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모드리치의 어린 시절
[밸류체인타임스=최한성 수습기자] 루카 모드리치는 1985년 9월 9일 크로아티아 자다르에서 태어났다. 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와 전쟁 중이었다. 모드리치 가족은 세르비아군을 피해하기 위해 난민의 길을 선택했다. 전쟁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모드리치 가족은 작은 호텔에서 지내야 했고, 가족의 가난은 벗어나기 힘든 실정이었다.
축구를 좋아했던 모드리치는 호텔 주차장에서 공을 차며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크로아티아가 전쟁이 끝나자 모드리치 가족은 고향에 돌아왔지만 집은 이미 불타고 없어진 상황이었다. 모드리치는 11살에 나이로 자다르의 유스클럽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자다르의 유스코치는 모드리치를 강하게 키웠다.
모드리치는 낮은 무게 중심 덕분에 키가 큰 선수들에 비해 빠른 방향전환을 할 수 있었고, 이는 훗날 모드리의 탈압박 기술의 근간이 됐다. 2001년이 되면서 모드리치 축구인생사에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크로아티아 최고 축구클럽 디나모 자그레브 입단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디나모 자그레브는 모드리치와 10년 장기계약을 체결했다.
디나모 자그레브와 시작된 인연
디나모 자그레브는 모드리치를 보스니아리그로 보냈다. 모드리치는 근육부상으로 쉽지 않은 프로생활을 시작해야만 했다. 하지만 모드리치는 빠르게 회복해 22경기 8골로 18세의 나이로 보스니아리그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는 기적을 거둔다. 모드리치는 다음해 인테르 자프레시치로 임대를 가 2005년 팀을 리그 2위까지 올려 놓는다.
2005년부터 모드리치는 디나모 자그레브의 성인팀 주전으로 뛰기 시작했다. 당시 함께 임대생으로 돌아온 동기가 촐루카였다.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촐루카와 모드리치는 팀의 핵심으로 뛰며 리그 우승, 컵대회 우승을 거머쥐면서 3년 연속리그 우승이라는 업적을 세웠다. 모드리치는 시즌 112경기 37골을 기록했다.
모드리치는 2006 독일 월드컵 명단에 뽑혀 일본과 호주전에서 교체 선수로 들어가 첫 월드컵을 경험했다. 2007년 22살에 모드리치는 디나모 자그레브의 주장완장까지 차게 됐다. 디나모 자그레브가 챔피언스리그까지 올라가면서 모드리치의 재능이 유럽 전역의 스카우터들에게 표적이 됐다.
잉글랜드 토트넘에서 새출발하다
첼시가 모드리치 영입에 근접했지만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7-2008 시즌 모드리치는 25경기에서 13골과 11도움으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모드리치는 유로 2008에 출전했다. 유로 2008이 끝나고 모드리치는 팀을 잉글랜드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331억 원이었다.
2008-2009 시즌 모드리치는 1라운드 부터 선발로 뛰기 시작했지만 토트넘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모드리치의 플레이는 좋았지만 토트넘의 미들진과 스트라이커가 불안정했다. 토트넘은 개막 후 8경기 동안 1승도 못하는 시즌 최악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2무 6패의 성적으로 라모스 감독은 짤리고, 레드냅 감독이 선임된 후 모드리치는 공미로 기용됐다.
10월 27일 토트넘은 기적의 첫승을 이루어 냈다. 모드리치는 비싸게 산 선수였던터라 토트넘 팬들은 모드리치를 조금씩 믿을 수 있게 됐다. 또한 모드리치는 인터뷰에서 "토트넘에 온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은다"는 발언으로 팬심까지 잡았다. 시즌 초반 처참했던 성적 때문에 10월까지 리그에 진입하기 힘들었던 토트넘이었지만 시즌이 끝날 때쯤 8위로 올라갔다.
2009-2010 시즌 모드리치는 토트넘의 폭넓은 공격전개와 세트피스를 책임졌다. 모드리치는 시즌 개막 리버풀전 천금같은 도움에 이어 토트넘의 개막 후 4연승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던 중 버밍엄전에서 부상을 당해 토트넘은 크게 흔들리게 됐다. 토트넘은 시즌 전체 9패를 당했다.
