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체인타임스 = 유제혁 수습기자] 21명의 선원이 타고 있는 대형 화물선 삼호 주얼리호에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2011년 1월 15일 당시 삼호 주얼리호는 이란에서 화물을 싣고 오만 앞 아라비아해를 거쳐 스리랑카 콜롬보항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항해 도중 정체불명의 보트가 삼호 주얼리호에 바로 옆까지 접근했다. 그 보트에는 소말리아 해적들이 타고 있었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접근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AK 소총으로 무장한 10명의 해적은 삼호 주얼리호에 순식간에 침입했다.
출처:Wikimedia Commons
선원들은 해적의 접근을 보고 재빨리 숨기 시작했다. 선원들이 숨은 곳은 배의 맨 끝에 있는 로프 저장 창고였다. 하지만 해적들은 배를 샅샅이 뒤지며 찾아 다녔고, 3시간 15분 만에 선원들을 발견하여 4층 선교로 선원들을 끌고 갔다. 소마리아 해적 중 두목으로 보이는 자가 배를 이끄는 석해균에게 처음 건낸 말은 "지금부터 이 배는 우리들이 접수한다"였다. 석해균 선장에게는 운전대를 잡고 소말리아로 향하라고 협박했다. 해적들의 목적은 이 배의 선원들을 인질로 잡고 몸값을 뜯어내려는 것이었다.
삼호 주얼리호 항해사의 조난 신호 통신망을 통해 피랍 소식을 접한 대한민국 정부는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피랍 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의 이전부터 아라비아 인근에서 대한민국 기업의 소속이 계속해서 납치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해적들에 대한 몸값 지불을 반대하는 여론이 일었다. 또한 돈으로만 해결한다면 모든 한국 선박은 피랍의 표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부는 사건에 대한 계기로 해적들과의 협상이 아닌 강공을 선택했다.
정부는 삼호 주얼리호에 해적 소탕 및 인질 구출작전을 명령한다. 이 작전에는 해군특수전전단 UDT/SRAL 소속 청해부대가 작전에 투입됐다. 청해부대는 대한민국의 선박들을 보호하기 위해 2009년부터 정기적으로 파병됐던 부대다. 명령을 받고 급히 파병된 청해부대에는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는데 청해부대를 싣은 최영함과 삼호 주얼리호함와의 거리는 약 2600km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현장에 도착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만약 삼호 주얼리호가 해적들의 뜻대로 소말리아 해역까지 먼저 도달한다면 작전이 난항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출처:Wikimedia Commons
그렇게 청해부대를 싣은 최영함은 아덴만으로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삼호 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해적들이 총구를 들이미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갖은 방법을 동원해 시간을 지연시키는데 집중했다. 석해균 선장은 해적들 몰래 해군에 이메일을 보내기 위해 굉장히 대담한 방법을 쓰기도 했다.
출처:Wikimedia Commons
석해균 선장은 "내가 지금 기분이 좋지 않으니 컴퓨터 게임을 하겠다"라고 말하면서 바둑 게임을 두었다고 한다. 어떤 게임인지 알리가 없는 해적들은 한동안 석해균 선장의 컴퓨터를 감시하다가 바둑의 지루함 때문인지 경계가 조금 느슨해졌다. 석해균 선장은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몰래 해군에 이메일을 보내는데 성공한다.
삼호 주얼리호로부터 이메일을 받은 해군은 '선장님 우리 해군이 지금 접근 중이니 최대한 시간을 지연시켜 주십시오'라는 답장을 보냈다. 석해균 선장은 또 한 번 시간을 지연시키기 위해 해적한테 "지금 엔진에 문제가 있으니 엔진실로 가겠다고" 말했다. 해적들은 석해균 선장의 말을 듣지 않았고 배가 점점 느려지자 얼떨결에 석해균 선장에게 우리는 배를 잘 모른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석해균 선장은 ‘해적들이 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라고 확신했다. 배가 느려진 이유는 석해균 선장이 선원들을 시켜 몰래 엔진에 물을 탔기 때문이다.
석해균 선장은 "내가 없으면 소말리아로 절대 갈 수 없으니 쏘는 말든 알아서 해라"라며 말했다. 그렇게 석해균 선장은 엔진을 수리하는 척하면서 시간을 끌었고 바다를 계속 빙빙돌며 소말리아로 가는 시간을 지연시켰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바로 삼호 주얼리호의 설계도와 사진을 입수했고 배 곳곳을 파악하며 군사작전을 수립한다. 그렇게 수립된 작전명 “아덴만 여명 작전”이다.
