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의 단상] ‘근시안적(近視眼的)’으로 ‘파별천리(跛鼈千里)’ ┃ 밸류체인타임스

김혜선 기자
2025-06-24
조회수 595

[밸류체인타임스=김혜선기자] ‘근시안적(近視眼的)’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사전에는 ‘앞날의 일이나 사물 전체를 보지 못하고 눈앞의 부분적인 현상에만 사로잡히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대개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시야가 좁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이 단어가 정말 부정적인 뜻만 가질까?

 

얼마 전 관악산 정상인 연주대를 올랐다. 원래는 둘레길 산책을 목적으로 가볍게 나섰지만, 언젠가 꼭 한번 정상에 오르고 싶었던 마음에 충동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전에는 등반하는 이들이 거의 없어 길을 잃고 내려오곤 했지만, 주말이라 등산객이 많아 길을 따라가기가 한결 수월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끝없이 이어졌다. 암벽도 많았고, 한참을 오르고 나서도 정상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언제쯤 도착할까’ 하는 마음이 들 무렵,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다잡아준 건 다름 아닌 ‘모자’였다. 시야를 가린 모자 챙 덕분에 멀리 바라볼 수 없어 자연스레 눈앞의 한 걸음에 집중하게 되었다. 끝없이 남은 길이 아닌 지금 딛는 걸음에 집중하자, 내 속도에 맞춰 천천히 올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달해 있었다. 순자(荀子)의 “절름발이 거북이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천리를 간다(파별천리跛鼈千里)”는 말이 떠올랐다.

 

  

[사진출처 unsplash]



자 덕분에 완주할 수 있었다. 눈앞의 한 걸음에 집중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근시안적인 태도는 무조건 부정적인가?”


우울하거나 힘든 시기에는 먼 미래의 목표는 오히려 더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럴 때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것이다.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햇볕을 쬐며 밖으로 나설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희망이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일주일, 한 달, 그리고 어느새 일 년이 지난다. 삶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앞으로 다가올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떠안기보다는 눈앞의 일부터 하나씩 해결하는 ‘근시안적’ 태도가 오히려 도움이 된다. “일단 오늘만 넘겨보자!”는 마음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이 극복의 시작이다.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 『주홍글씨』 속 헤스터 프린은 간통죄를 뜻하는 치욕의 글자 ‘A’를 안고 살아간다. 사람들의 외면과 손가락질 속에서도 그녀는 사회 안으로 다시 들어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선행을 베푼다. 결국 그녀는 ‘A’를 ‘간통(Adultery)’이 아닌, ‘능력 있는(Able)’, ‘존경받는(Admirable)’, ‘천사(Angel)’의 상징으로 바꿔낸다.

 

송길영 저자는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에서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나 자신이며, 멋지게 나이 드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멋진 사람이 나이 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뒤집는 통찰이다. 나에게 닥친 사건이나 얽매는 생각이 혹시 나를 제한하고 있진 않은가? 세상이 만든 틀에 맞추기보다 이면을 살펴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세상의 기준이 반드시 나의 기준일 필요는 없다. 기준은 스스로 만들어가면 된다. 모든 것에는 이중적인 면이 있고,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은 단 하나의 정의로 설명되지 않는다. 부분이면서 전체이고, 일상의 작은 행동이 모여 삶을 만들어간다. 멀리 바라봄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근시안적’ 시선으로 내 주변을 살펴보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듯, 낮게 나는 새는 벌레를 더 쉽게 발견하는 법이다. 그러니 목표를 향해 때로는 ‘근시안적(近視眼的)’으로 ‘파별천리(跛鼈千里)’의 마음으로 걸어나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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