 달리’를 붙여주었다. 


그는 다섯 살 때 부모님을 따라 형의 무덤으로 가서 자신이 형의 환생이라는 말을 듣는다. 어린 나이에 죽은 형의 환생이라고 불리는 일은 당연히 그에게 여러 측면에서 복잡한 영향을 미쳤다. 이에 대해 달리는 "나는 결코 죽은 형이 아닌, ‘살아 있는 나’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다"라고 인터뷰한 바 있다. 그는 평생 애정 결핍과 ‘자기 증명’의 강박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배경 탓인지, 달리는 어릴 적부터 기이하고 독창적인 성향을 보였다. 그림에 대한 열정 역시 남달랐고, 부모도 일찍부터 그의 재능을 알아봐 1916년 미술학교에 입학시켰다.  당시 달리는 유럽사회에서 유행하던 인상파를 주로 접했고,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달리의 초기작들은 인상주의 회화 느낌을 풍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달리는 더 많은 화풍들을 접하게 된다. 기계문명의 발달로 기계문명의 속도와 특징을 담아낸 미래파 화풍, 시공간을 마음대로 조작해 작품 속에 표현해내는 입체파 화풍은 달리를 매료시켰다. 이 시기에 그려진 달리의 작품 속에선 입체파와 미래파, 그리고 입체파 화풍이 혼재된 인상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당시 달리는 스페인 마드리드 왕립 미술학교(Real Academia de Bellas Artes de San Fernando)에 진학하기에 이른다.


"아무것도 흉내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는 사람이다."

-살바도르 달리




천재와 광기의 경계에서 초현실주의를 만나다


(출처: https://www.crystalking.com/dali 캡처본)


1922년, 스페인의 마드리드 왕립 미술학교(Real Academia de Bellas Artes de San Fernando)에 입학한 달리는 학교 안에서 멋쟁이로 소문이 난다. 유난히 자신을 꾸미고 표현하는 데 관심이 많았던 달리는 특유의 댄디하면서 우아한 모습으로 이목을 끌었다. 달리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는 자신이 존경하던 스페인의 고전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를 오마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입체파 화풍에 심취해, 당시 마드리드에서는 보기 드문 입체파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로 인해 달리의 독특한 화풍은 눈에 띄었으며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23년에 그려진 <Last Night Dreams>는 입체파와 미래파 영향이 모두 어우러진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다양한 시공간과 기계문명이 어우러진 모습을 담으며, 달리는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했다.


달리는 '프로이트'와 '로트레아몽' 책을 즐겨 읽었다. 두 사람 모두 무의식을 다뤘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을 정신분학적으로 밝혀내려한 학자였다. 또한 '로트레아몽'은 무의식을 작품 속에 녹여낸 19세기 시인이었다. 알듯 말듯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의식의 세계는 달리에게 새로운 영감이 되었다.


"사람들은 미스터리를 사랑한다. 사람들이 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다."

-살바도르 달리




초현실을 향한 여정


1926년, 달리는 왕립학교를 떠나 전시 활동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학교를 나온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후 여러 전시회를 열면서 작품 세계를 확장해갔다. <Composition with Three Figures>(1926)는 관람객 평단의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극찬을 받았고, 달리의 이름을 미술계에 각인시켰다. 


1927년 기점으로 달리의 화풍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현실적인 이미지가 사라지고, 의미가 모호한 기호와 상징이 전면에 드러난 것이다. 이는 유럽 전역에서 태동하던 초현실주의의 흐름과 맞물려 있었다. 


초현실주의는 당시 전쟁 이전의 사회를 지탱하던 가치관에 대한 회의로 탄생한 화풍이었다. 소위 이성이라 믿어온 것들이 되려 전쟁과 같은 비극을 만들어내자 예술가들은 고민에 빠졌다. 이때 프로이트를 비롯한 학자들에 의해 '무의식'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대두되었는데, 예술가들은 이미지의 개념에 매료됐다. ‘도덕적인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난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을 순 없을까?’라는 질문은 초현실주의가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나 인간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는 각종 이미지를 꺼내는 실험이었다.


이 무렵 그려진 달리의 <꿀은 피보다 달콤하다>는 미래파와 입체파가 녹아 있는 동시에, 초현실주의적인 상징이 가득한 작품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꿈같은 이미지와 갖가지 상징들, 그리고 불명확한 소재임에도 정교한 묘사와 풍부한 빛의 표현으로 평단에선 이 작품을 두고 달리가 본격적으로 초현실주의자가 된 것은 아닌지 토론이 열리기도 했다.


"난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정상적이지 않을 뿐"

-살바도르 달리


프로이트의 영향으로 달리의 작품 속에는 무의식에서 나타날법한 관능적이면서 상징적인 기호들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달리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담아냈다. 1928년에는 <불만족스러운 욕구>라는 작품을 바르셀로나의 한 갤러리에 출품하지만 거부당하고 만다.


갤러리는 '특정 감정에 준비가 덜 된 관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대다수의 갤러리에 맞지 않는 작품'이라며 거부한 이유를 붙였다. 이 문제작은 바르셀로나 언론에 대서특필이 됐고, 달리와 그의 파격적인 화풍은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작품에서도 달리는 무의식적 욕망을 그리는 작품들을 계속해서 선보이며 전시를 이어나갔다.


하루는 파리에서 자신의 초현실주의 작품들로 전시를 선보였는데 이 당시 미술관에 찾아온 사람 중엔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도 있었다. 브로통은 당시 초현실주의의 창시자라 불리는 시인이자 화가였다. 그는 달리의 그림을 '여지껏 역사 속에 만들어진 모든 작품 중 가장 환상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이후 달리는 브르통의 주창 아래 만들어진 초현실주의 그룹에 합류하게 된다. 