작전의 목표는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이 인질 21명 전원을 구출하는 것이었다. 청해부대는 바로 작전에 투입되어 이동하는 동안에 배 위에서 가상 훈련이 진행됐다. 당시 작전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채 군사 기밀로 철저한 비밀리에 진행됐다. 만약 작전이 알려지게 된다면 해적들이 이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랍이 된지 4일째 되는 날, 최영함은 삼호 주얼리호를 발견하고 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하지만 해적들은 점점 초초해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뜻대로 진행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적 중 4명은 삼호 주얼리호를 떠나 몽골 상선을 빼앗아 바꾸어 타려고 했다. 하지만 해적들은 청해부대의 눈에 띄게 되었고, 청해부대는 해적들에게 링스 헬기와 고속단정 2척을 진입시켰다. 해적들에게 위협사격을 가해 해적선을 무력화시켰다. 사격을 받은 해적 4명은 헤엄쳐서 다시 삼호 주얼리호에 복귀했다. 당황한 해적들은 밖으로 뛰어나와 대한민국 군함을 향해 백기를 흔들었다.
출처:Wikimedia Commons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청해부대는 해적들이 항복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삼호 주얼리호 쪽으로 위협 사격을 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해적들의 속임수였다. 해적들은 청해부대 쪽으로 AK 소총을 난사했다. 이로 인해 청해부대원 3명이 총상을 입게 됐다.
청해부대는 당황하지 않고, 작전타임을 기다린다. 청해부대는 사람이 무기력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새벽시간을 작전 타임으로 정했다. 작전시간 청해부대는 신속하게 부상자 예외 전원 고속단정을 타고, 눈에 띄지 않게 삼호 주얼리호에 침입했다. 그시각 불안해진 해적들은 모든 상황이 석해균 선장이 했다고 짐작하여 석해균 선장을 따로 분리시키고 폭력을 가했다. 해적들이 청해부대가 침입했음을 알았을 때는 해적 중 두목이 석해균 선장에게 총알을 발사한 후였다.
청해부대는 총소리를 듣고 신속하게 해적들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했다. 하지만 석해균 선장은 총상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이 있을 정도로 부상이 심했다. 바로 석해균 선장은 근처 나라인 오만으로 이송되어 응급수술을 진행했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아주대 이국종 교수 의료팀이 도착했고, 이국종 교수는 석해균 선장의 상태가 매우 위중한 것으로 판단했다. "어디서 죽든 한국가서 치료하자"라고 말했고, 석해균 선장을 대한민국으로 이송하기로 했다.
석해균 선장의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일반 비행기가 아닌 에어 앰뷸런스가 필요했다. 에어 앰뷸런스는 구내에는 전무했기 때문에 유럽에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결국 스위스 에어 앰뷸런스 회사와 접촉이 성공하여 비행기를 구하지만 이 회사에서는 이국종 교수에게 계약금을 바로 입금하거나 정부 차원에서 보증을 주시 않으면 이용하지 못한다고 얘기했다.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에서 정부에서도 어떠한 확답을 주지 않았고, 결국 이국종 교수는 이용대금만 약 4억 원에 달하는 에어 앰뷸런스 서약서에 개인 명의로 서명하고 비행기를 빌린다.
그렇게 대한민국으로 이송된 석해균 선장은 이국종 교수의 집도 아래 치료를 받게 됐고, 의식을 찾는데 성공한다.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석해균 선장의 목숨을 건지는 것을 끝으로 이번 사건이 마무리 된다. 생포된 5명은 대한민국으로 호송됐고, 재판을 통해 석해균 선장을 쏜 해적은 무기징역을 받고 나머지 4명의 해적들은 각각 13-15년 형을 받았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권을 존중해주는 대한민국 교도소 생활이 너무 행복하다고 전해진
다. 석해균 선장은 자신을 쏜 해적을 찾아가 대화를 했다. 해적은 "가난 때문에 해적질을 했고, 그게 잘못하는 일인지 몰랐다. 정말 죄송하다"라며 사과를 했다. 석해균 선장은 “교도소 생활을 성실히 한다면 감형될 수 있다. 이제 너희를 용서할 수 있다”라며 마호메드 아라히를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
출처: 나무위키
이 말을 들은 아라이는 눈물을 흘리며 석해균 선장과 포옹을 했다. 아덴만 여명 작전은 대한민국 최초의 해적 피랍 구출 작전이었으며, 성공적으로 작전을 수행했다. 이번 구출 작전을 통해 어떠한 협상도 없는 대한민국의 강한 의지를 선보였다.
