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https://variety.com/2017/vintage/features/tolkien-lord-of-the-rings-1202506533 / 캡처본)
[밸류체인타임스=황지민 수습기자] J.R.R. 톨킨의 말년은 그의 작품 세계만큼이나 깊이 있는 시기였으며, 다사다난한 일들이 겹쳐졌다.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대서사시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이후, 그는 학자로서의 일상에서 물러나 작가로서 자신이 일궈낸 방대한 유산을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 옥스퍼드에서의 교수직을 은퇴한 후에도 톨킨은 <실마릴리온(The Silmarillion)>을 완성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으며, 전 세계 팬들과 교류하면서 “톨킨 유니버스”가 사람들에게 지니는 의미를 깊이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아내 이디스를 잃은 개인적인 슬픔을 겪었는데, 이러한 상실감은 그의 후반기 작품에 더욱 짙은 울림을 남겼다. 이번 기사에서는 톨킨의 말년이 그의 창작과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위대한 작가로서 마지막 여정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조명해보고자 한다.
별이 행성이 되어
1954년 7월 29일, <호빗(The Hobbit)>의 후속작이자 'C.S. 루이스(C. S. Lewis)'의 <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 '어슐러 K. 르 귄(Ursula K. Le Guin)'의 <어스시 시리즈(The Earthsea Cycle)>와 함께 세계 3대 판타지 소설로 꼽히는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이 출간되었다.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1억 5천만 부 이상 판매된 이 책은, 당대에는 물론 오늘날에도 판타지 문학의 정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호빗>이 흥행하자 당시 톨킨은 출판사로부터 후속편에 대한 압박을 받게 된다. 톨킨은 <호빗>의 후속작을 바라는 출판사에게 이전에 집필해두었던 동화, <블리스씨 이야기(The Story of Mr. Bliss)>, <로버랜덤(ROVERANDOM)> 원고를 소개했을 뿐, 후속편 집필 자체에는 별다른 의지가 없었다. 심지어 톨킨은 <호빗>을 ‘단순하고 가벼운 동화’에 가깝다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평생 소망인 소설 <실마릴리온(The Silmarillion)>의 출판을 고대하고 있었다.
<호빗>의 후속작을 고대하던 출판사 '앨런 앤드 언윈(George Allen & Unwin)' 측은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실마릴리온>의 원고가 매우 방대하고 어려운 내용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원고는 '앨런 앤드 언윈'도 잘 알고 있는 원고였으나, 비교적 훨씬 가벼웠던 <호빗>의 후속작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내렸고, 이어 톨킨은 결국 후속작인 <반지의 제왕>의 첫 장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결말도, 과정도, 주인공에 대한 세밀한 검토 없이 후속작에 대한 첫 문단이 써내려져가기 시작했다. 그때 정해진 첫 단원의 제목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파티(A long expected party)'였는데, 이는 <호빗>의 첫 단원 제목인 '뜻밖의 파티(An unexpected party)'와 의도된 대조였다.
<반지의 제왕>의 탄생
이미 소설 <호빗>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한 '빌보(Bilbo Baggins)'는 “오래 살고 행복하게 지내야만 하는” 설정 탓에, 톨킨은 새로운 모험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빙고(Bingo)'라는 이름의 호빗 캐릭터를 구상했으나, 이후 집필 과정에서 이름이 바뀌어 우리가 잘 아는 빌보의 조카인 '골목쟁이 프로도(Frodo Baggins)'가 되었다.
톨킨은 원래 <반지의 제왕>을 한 권으로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분량이 너무 방대하여 '반지 원정대(Fellowship of the Ring)', '두 개의 탑(The Two Towers)', '왕의 귀환(The Return of the King)'으로 나누어 총 3부 6권의 대작으로 완성한다.
톨킨이 죽은 후에도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반지의 제왕>은 '피터 잭슨(Sir Peter Jackson)' 감독에 의해 영화로 재탄생하게 된다. 뉴라인 시네마(New Line Cinema)에서 총 3부작으로, 2001년 1월 11일에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The Lord of the Rings: the Fellowship of the Ring)>, 2002년 1월 18일 <두 개의 탑>, 2003년 1월 25일 <왕의 귀환>을 개봉했다.