모드리치는 가레스 베일과 함께 좌우측면 날개로 기용되어 리그 연승을 이끌었다. 토트넘은 아스날에 이어 리그 4위를 기록했고, 모드리치는 완성형 미드필더가 됐다. 모드리치는 2010-2011 시즌 포지션을 중앙 혹은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소화하게 됐다. 모드리치의 패스 성공률은 87%에 달했다. 모드리치는 토트넘 올해의 선수상에 뽑혔다.

(출처=Wikimedia Commons)
593억 원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에 성공하다
모드리치는 2011년부터 토트넘을 떠날 생각이었다. 모드리치의 대체자 크란차르가 있긴 했지만 모드리치만큼 경기장 전체를 흔들 선수는 없었다. 토트넘이 유로파로 떨어지면서 모드리치는 이적을 결심했다. 2012년 8월 27일, 모드리치가 레알 마드리드로 593억 원에 이적했다.
레알 합류 36시간 만에 빅리그 첫 우승컵을 들어올린 모드리치는 부진에 빠진 레알의 구원자로 나섰다. 모드리치는 레알에 빠르게 적응했고, 중원의 중심이 알론소에서 모드리치로 넘어갔다. 무리뉴 감독이 떠난 후 신임 안첼로티 감독이 들어와 모드리치, 알론소, 사미케디라 조합으로 중원을 쓸어담았고 레알이 12년 만에 챔스 우승을 차지했다.
레알은 모드리치와 4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모드리치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참여해 크로아티나를 이끌었지만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모드리치는 리그로 돌아와 트레블을 달성하는 목표를 세웠다. 모드리치가 3개월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면서 레알은 큰 위기에 직면했다.
복귀 후에도 무릎부상 등으로 시즌 아웃이 됐다. 모드리치는 데뷔 후 가장 긴 공백기간을 가졌다. 레알은 모드리치가 빠지고 리그 우승경쟁에서 밀리고 말았다. 안첼로티의 지휘봉을 넘겨받은 베니테즈 감독이 엘클라시코 전에서 대패하여 7개월 만에 짤리고 지단 감독이 부임했다.
라리가 최고의 미드필더 상을 수상하다
모드리치는 자신의 두 번쨰 챔스우승을 이루면서 월드베스트 11, 올해의 팀까지 섭렵했다. 2016-2017 시즌 UEFA 슈퍼컵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후 모드리치는 레알과 2020년까지 계약을 연장했고, 라리가 최고의 미드필더 상을 수상했다. 모드리치는 라리가 27라운드 레알 베티스전에서 레알 소속 200번째 경기를 소화했다.
모드리치는 2017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4-1로 유벤투스를 이기며, 레알 12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이후 2017-2018 시즌, 맨유와의 UEFA 슈퍼컵 결승에서 2-1로 승리하여 슈퍼컵 2연승을 차지했다. 스페인 슈퍼컵에서도 우승했다. 모드리치는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에서 레알 소속 250번째 경기를 치뤘다.
모드리치는 2018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리버풀을 꺾고 챔스 3연속 우승을 이루어냈다. 모드리치는 2018-2019 시즌 지난 시즌의 활약으로 UEFA 올해의 선수 최종 3인에 들었다. 모드리치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했다. 이후 2018년 12월 3일 모드리치는 생애 첫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4번째 재계약을 연장하다
모드리치는 라리가 33라운드에서 레알 소속 300번째 경기를 치뤘다. 모드리치는 인터뷰에서 "레알에서 100경기 이상 더 뛰고 싶다"라고 말했다. 2019-2020 시즌 레알과 1년 재계약을 맺었다. 모드리치는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결승에서 선발 출전해 120분을 소화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모드리치는 2020-2021 시즌 라리가 7라운드 엘클라시코전에서 레알 소속 300번쨰 경기를 치뤘다. 모드리치는 시즌 종료 후 레알과 재계약을 맺었고, 레알 마드리드 2020-2021 시즌 최고의 선수로 선정됐다. 모드리치는 2021-2022 시즌 라리가 10라운드에서 400번째 경기를 치뤘다.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6차전에서 챔피언스 리그 100번째 출전을 달성했다. 모드리치는 2022년 1월 레알 마드리드 이달의 선수로도 선정됐다.
모드리치는 2022-2023 시즌 세비아전에서 레알 소속 450번째 경기를 치뤘다. 이후 2024년 6월 30일까지 레알 마드리드와 재계약을 했다. 모드리치는 2023-2024 시즌 레알의 부주장이 됐다.