출처: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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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유제혁 수습기자]
[밸류체인타임스 = 유제혁 수습기자] 21명의 선원이 타고 있는 대형 화물선 삼호 주얼리호에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2011년 1월 15일 당시 삼호 주얼리호는 이란에서 화물을 싣고 오만 앞 아라비아해를 거쳐 스리랑카 콜롬보항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항해 도중 정체불명의 보트가 삼호 주얼리호에 바로 옆까지 접근했다. 그 보트에는 소말리아 해적들이 타고 있었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접근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AK 소총으로 무장한 10명의 해적은 삼호 주얼리호에 순식간에 침입했다.
출처:Wikimedia Commons
선원들은 해적의 접근을 보고 재빨리 숨기 시작했다. 선원들이 숨은 곳은 배의 맨 끝에 있는 로프 저장 창고였다. 하지만 해적들은 배를 샅샅이 뒤지며 찾아 다녔고, 3시간 15분 만에 선원들을 발견하여 4층 선교로 선원들을 끌고 갔다. 소마리아 해적 중 두목으로 보이는 자가 배를 이끄는 석해균에게 처음 건낸 말은 "지금부터 이 배는 우리들이 접수한다"였다. 석해균 선장에게는 운전대를 잡고 소말리아로 향하라고 협박했다. 해적들의 목적은 이 배의 선원들을 인질로 잡고 몸값을 뜯어내려는 것이었다.
삼호 주얼리호 항해사의 조난 신호 통신망을 통해 피랍 소식을 접한 대한민국 정부는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피랍 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의 이전부터 아라비아 인근에서 대한민국 기업의 소속이 계속해서 납치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해적들에 대한 몸값 지불을 반대하는 여론이 일었다. 또한 돈으로만 해결한다면 모든 한국 선박은 피랍의 표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부는 사건에 대한 계기로 해적들과의 협상이 아닌 강공을 선택했다.
정부는 삼호 주얼리호에 해적 소탕 및 인질 구출작전을 명령한다. 이 작전에는 해군특수전전단 UDT/SRAL 소속 청해부대가 작전에 투입됐다. 청해부대는 대한민국의 선박들을 보호하기 위해 2009년부터 정기적으로 파병됐던 부대다. 명령을 받고 급히 파병된 청해부대에는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는데 청해부대를 싣은 최영함과 삼호 주얼리호함와의 거리는 약 2600km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현장에 도착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만약 삼호 주얼리호가 해적들의 뜻대로 소말리아 해역까지 먼저 도달한다면 작전이 난항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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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청해부대를 싣은 최영함은 아덴만으로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삼호 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해적들이 총구를 들이미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갖은 방법을 동원해 시간을 지연시키는데 집중했다. 석해균 선장은 해적들 몰래 해군에 이메일을 보내기 위해 굉장히 대담한 방법을 쓰기도 했다.
출처:Wikimedia Commons
석해균 선장은 "내가 지금 기분이 좋지 않으니 컴퓨터 게임을 하겠다"라고 말하면서 바둑 게임을 두었다고 한다. 어떤 게임인지 알리가 없는 해적들은 한동안 석해균 선장의 컴퓨터를 감시하다가 바둑의 지루함 때문인지 경계가 조금 느슨해졌다. 석해균 선장은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몰래 해군에 이메일을 보내는데 성공한다.
삼호 주얼리호로부터 이메일을 받은 해군은 '선장님 우리 해군이 지금 접근 중이니 최대한 시간을 지연시켜 주십시오'라는 답장을 보냈다. 석해균 선장은 또 한 번 시간을 지연시키기 위해 해적한테 "지금 엔진에 문제가 있으니 엔진실로 가겠다고" 말했다. 해적들은 석해균 선장의 말을 듣지 않았고 배가 점점 느려지자 얼떨결에 석해균 선장에게 우리는 배를 잘 모른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석해균 선장은 ‘해적들이 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라고 확신했다. 배가 느려진 이유는 석해균 선장이 선원들을 시켜 몰래 엔진에 물을 탔기 때문이다.
석해균 선장은 "내가 없으면 소말리아로 절대 갈 수 없으니 쏘는 말든 알아서 해라"라며 말했다. 그렇게 석해균 선장은 엔진을 수리하는 척하면서 시간을 끌었고 바다를 계속 빙빙돌며 소말리아로 가는 시간을 지연시켰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바로 삼호 주얼리호의 설계도와 사진을 입수했고 배 곳곳을 파악하며 군사작전을 수립한다. 그렇게 수립된 작전명 “아덴만 여명 작전”이다.