(출처: http://movie.phinf.naver.net/20170112_293/1484183486221oM8s1_JPEG/movie_image.jpg 캡처본) /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출처: http://movie.phinf.naver.net/20170112_295/1484183596684X2ucM_JPEG/movie_image.jpg 캡처본 / <두개의 탑>

(출처: http://movie.phinf.naver.net/20170112_240/1484183668820LGsTJ_JPEG/movie_image.jpg 캡처본 / <왕의 귀환>
한 행성이 된 별의 말년
<반지의 제왕> 출간 후 톨킨은 죽을 때까지 대중의 관심과 유명세를 누린다. 인세가 급격히 증가하자 그는 한때 조기 은퇴를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팬들의 연락이 쇄도하자 개인 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된 톨킨은 전화번호부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결국 영국해협의 풀만(灣)에 위치해 있는 한가한 본머스로 거처를 옮겨 조용한 말년을 보낸다.
1972년 1월, 톨킨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대영 제국 훈장 3등급(CBE)을 서훈받았으며, 같은 해 3월 28일 버킹엄 궁전에서 공식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커다란 개인적 비극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아내 이디스의 사망이었다. 1971년 11월 29일 이디스가 사망하자 톨킨은 묘비에 루시엔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다. 이는 <실마릴리온>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엘프 공주의 이름이자 톨킨이 이디스를 향해 느꼈던 사랑을 상징한다.
이후 톨킨도 아내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21개월 후인 1973년 9월 2일 세상을 떠나 아내와 같은 묘지에 묻혔다. 그의 묘비에는 베렌이라는 이름이 함께 새겨졌다. 베렌과 루시엔은 그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대표하는 인물들로, 톨킨 부부는 현실 속에서도 그 서사를 고스란히 재현해낸 셈이다. 부부의 묘지는 옥스퍼드 울버코트 공동묘지에 위치해 있다.
작가의 유산, 그리고 그 후
톨킨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은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의 손에 의해 계속 세상에 선보여졌다. 아버지가 생전에 완성하지 못한 <실마릴리온> 원고는 1977년, 톨킨 사후 4년 만에 출간되었으며, 이후 <미완성 이야기(Unfinished Tales)>,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The History of Middle-earth)> 등 수많은 후속 자료들이 발굴되었다.
이렇듯 톨킨의 말년은 대중의 관심과 상실의 슬픔, 창작 집대성의 의지가 교차하는 시기였으며, 이는 그의 생애 마지막을 더욱 깊이 있고 의미 있는 모습으로 남겼다. 톨킨이 우리에게 남긴 방대한 중간계(Middle-earth)의 이야기와 판타지 세계는 지금도 수많은 독자와 학자들에게 연구되고 사랑받으며, 그의 문학적 유산은 시간의 흐름을 넘어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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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황지민 수습기자]
(출처: https://variety.com/2017/vintage/features/tolkien-lord-of-the-rings-1202506533 / 캡처본)
[밸류체인타임스=황지민 수습기자] J.R.R. 톨킨의 말년은 그의 작품 세계만큼이나 깊이 있는 시기였으며, 다사다난한 일들이 겹쳐졌다.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대서사시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이후, 그는 학자로서의 일상에서 물러나 작가로서 자신이 일궈낸 방대한 유산을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 옥스퍼드에서의 교수직을 은퇴한 후에도 톨킨은 <실마릴리온(The Silmarillion)>을 완성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으며, 전 세계 팬들과 교류하면서 “톨킨 유니버스”가 사람들에게 지니는 의미를 깊이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아내 이디스를 잃은 개인적인 슬픔을 겪었는데, 이러한 상실감은 그의 후반기 작품에 더욱 짙은 울림을 남겼다. 이번 기사에서는 톨킨의 말년이 그의 창작과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위대한 작가로서 마지막 여정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조명해보고자 한다.
별이 행성이 되어
1954년 7월 29일, <호빗(The Hobbit)>의 후속작이자 'C.S. 루이스(C. S. Lewis)'의 <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 '어슐러 K. 르 귄(Ursula K. Le Guin)'의 <어스시 시리즈(The Earthsea Cycle)>와 함께 세계 3대 판타지 소설로 꼽히는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이 출간되었다.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1억 5천만 부 이상 판매된 이 책은, 당대에는 물론 오늘날에도 판타지 문학의 정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호빗>이 흥행하자 당시 톨킨은 출판사로부터 후속편에 대한 압박을 받게 된다. 톨킨은 <호빗>의 후속작을 바라는 출판사에게 이전에 집필해두었던 동화, <블리스씨 이야기(The Story of Mr. Bliss)>, <로버랜덤(ROVERANDOM)> 원고를 소개했을 뿐, 후속편 집필 자체에는 별다른 의지가 없었다. 심지어 톨킨은 <호빗>을 ‘단순하고 가벼운 동화’에 가깝다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평생 소망인 소설 <실마릴리온(The Silmarillion)>의 출판을 고대하고 있었다.