(출처=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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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최한성 수습기자]
루카 모드리치의 어린 시절
[밸류체인타임스=최한성 수습기자] 루카 모드리치는 1985년 9월 9일 크로아티아 자다르에서 태어났다. 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와 전쟁 중이었다. 모드리치 가족은 세르비아군을 피해하기 위해 난민의 길을 선택했다. 전쟁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모드리치 가족은 작은 호텔에서 지내야 했고, 가족의 가난은 벗어나기 힘든 실정이었다.
축구를 좋아했던 모드리치는 호텔 주차장에서 공을 차며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크로아티아가 전쟁이 끝나자 모드리치 가족은 고향에 돌아왔지만 집은 이미 불타고 없어진 상황이었다. 모드리치는 11살에 나이로 자다르의 유스클럽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자다르의 유스코치는 모드리치를 강하게 키웠다.
모드리치는 낮은 무게 중심 덕분에 키가 큰 선수들에 비해 빠른 방향전환을 할 수 있었고, 이는 훗날 모드리의 탈압박 기술의 근간이 됐다. 2001년이 되면서 모드리치 축구인생사에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크로아티아 최고 축구클럽 디나모 자그레브 입단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디나모 자그레브는 모드리치와 10년 장기계약을 체결했다.
디나모 자그레브와 시작된 인연
디나모 자그레브는 모드리치를 보스니아리그로 보냈다. 모드리치는 근육부상으로 쉽지 않은 프로생활을 시작해야만 했다. 하지만 모드리치는 빠르게 회복해 22경기 8골로 18세의 나이로 보스니아리그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는 기적을 거둔다. 모드리치는 다음해 인테르 자프레시치로 임대를 가 2005년 팀을 리그 2위까지 올려 놓는다.
2005년부터 모드리치는 디나모 자그레브의 성인팀 주전으로 뛰기 시작했다. 당시 함께 임대생으로 돌아온 동기가 촐루카였다.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촐루카와 모드리치는 팀의 핵심으로 뛰며 리그 우승, 컵대회 우승을 거머쥐면서 3년 연속리그 우승이라는 업적을 세웠다. 모드리치는 시즌 112경기 37골을 기록했다.
모드리치는 2006 독일 월드컵 명단에 뽑혀 일본과 호주전에서 교체 선수로 들어가 첫 월드컵을 경험했다. 2007년 22살에 모드리치는 디나모 자그레브의 주장완장까지 차게 됐다. 디나모 자그레브가 챔피언스리그까지 올라가면서 모드리치의 재능이 유럽 전역의 스카우터들에게 표적이 됐다.
잉글랜드 토트넘에서 새출발하다
첼시가 모드리치 영입에 근접했지만 협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7-2008 시즌 모드리치는 25경기에서 13골과 11도움으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모드리치는 유로 2008에 출전했다. 유로 2008이 끝나고 모드리치는 팀을 잉글랜드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331억 원이었다.
2008-2009 시즌 모드리치는 1라운드 부터 선발로 뛰기 시작했지만 토트넘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모드리치의 플레이는 좋았지만 토트넘의 미들진과 스트라이커가 불안정했다. 토트넘은 개막 후 8경기 동안 1승도 못하는 시즌 최악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2무 6패의 성적으로 라모스 감독은 짤리고, 레드냅 감독이 선임된 후 모드리치는 공미로 기용됐다.
10월 27일 토트넘은 기적의 첫승을 이루어 냈다. 모드리치는 비싸게 산 선수였던터라 토트넘 팬들은 모드리치를 조금씩 믿을 수 있게 됐다. 또한 모드리치는 인터뷰에서 "토트넘에 온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은다"는 발언으로 팬심까지 잡았다. 시즌 초반 처참했던 성적 때문에 10월까지 리그에 진입하기 힘들었던 토트넘이었지만 시즌이 끝날 때쯤 8위로 올라갔다.
2009-2010 시즌 모드리치는 토트넘의 폭넓은 공격전개와 세트피스를 책임졌다. 모드리치는 시즌 개막 리버풀전 천금같은 도움에 이어 토트넘의 개막 후 4연승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던 중 버밍엄전에서 부상을 당해 토트넘은 크게 흔들리게 됐다. 토트넘은 시즌 전체 9패를 당했다.