작전의 목표는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이 인질 21명 전원을 구출하는 것이었다. 청해부대는 바로 작전에 투입되어 이동하는 동안에 배 위에서 가상 훈련이 진행됐다. 당시 작전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채 군사 기밀로 철저한 비밀리에 진행됐다. 만약 작전이 알려지게 된다면 해적들이 이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랍이 된지 4일째 되는 날, 최영함은 삼호 주얼리호를 발견하고 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하지만 해적들은 점점 초초해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뜻대로 진행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적 중 4명은 삼호 주얼리호를 떠나 몽골 상선을 빼앗아 바꾸어 타려고 했다. 하지만 해적들은 청해부대의 눈에 띄게 되었고, 청해부대는 해적들에게 링스 헬기와 고속단정 2척을 진입시켰다. 해적들에게 위협사격을 가해 해적선을 무력화시켰다. 사격을 받은 해적 4명은 헤엄쳐서 다시 삼호 주얼리호에 복귀했다. 당황한 해적들은 밖으로 뛰어나와 대한민국 군함을 향해 백기를 흔들었다.
출처:Crown Copyright
출처:Wikimedia Commons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청해부대는 해적들이 항복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삼호 주얼리호 쪽으로 위협 사격을 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해적들의 속임수였다. 해적들은 청해부대 쪽으로 AK 소총을 난사했다. 이로 인해 청해부대원 3명이 총상을 입게 됐다.
청해부대는 당황하지 않고, 작전타임을 기다린다. 청해부대는 사람이 무기력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새벽시간을 작전 타임으로 정했다. 작전시간 청해부대는 신속하게 부상자 예외 전원 고속단정을 타고, 눈에 띄지 않게 삼호 주얼리호에 침입했다. 그시각 불안해진 해적들은 모든 상황이 석해균 선장이 했다고 짐작하여 석해균 선장을 따로 분리시키고 폭력을 가했다. 해적들이 청해부대가 침입했음을 알았을 때는 해적 중 두목이 석해균 선장에게 총알을 발사한 후였다.
청해부대는 총소리를 듣고 신속하게 해적들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했다. 하지만 석해균 선장은 총상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이 있을 정도로 부상이 심했다. 바로 석해균 선장은 근처 나라인 오만으로 이송되어 응급수술을 진행했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아주대 이국종 교수 의료팀이 도착했고, 이국종 교수는 석해균 선장의 상태가 매우 위중한 것으로 판단했다. "어디서 죽든 한국가서 치료하자"라고 말했고, 석해균 선장을 대한민국으로 이송하기로 했다.
석해균 선장의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일반 비행기가 아닌 에어 앰뷸런스가 필요했다. 에어 앰뷸런스는 구내에는 전무했기 때문에 유럽에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결국 스위스 에어 앰뷸런스 회사와 접촉이 성공하여 비행기를 구하지만 이 회사에서는 이국종 교수에게 계약금을 바로 입금하거나 정부 차원에서 보증을 주시 않으면 이용하지 못한다고 얘기했다.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에서 정부에서도 어떠한 확답을 주지 않았고, 결국 이국종 교수는 이용대금만 약 4억 원에 달하는 에어 앰뷸런스 서약서에 개인 명의로 서명하고 비행기를 빌린다.
그렇게 대한민국으로 이송된 석해균 선장은 이국종 교수의 집도 아래 치료를 받게 됐고, 의식을 찾는데 성공한다.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석해균 선장의 목숨을 건지는 것을 끝으로 이번 사건이 마무리 된다. 생포된 5명은 대한민국으로 호송됐고, 재판을 통해 석해균 선장을 쏜 해적은 무기징역을 받고 나머지 4명의 해적들은 각각 13-15년 형을 받았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권을 존중해주는 대한민국 교도소 생활이 너무 행복하다고 전해진
다. 석해균 선장은 자신을 쏜 해적을 찾아가 대화를 했다. 해적은 "가난 때문에 해적질을 했고, 그게 잘못하는 일인지 몰랐다. 정말 죄송하다"라며 사과를 했다. 석해균 선장은 “교도소 생활을 성실히 한다면 감형될 수 있다. 이제 너희를 용서할 수 있다”라며 마호메드 아라히를 위로해 주었다고 한다.
출처: 나무위키
이 말을 들은 아라이는 눈물을 흘리며 석해균 선장과 포옹을 했다. 아덴만 여명 작전은 대한민국 최초의 해적 피랍 구출 작전이었으며, 성공적으로 작전을 수행했다. 이번 구출 작전을 통해 어떠한 협상도 없는 대한민국의 강한 의지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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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유제혁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