<호빗>의 후속작을 고대하던 출판사 '앨런 앤드 언윈(George Allen & Unwin)' 측은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실마릴리온>의 원고가 매우 방대하고 어려운 내용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원고는 '앨런 앤드 언윈'도 잘 알고 있는 원고였으나, 비교적 훨씬 가벼웠던 <호빗>의 후속작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내렸고, 이어 톨킨은 결국 후속작인 <반지의 제왕>의 첫 장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결말도, 과정도, 주인공에 대한 세밀한 검토 없이 후속작에 대한 첫 문단이 써내려져가기 시작했다. 그때 정해진 첫 단원의 제목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파티(A long expected party)'였는데, 이는 <호빗>의 첫 단원 제목인 '뜻밖의 파티(An unexpected party)'와 의도된 대조였다.
<반지의 제왕>의 탄생
이미 소설 <호빗>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한 '빌보(Bilbo Baggins)'는 “오래 살고 행복하게 지내야만 하는” 설정 탓에, 톨킨은 새로운 모험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빙고(Bingo)'라는 이름의 호빗 캐릭터를 구상했으나, 이후 집필 과정에서 이름이 바뀌어 우리가 잘 아는 빌보의 조카인 '골목쟁이 프로도(Frodo Baggins)'가 되었다.
톨킨은 원래 <반지의 제왕>을 한 권으로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분량이 너무 방대하여 '반지 원정대(Fellowship of the Ring)', '두 개의 탑(The Two Towers)', '왕의 귀환(The Return of the King)'으로 나누어 총 3부 6권의 대작으로 완성한다.
톨킨이 죽은 후에도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반지의 제왕>은 '피터 잭슨(Sir Peter Jackson)' 감독에 의해 영화로 재탄생하게 된다. 뉴라인 시네마(New Line Cinema)에서 총 3부작으로, 2001년 1월 11일에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The Lord of the Rings: the Fellowship of the Ring)>, 2002년 1월 18일 <두 개의 탑>, 2003년 1월 25일 <왕의 귀환>을 개봉했다.
(출처: http://movie.phinf.naver.net/20170112_295/1484183596684X2ucM_JPEG/movie_image.jpg 캡처본 / <두개의 탑>
(출처: http://movie.phinf.naver.net/20170112_240/1484183668820LGsTJ_JPEG/movie_image.jpg 캡처본 / <왕의 귀환>
한 행성이 된 별의 말년
<반지의 제왕> 출간 후 톨킨은 죽을 때까지 대중의 관심과 유명세를 누린다. 인세가 급격히 증가하자 그는 한때 조기 은퇴를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팬들의 연락이 쇄도하자 개인 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된 톨킨은 전화번호부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결국 영국해협의 풀만(灣)에 위치해 있는 한가한 본머스로 거처를 옮겨 조용한 말년을 보낸다.
1972년 1월, 톨킨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대영 제국 훈장 3등급(CBE)을 서훈받았으며, 같은 해 3월 28일 버킹엄 궁전에서 공식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커다란 개인적 비극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아내 이디스의 사망이었다. 1971년 11월 29일 이디스가 사망하자 톨킨은 묘비에 루시엔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다. 이는 <실마릴리온>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엘프 공주의 이름이자 톨킨이 이디스를 향해 느꼈던 사랑을 상징한다.
이후 톨킨도 아내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21개월 후인 1973년 9월 2일 세상을 떠나 아내와 같은 묘지에 묻혔다. 그의 묘비에는 베렌이라는 이름이 함께 새겨졌다. 베렌과 루시엔은 그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대표하는 인물들로, 톨킨 부부는 현실 속에서도 그 서사를 고스란히 재현해낸 셈이다. 부부의 묘지는 옥스퍼드 울버코트 공동묘지에 위치해 있다.
작가의 유산, 그리고 그 후
톨킨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은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의 손에 의해 계속 세상에 선보여졌다. 아버지가 생전에 완성하지 못한 <실마릴리온> 원고는 1977년, 톨킨 사후 4년 만에 출간되었으며, 이후 <미완성 이야기(Unfinished Tales)>,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The History of Middle-earth)> 등 수많은 후속 자료들이 발굴되었다.
이렇듯 톨킨의 말년은 대중의 관심과 상실의 슬픔, 창작 집대성의 의지가 교차하는 시기였으며, 이는 그의 생애 마지막을 더욱 깊이 있고 의미 있는 모습으로 남겼다. 톨킨이 우리에게 남긴 방대한 중간계(Middle-earth)의 이야기와 판타지 세계는 지금도 수많은 독자와 학자들에게 연구되고 사랑받으며, 그의 문학적 유산은 시간의 흐름을 넘어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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