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체인타임스=김혜선기자] 검진센터에 오신 56세 남성. 예약시간을 못 맞춰 온 게 벌써 4번째다. 검사 마감 후에 도착하거나 부도를 냈다. 5번째 예약을 했다. 간질, 외상성 뇌내출혈, 조현병의 진단명을 갖고 있고 귀도 잘 안 들린다. 5살 정도의 지능 정도다. 예약 설명서의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A4용지에 매직으로 큼지막하게 예약 날짜와 ‘아무것도 먹지 마세요.’라고 썼다. 그는 ‘금식’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른다. 종이를 휴대폰 케이스에 분명히 넣어줬지만 사라지고 없다.
“나 다시 써줘요. 사람들한테 그거 보여주고 알려달라고 해야 하니까. 그런데 또 밥 먹지 말아요? 나 그러면 배고픈데.”
“저녁은 먹고 밤 10시 넘으면 먹지 말라고요.”
“아! 그런데 나 저녁 안 먹으면 배고파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우리의 설명도 반복된다. 그의 검은색 파카 소매는 젖어있다. 손 닦을 때 제대로 올리지 않은 모양이다. 옷을 잘 갈아입지 않아 바지에는 소변 냄새가 짙게 배어있다. 마스크는 점점 내려와 코가 다 보이고 코털과 귀털이 여기저기 삐죽하다. 직원들의 목소리는 점점 올라간다. 몇 번이고 반복 설명이 이어진다.

[ 사진출처 : unsplash]
짜증이 날 수도 있지만 이야기하다 보면 미소가 흐른다. 착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대기자가 많아져 따로 안내를 했다. 예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씩 웃으며 이야기하신다.
“선생님, 너무 친절하세요. 고마워요. 선생님 자리는 어디에요? 내가 내일 바로 찾아가게요.”
다음날, 대기석을 확인했더니 일찍 오셨다. 인사를 했지만 귀가 안 들려 못 알아듣는다. 접수 후 돌아서면서 그제야 나를 보고는 환하게 웃으며 “오셨어요.” 하신다. 활짝 핀 미소가 아이 같다. 채혈실로 안내하고 소매가 젖은 잠바를 벗긴 후 혈액검사를 했다. 지혈을 위한 솜을 꾹 눌러주면서 영상의학과로 이동했다. 귀가 안 들리기에 나눌 수 있는 대화는 거의 없다. 아이처럼 내 손을 잡고 그냥 따라온다. 검사실 안으로 들어간 것까지 확인하고 돌아왔다. 사무실로 들어오는 나에게 접수창구에 있던 간호사가 이야기한다.
“그분은 좀 더 잘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요.”
강풀의 만화 『바보』의 주인공 승룡이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바보가 됐다. 아빠와 엄마는 하늘의 별이 됐고 승룡이는 하늘의 별을 항상 바라본다. 엄마처럼 아픈 여동생 지인이를 꼭 지켜내려는 승룡이. 사람들은 주고받으며 대가를 바란다. 승룡이는 줬으니까 받으려는 기대가 없다. 그래서 ‘바보’이지만 그 ‘바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승룡이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속에 ‘별’이 되었고 하늘의 ‘별’을 바라보게 해주었다. 세상의 많은 지식인들과 지도자들은 사람의 마음을 인위적으로 움직이려고 하지만 지식과 선동, 호소 및 정책 등이 동원되어야 겨우 움직인다. 승룡이와 수검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선한 마음을 갖도록 해주었다. 이들은 과연 ‘바보’일까? 승룡이와 같은 수검자를 일터에서 만난 오늘, 마음속의 별이 또 하나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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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김혜선기자]
[밸류체인타임스=김혜선기자] 검진센터에 오신 56세 남성. 예약시간을 못 맞춰 온 게 벌써 4번째다. 검사 마감 후에 도착하거나 부도를 냈다. 5번째 예약을 했다. 간질, 외상성 뇌내출혈, 조현병의 진단명을 갖고 있고 귀도 잘 안 들린다. 5살 정도의 지능 정도다. 예약 설명서의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A4용지에 매직으로 큼지막하게 예약 날짜와 ‘아무것도 먹지 마세요.’라고 썼다. 그는 ‘금식’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른다. 종이를 휴대폰 케이스에 분명히 넣어줬지만 사라지고 없다.
“나 다시 써줘요. 사람들한테 그거 보여주고 알려달라고 해야 하니까. 그런데 또 밥 먹지 말아요? 나 그러면 배고픈데.”
“저녁은 먹고 밤 10시 넘으면 먹지 말라고요.”
“아! 그런데 나 저녁 안 먹으면 배고파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우리의 설명도 반복된다. 그의 검은색 파카 소매는 젖어있다. 손 닦을 때 제대로 올리지 않은 모양이다. 옷을 잘 갈아입지 않아 바지에는 소변 냄새가 짙게 배어있다. 마스크는 점점 내려와 코가 다 보이고 코털과 귀털이 여기저기 삐죽하다. 직원들의 목소리는 점점 올라간다. 몇 번이고 반복 설명이 이어진다.
[ 사진출처 : unsplash]
짜증이 날 수도 있지만 이야기하다 보면 미소가 흐른다. 착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대기자가 많아져 따로 안내를 했다. 예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씩 웃으며 이야기하신다.
“선생님, 너무 친절하세요. 고마워요. 선생님 자리는 어디에요? 내가 내일 바로 찾아가게요.”
다음날, 대기석을 확인했더니 일찍 오셨다. 인사를 했지만 귀가 안 들려 못 알아듣는다. 접수 후 돌아서면서 그제야 나를 보고는 환하게 웃으며 “오셨어요.” 하신다. 활짝 핀 미소가 아이 같다. 채혈실로 안내하고 소매가 젖은 잠바를 벗긴 후 혈액검사를 했다. 지혈을 위한 솜을 꾹 눌러주면서 영상의학과로 이동했다. 귀가 안 들리기에 나눌 수 있는 대화는 거의 없다. 아이처럼 내 손을 잡고 그냥 따라온다. 검사실 안으로 들어간 것까지 확인하고 돌아왔다. 사무실로 들어오는 나에게 접수창구에 있던 간호사가 이야기한다.
“그분은 좀 더 잘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요.”
강풀의 만화 『바보』의 주인공 승룡이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바보가 됐다. 아빠와 엄마는 하늘의 별이 됐고 승룡이는 하늘의 별을 항상 바라본다. 엄마처럼 아픈 여동생 지인이를 꼭 지켜내려는 승룡이. 사람들은 주고받으며 대가를 바란다. 승룡이는 줬으니까 받으려는 기대가 없다. 그래서 ‘바보’이지만 그 ‘바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승룡이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속에 ‘별’이 되었고 하늘의 ‘별’을 바라보게 해주었다. 세상의 많은 지식인들과 지도자들은 사람의 마음을 인위적으로 움직이려고 하지만 지식과 선동, 호소 및 정책 등이 동원되어야 겨우 움직인다. 승룡이와 수검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선한 마음을 갖도록 해주었다. 이들은 과연 ‘바보’일까? 승룡이와 같은 수검자를 일터에서 만난 오늘, 마음속의 별이 또 하나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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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김혜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