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노래를 들었던, 끝없는 여정을 꿈꾼 작가 J.R.R. 톨킨 (2) | 밸류체인타임스

황지민 수습기자
2025-03-08
조회수 236

(출처: https://variety.com/2017/vintage/features/tolkien-lord-of-the-rings-1202506533 / 캡처본)


[밸류체인타임스=황지민 수습기자] J.R.R. 톨킨은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판타지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지만, 그의 세계관은 단순한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전장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그는 인간의 용기, 희생, 그리고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가치를 깊이 체험했다. 


이러한 경험은 <반지의 제왕>을 비롯해 톨킨의 여러 작품에 깊이 녹아들어, 서사 속 인물들의 고난과 선택을 더욱 현실감 있게 만드는 근간이 되었다. 


생애 후반부에 이르러 톨킨은 갑작스러운 문학적 성공과 팬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복잡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중간계의 역사를 정리하고 언어학적 연구를 이어가며 ‘창조자의 책임’을 다하려 애썼다. 이 기사에서는 그가 겪은 전쟁의 체험이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반지의 제왕>집필 과정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마지막까지 중간계를 품었던 톨킨의 말년에 대해 탐구해보고자 한다.




별이 빛을 잃던 어느 날


1914년 7월 28일,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톨킨은 영국 육군에 자원 입대하여 소위로 임관한다. 당시에는 자원하지 않으면 겁쟁이로 취급받는 분위기였고, 톨킨 역시 처음에는 이를 원치 않았지만 결국 입대를 연기할 수 없었다.  


약 11개월간 케녹 체이스의 13보충대에서 훈련한 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고 참혹했다고 알려진 솜 전투에 투입되어 전쟁의 실상을 직접 마주한다. 첫날에만 영국군이 5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이 전투는 톨킨이 친구들과 전우들이 차례로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 만큼 참혹했다. 참호 생활의 극심한 공포와 비참함은 톨킨에게 인간이 맞닥뜨릴 수 있는 어둠을 체감하게 했다.

이 시기 전우들은 서로를 친근하게 "톰미"(Tommy)라고 불렀지만, 포화 속에서 많은 이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톨킨은 이러한 상실감과 전쟁의 무의미함을 깊이 깨달았고, 훗날 <반지의 제왕>에서 묘사되는 ‘모르도르’의 황폐한 땅을 참호전의 풍경과 겹쳐 표현했다. 또한 프로도와 샘이 겪는 육체적·정신적 소모는 전장에서 병사들이 느꼈을 감정과 맞닿아 있다. 특히 동료애, 전우의 죽음에 대한 슬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은 톨킨이 실제로 겪은 상흔이었다. 


전쟁 중 톨킨은 '참호열(trench fever)'에 감염되어 본국으로 후송되면서 더는 전선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TCBS(Tea Club and Barrovian Society)'에서 함께 문학을 논하던 학창 시절 친구들 대부분이 전사했다는 소식은 톨킨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그가 훗날 “이 세상이 너무나도 부서져버렸다”고 회고할 만큼, 친구들을 잃은 슬픔은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깊이 자리 잡게 된다. 그리하여 톨킨이 전장 속에서 간직했던 ‘절망 속 희망’이라는 주제의식은 반지의 제왕에서 거대한 악에 맞서는 작은 존재들의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별이 다시 빛을 발했을 때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후 톨킨은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 'TCBS(Tea Club and Barrovian Society)' 멤버가 대부분 전사하여, 톨킨은 살아남은 자로서의 상실감과 죄책감에 시달렸으나 “친구들이 함께 꿈꾼 아름다운 이야기를 세상에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다시금 일어설 힘을 얻었다. 


톨킨은 옥스퍼드로 돌아가 학문에 전념하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했다. 이 시기에 그는 <잃어버린 이야기들 (The Book of Lost Tales)>을 계속해서 기록하며, 중간계의 원형이 될 세계관을 서서히 확립해갔다. 


톨킨은 전쟁 전 약혼했던 '이디스 브랫'과 1916년에 결혼했지만, 전쟁으로 인해 부부 생활을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종전 후 두 사람은 다시 안정된 가정을 이루어 네 명의 자녀 '존 프란시스 톨킨', '마이클 힐러리 톨킨', '크리스토퍼 톨킨', '프리실라 톨킨'을 두었다.