"초현실주의는 파괴적이다. 하지만 우리의 시야를 가리는 것만 파괴한다"

-살보드르 달리




꿈과 무의식의 화가로 거듭나다


(출처: https://www.safe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21 캡처본 / 기억의 지속)


자신만의 초현실주의 화풍을 계속해서 실험하던 달리는 1931년 마침내 자신의 걸작 '기억의 지속'을 탄생시킨다.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의 정수로 평가를 받는다. 마치 꿈을 그려 넣은 듯한 모습 속 낯설고도 익숙한 상징물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특히나 작품 속 흘러내리는 시계는 상상력을 자극했다.


불변의 가치로 여겨지는 시간의 개념도 무의식 속에선 너무도 쉽게 변해버렸다. 일부 비평가들은 이 작품이 1930년대에 유행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영향을 받았다고도 평가했다. 하지만 달리는 이러한 의견에 반대했다. 자신은 상대성이론이 아니라 태양에 녹는 까망베르 치즈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달리는 꿈속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무의미하고 애매모호한 형상에 집중했다. 평상시 우리의 무의식에 떠도는 소재들은 꿈속에서 마구 결합된 상태로 나타난다. 때문에 달리의 작품들 속의 이미지들도 복합적이고 무의미한 형태를 띠었다.


(출처: https://www.safe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21 캡처본 / 기억의 지속)


'기억의 지속' 작품 가운데에는 구겨진 유체가 보인다. 많은 평론가들은 마치 오리처럼 보이는 물체를 살바도르 달리 본인이라 추측하고 있다. 마치 꿈속에서 마주한 사람의 얼굴이 다음날 깨어나선 잘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분간하기 힘든 형상을 띠고 있다.


기억의 지속이라는 작품 특유의 분위기와 상징은 '초현실'과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사람들에게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이후 녹는 시계는 초현실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혼란에 퍼트리는 것이다.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살바도르 달리


달리는 이후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예술가로 거듭난다. TV쇼나 영화 속에서도 본인 스스로와 예술 세계를 전파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특히나 초현실주의 예술가로서 특이한 행동들을 선보이며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다. 달리는 항상 자기 자신이 초현실주의 자체라고 말했다. 더 다양한 작품과 함께 살바도르 달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각인되며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성장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초현실주의 작가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유럽의 많은 예술가들은 체제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도 초현실을 통해 기존 사회 체제의 불안정을 짚어내는 것이 예술가의 사명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달리는 항상 모호한 입장을 내비쳤다. 또한 순수함과 엄격함을 추구하던 초현실주의 예술가들 사이에서 농담과 조소로 가득찬 달리의 언행은 눈밖에 나기도 했다. 결국 초현실주의 그룹의 창시자 브르통은 달리를 그룹으로부터 제명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는 이에 개의치 않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이 시기엔 다양한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사진, 영화 등 20세기에 새롭게 발전한 매체를 활용하여 예술 표현의 범위를 넓혀나갔다. 


1937년 이탈리아 여행을 계기로 고전주의 회화를 다시금 자신의 작품을 녹여내곤 했다. 가톨릭의 신비성뿐만 아니라 원자 과학과 같은 새로운 영역 또한 예술에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달리의 도전과 변화는 끝이 없었다.


"초현실주의자와 나 사이의 차이점이라면 나는 초현실주의자라는 것이다"

-살바도르 달리




현실을 거부하던 소년의 말년


말년에 들어서 달리는 무대연출이나 미술관 천장화, 입체 작품 등 작품의 스펙트럼을 한층 확장했다. 하지만 1980년, 76세가 되던 해, 갑자기 온 중풍의 영향으로 달리는 붓을 잡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 작품활동을 더 이어갈 수 없었다.


이 시기에 달리의 오랜 뮤즈였던 아내 갈라(본명은 옐레나 이바노바 디야코노바(Елена Ивановна Дьяконова)와도 불화가 잦았다. 정작 갈라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달리는 삶의 의지마저 잃고 만다. 1984년 달리의 저택에 화재가 발생해 가까스로 구조되는 사고도 있었는데, 일부에선 달리가 스스로 방화를 저질렀다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이후 1989년, 초현실주의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는 고향 피게레스의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내 시계가 어디갔지?"

-살바도르 달리


살바도르 달리는 생전에도, 사후에도 늘 평가가 엇갈리는 예술가다. 때로는 초현실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거장으로, 혹은 명성에 굶주린 화가로 불린다. 하지만 아무도 그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의 대가였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최고의 즐거움을 경험한다. 그것은 내가 살바도르 달리라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와 작품에 대한 확신으로 끊임없이 독특하고 신비로운 세계를 탄생시킨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속에서 당신은 어떤 것들을 마주하고 있는가? 그가 남긴 작품은 지금도 우리를 비현실의 공간, 그 경이로운 상상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저작권자 © 밸류체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밸류체인타임스 = 황지민 수습기자]

0


경기도 부천시 삼작로108번길 48, 201호

대표전화 02 6083 1337 ㅣ팩스 02 6083 1338

대표메일 vctimes@naver.com


법인명 (주)밸류체인홀딩스

제호 밸류체인타임스

등록번호 아53081

등록일 2021-12-01

발행일 2021-12-01 

발행인 김진준 l 편집인 김유진 l 청소년보호책임자 김유진



© 2021 밸류체인타임스.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