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합리를 선택하는 용기, 행동경제학과 넛지 | 밸류체인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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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권예원 칼럼니스트]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이 이성적 판단의 결과라고 믿는다. 물건을 구매하고, 영상을 시청하고, 음식을 주문할 때도 스스로의 의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선택이 결코 온전히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배달 앱을 열면 인기 메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쇼핑몰에서는 '오늘의 특가'에 시선이 고정된다. 영상 플랫폼은 사용자가 다음 영상을 고민할 틈도 없이 알고리즘이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자동 재생한다. 과연 우리는 정말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고 있을까.
행동경제학, 인간의 비합리성을 증명하다
기존 경제학은 인간이 언제나 합리적 판단을 내린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현실의 선택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이성보다 감정에 흔들리고, 충동적으로 소비하며, 손해를 알면서도 잘못된 선택을 반복한다.
사진출처:unsplash
이러한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 '행동경제학'이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이 생각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감정적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연구해 이 분야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는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의 사고 체계를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나눠 설명한다.
시스템1과 시스템2
시스템 1은 자동적이고 빠르며 직관적이다. 의식적인 노력 없이 작동하며, 감정과 경험, 본능에 의존한다. 운전하면서 대화를 나누거나, 표정만 보고 감정을 읽거나, 마트에서 익숙한 제품을 집어 드는 행동이 모두 시스템 1의 영역이다. 대부분의 일상적 판단이 여기서 이루어진다.
시스템 2는 느리고 논리적이며 분석적이다.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거나, 낯선 곳에서 길을 찾거나, 계약서를 꼼꼼히 검토하는 작업이 해당된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뇌는 본능적으로 시스템 2의 사용을 회피하려 한다.
사진출처:unsplash
문제는 시스템 1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정작 시스템 2가 필요한 순간에 이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한다는 데 있다.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도 깊은 사고 없이 빠른 직관에 기대게 되는 것이다.
기업과 마케터는 이 원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남은 수량 3개', '지금 가장 인기 있는 상품', 자동으로 체크된 구독 버튼 등은 모두 시스템 1의 즉각적 반응을 자극해 소비자가 깊이 생각하기 전에 불안감과 충동을 느끼고 행동하게 만든다. 이 설계는 소비자가 아닌 판매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자주 ‘생각하지 않는다.’
넛지, 직관을 움직이는 기술
이처럼 인간의 심리를 이용해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기법을 '넛지(nudge)'라고 한다.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와 캐스 선스타인이 저서 『넛지』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선택을 강제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환경 설계를 통해 사람들이 특정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이끈다.
미국에서 진행된 연금 가입 연구는 넛지의 효과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금 가입을 원하는 직원이 별도로 신청해야 하는 '옵트인' 방식에서는 가입률이 49%에 그쳤다. 반면, 자동으로 가입되고 탈퇴를 원할 경우 별도 신청이 필요한 '옵트아웃' 방식에서는 가입률이 86%로 치솟았다. 같은 제도임에도 기본값 하나를 바꾸자 가입률이 두 배 가까이 달라진 것이다.
사진출처:unsplash
이는 사람들이 기본값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줌과 동시에, 얼마나 많은 선택이 시스템 1에 의해 이루어지는지를 방증한다. 넛지는 이성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 자체를 움직이는 기술이다.
넛지의 명과 암
넛지는 분명 유용하다. 저축률을 높이고, 건강한 습관을 형성하며, 사회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실제로 여러 국가에서 장기 기증, 친환경 정책, 금연 캠페인 등에 넛지를 활용하고 있다.
사진출처:unsplash
그러나 넛지는 인간의 무의식을 이용해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 선택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위험성도 지닌다. 오늘날 플랫폼 기업들은 시스템 1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정교하게 파악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추천 영상과 반복적인 알림으로 사용자가 더 오래 머물고 더 많이 소비하도록 설계한다. 스스로 선택한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설계된 방향 안에서 움직이고 있을 수 있다.
생각하는 힘을 되찾아야 한다
현대사회는 인간의 시스템1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빠른 영상과 자극적인 광고, 몰아치는 이슈와 실시간 알람 속에서 우리는 깊게 고민할 힘을 잃고 있다.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반응만을 요구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 멈춰 '생각'하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본능과 직관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지 모른다. 지루하면 넘기고, 귀찮으면 포기하고, 오래 걸리면 피하는 습관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점점 생각하지 않는 사람으로 굳어진다. 사회가 정해놓은 흐름에 따라 그저 주어진 선택지를 고르는 삶으로 흘러갈 수 있다.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멈추고, 돌아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시스템 2를 의식적으로 작동시키는 것이다. 중요한 결정 앞에서는 스스로에게 신호를 보내야 한다. 지금 이 문제가 직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다. 감정이 앞서는 순간이라면 결정을 하루 이상 미루는 것도 방법이다. 계약서나 서류를 검토할 때는 숫자를 직접 계산해보고,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의견을 찾아 스스로의 논리를 점검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넛지의 영향력은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넛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느냐에 있다. 언제나 감정을 배제하고 완전히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의 선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스스로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사진출처:unsplash
넛지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만의 선택을 하고 싶다면, 불편함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편리함 대신 지루함을 택하고, 지름길 대신 돌아가는 길을 걷는 것이다. 현재의 귀찮음을 감수하며 미래를 바라보는 선택이다.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갖춰진 시스템 안에서 A와 B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C라는 불편한 길을 스스로 선택하는 용기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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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권예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