특히 이디스와의 관계는 톨킨의 창작에 깊은 영감을 주었다. 전쟁 전 두 사람이 숲에서 함께 춤추던 모습은 훗날 J. R. R. 톨킨이 일생을 바쳐 집필한 미완성의 작품이며, 그리스 신화와 북유럽 신화처럼 영국을 위한 고유의 신화를 만들고 싶었던 그가 평생에 걸쳐서 집필한 걸작으로, 그가 창조한 반지의 제왕이나 호빗 같은 이야기들의 구심점이 되는 작품인 <실마릴리온>에 등장하는 엘프왕 '베렌과 루시엔'의 사랑 이야기로 재탄생한다. 이 시기 톨킨은 학문과 가정을 병행하면서도, 중간계의 신화와 언어 창조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았다.




중간계의 뿌리를 심다


1919년, 톨킨은 옥스퍼드를 졸업하고 리즈 대학교에서 고대 영어 강사로 임용된다. 이후 1924년에는 최연소 영문학 교수가 되며, 이 시기는 톨킨의 언어학적 능력이 본격적으로 꽃피우는 시기였다. 그는 고대 영어, 고대 노르드어, 중세 문학을 연구하면서, 중간계의 언어와 문화의 뿌리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갔다.


그는 언어의 소리에 민감했고, 단순한 단어의 나열을 넘어 그 언어가 속한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를 상상했다. 이런 특성 덕분에 그는 <호빗>,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엘프어(퀘냐, 신다린)를 비롯한 여러 인공 언어를 창조해낼 수 있었다.


톨킨은 학문적으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학술지에 여러 논문을 발표했고, 중세 영어 서사시 <시 구웨인 경과 녹색 기사(Sir Gawain and the Green Knight)>를 현대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이 작품의 기사도와 운명, 신화적 상징은 후에 <반지의 제왕>에서 '아라곤(Aragorn)'의 서사에 반영된다.


학문 연구와 병행해 톨킨은 틈틈이 자신의 상상 속 세계를 글로 기록해나갔다. 그는 <잃어버린 이야기들>을 통해 중간계의 창세 신화, '아이누린달레(창조의 노래)'와 엘프의 기원 등을 써 내려갔다. 이 작품들은 훗날 <실마릴리온>의 핵심이 되었고, 그는 이 방대한 신화를 자신의 ‘개인적 신화’로 삼으며 글쓰기의 동력을 얻었다.


전쟁으로 파괴된 현실 세계에서 톨킨은 글 속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며 치유받았다. 그는 중간계의 신화를 구축하면서, 인간의 어둠과 희망, 선과 악의 대립, 용기와 희생 같은 보편적 주제를 탐구했다. 이 세계관은 이후 <호빗>과 <반지의 제왕>의 뿌리가 되었다.



뿌리가 빛을 머금다


1928년경, 톨킨은 학생들의 시험지를 채점하던 중, 빈 종이에 무심코 다음 문장을 썼다.


“In a hole in the ground, there lived a hobbit.”

(땅속 구멍에 호빗이 살았다.)


이 작은 문장이 <호빗>의 시초가 되었으며 그는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이 문장을 확장해갔다. 학자라는 이미지로 인해 톨킨을 책만 좋아하는 고매한 소설가 겸 교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쾌활하고 밝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고대 영문학을 실감나게 가르치기 위해 체인메일을 입고 노래를 부르며 강의실에 들어왔다는 스토리가 있을 정도다.


호빗 이야기는 '빌보 배긴스'라는 작은 존재를 중심으로 빌보의 모험 속에 트롤, 엘프, 드래곤 등 톨킨이 오래전부터 구상해왔던 신화적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톨킨은 몇 년에 걸쳐 틈틈이 <호빗>을 쓰면서, 친구들에게 초고를 보여주었고 반응을 살폈다. 특히 C.S. 루이스는 초고를 읽고 큰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호빗>의 저자 당사자인 톨킨은 막상 허구적인 이야기를 담은 자신의 작품들이 왜 베스트셀러를 넘어서 하나의 문화가 됐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1936년, 원고는 옥스퍼드 출판사에서 일하던 톨킨의 지인에 의해 출판사로 전달되었고, 편집자는 이를 아들에게 읽혀본 후 책의 가능성을 확신하게 된다. 결국 1937년에 <호빗>이 출간되었고, 즉각적인 인기를 끌었다. 평단과 대중 모두 아기자기하면서도 서정적인 판타지 모험담에 매료되었고, 출판사는 후속작을 요청했지만 톨킨은 단순한 <호빗>의 속편이 아닌, 훨씬 방대하고 심오한 이야기인 <반지의 제왕>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톨킨은 중간계라는 거대한 신화적 무대 위에서 전쟁과 상실, 언어와 문화, 희망과 용기를 씨앗 삼아 끝없는 여정을 노래하기에 이른다. 그가 품은 ‘별들의 노래’는 이후 수많은 독자의 가슴 속에 불멸의 불빛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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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황지민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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