모드리치는 가레스 베일과 함께 좌우측면 날개로 기용되어 리그 연승을 이끌었다. 토트넘은 아스날에 이어 리그 4위를 기록했고, 모드리치는 완성형 미드필더가 됐다. 모드리치는 2010-2011 시즌 포지션을 중앙 혹은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소화하게 됐다. 모드리치의 패스 성공률은 87%에 달했다. 모드리치는 토트넘 올해의 선수상에 뽑혔다.
(출처=Wikimedia Commons)
593억 원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에 성공하다
모드리치는 2011년부터 토트넘을 떠날 생각이었다. 모드리치의 대체자 크란차르가 있긴 했지만 모드리치만큼 경기장 전체를 흔들 선수는 없었다. 토트넘이 유로파로 떨어지면서 모드리치는 이적을 결심했다. 2012년 8월 27일, 모드리치가 레알 마드리드로 593억 원에 이적했다.
레알 합류 36시간 만에 빅리그 첫 우승컵을 들어올린 모드리치는 부진에 빠진 레알의 구원자로 나섰다. 모드리치는 레알에 빠르게 적응했고, 중원의 중심이 알론소에서 모드리치로 넘어갔다. 무리뉴 감독이 떠난 후 신임 안첼로티 감독이 들어와 모드리치, 알론소, 사미케디라 조합으로 중원을 쓸어담았고 레알이 12년 만에 챔스 우승을 차지했다.
레알은 모드리치와 4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모드리치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참여해 크로아티나를 이끌었지만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모드리치는 리그로 돌아와 트레블을 달성하는 목표를 세웠다. 모드리치가 3개월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면서 레알은 큰 위기에 직면했다.
복귀 후에도 무릎부상 등으로 시즌 아웃이 됐다. 모드리치는 데뷔 후 가장 긴 공백기간을 가졌다. 레알은 모드리치가 빠지고 리그 우승경쟁에서 밀리고 말았다. 안첼로티의 지휘봉을 넘겨받은 베니테즈 감독이 엘클라시코 전에서 대패하여 7개월 만에 짤리고 지단 감독이 부임했다.
라리가 최고의 미드필더 상을 수상하다
모드리치는 자신의 두 번쨰 챔스우승을 이루면서 월드베스트 11, 올해의 팀까지 섭렵했다. 2016-2017 시즌 UEFA 슈퍼컵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후 모드리치는 레알과 2020년까지 계약을 연장했고, 라리가 최고의 미드필더 상을 수상했다. 모드리치는 라리가 27라운드 레알 베티스전에서 레알 소속 200번째 경기를 소화했다.
모드리치는 2017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4-1로 유벤투스를 이기며, 레알 12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이후 2017-2018 시즌, 맨유와의 UEFA 슈퍼컵 결승에서 2-1로 승리하여 슈퍼컵 2연승을 차지했다. 스페인 슈퍼컵에서도 우승했다. 모드리치는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에서 레알 소속 250번째 경기를 치뤘다.
모드리치는 2018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리버풀을 꺾고 챔스 3연속 우승을 이루어냈다. 모드리치는 2018-2019 시즌 지난 시즌의 활약으로 UEFA 올해의 선수 최종 3인에 들었다. 모드리치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했다. 이후 2018년 12월 3일 모드리치는 생애 첫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4번째 재계약을 연장하다
모드리치는 라리가 33라운드에서 레알 소속 300번째 경기를 치뤘다. 모드리치는 인터뷰에서 "레알에서 100경기 이상 더 뛰고 싶다"라고 말했다. 2019-2020 시즌 레알과 1년 재계약을 맺었다. 모드리치는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결승에서 선발 출전해 120분을 소화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모드리치는 2020-2021 시즌 라리가 7라운드 엘클라시코전에서 레알 소속 300번쨰 경기를 치뤘다. 모드리치는 시즌 종료 후 레알과 재계약을 맺었고, 레알 마드리드 2020-2021 시즌 최고의 선수로 선정됐다. 모드리치는 2021-2022 시즌 라리가 10라운드에서 400번째 경기를 치뤘다.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6차전에서 챔피언스 리그 100번째 출전을 달성했다. 모드리치는 2022년 1월 레알 마드리드 이달의 선수로도 선정됐다.
모드리치는 2022-2023 시즌 세비아전에서 레알 소속 450번째 경기를 치뤘다. 이후 2024년 6월 30일까지 레알 마드리드와 재계약을 했다. 모드리치는 2023-2024 시즌 레알의 부주장이 됐다.
(출처=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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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최한성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