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체인타임스=최한성 수습기자] 프란체스코 토티(Francesco Totti)는 1976년 9월 27일 노동계급 거주지인 로마 구도심 비아 베툴로니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은행원이었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였다. 토티는 생후 9개월부터 축구공을 껴안고 잠들곤 했다. 만 한 살이 되기 전에 걷기 시작하면서 해변에서 축구공을 가지고 놀아 토티의 어머니를 놀라게 했다.
토티의 모친은 토티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어린시절 토티는 도벽이 있었다. 모친은 토티에게 "항상 내면이 평화롭게 깨끗해야 한다"며 예의를 강조했다. 토티는 동네 축구교실 포르티투도에서 처음 축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10살부터 13살까지 4부리그였던 로디지아니에서 훈련을 받았다.
당시 어린 토티를 가르쳤던 스승 네로니는 "열살 때 프란체스코는 작고 빨랐다. 타고난 재능이 보였다. 그는 유전자에 축구를 품고 태어났다"라고 말했다. 토티는 어머니의 과잉보호로 키워졌다. 어머니는 항상 토티와 같이 돌아다녔고, AC 밀란이 어린 토티에게 관심을 보일 때도 "프란체스코는 로마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습니다"라고 토티를 로마에서 내보내지 않으려 했다.
시간이 지나서 다른 친구들이 모두 팀을 옮길 때 토티는 로마에 남았다. 토티가 팀을 라치오로 이적하려 했으나 어머니가 반대해 가지 못했다. 토티가 16살 때인 1993년 3월 브레시아 원정을 나서던 AS 로마 감독인 보슈코프가 토티를 데려갔다. 이 경기에서 17번을 달고 첫 성인팀 데뷔를 하게 됐다.
1997년 토티 축구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스승인 제만 감독이 라치오를 떠나 AS 로마로 왔고, 토티에게 창의성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제만 감독은 축구계에 유명한 공격전술의 장본인이었다. “골만 많이 넣을 수 있다면 수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게 제만 감독의 철학이었다.
제만 감독은 1998년 22살의 토티에게 세리에A 역대 최연소 주장완장을 채워주었다. 주장 선임은 감독 권한이었지만 제만 감독은 선수단 투표로 넘겼고, 1등을 한 알다이르가 어린 토티에게 양보한 것이다. 토티는 페널티 박스에서 원터치로 찬스를 만들고, 효율적인 축구를 배워나가며 토티는 한 단계 월드클래스에 가까워졌다.
토티는 세리에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게 됐다. 유로 2000에서 이탈리아는 철벽수비를 자랑했고, 토티는 공격의 선봉에 섰다. 토티는 벨기에를 상대로 국가대표 첫 골을 넣었다. 8강 루마니아전에서도 골을 넣었다. 팀은 결승에서 프랑스에게 패했지만 토티는 결승 MOM으로 뽑혔다. 대회 올스타팀에도 선정됐다.
1999년 파비오 카펠로가 AS 로마의 감독으로 취임됐다. 카펠로 감독은 토티와 빈센초 몬텔라,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로 공격진을 강화했다. 이 공격 3인방은 로마가 2000-2001 시즌 세리에A에서 터뜨린 68골 중 47골을 합작해서 넣었다. 바티스투타가 "토티는 내가 함께 뛰어본 공격 파트너 중 최고였다. 판단이 빨랐고, 스트라이커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라고 토티를 극찬했다.
토티는 득점과 도움을 모두 해낼줄 아는 찬스메이커였다. 토티는 2000-2001 시즌 13골을 터뜨리며, 2001년 AS 로마가 리그 우승을 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것이 토티 커리어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리그 우승이었다. 토티는 국가대표팀에서 등번호 10번을 배정받았다.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해야 했던 대회가 2002 한일 월드컵이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토티의 월드컵 데뷔라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한국과의 16강전에서 패배해 탈락했다. 특히 토티는 연장전에서 다이빙 행위로 퇴장을 당해 팀패배의 주역으로 주목 받았다.이탈리아로 돌아온 토티는 감독인 카펠로와 잦은 충돌을 일으켰다. 카펠로, 토티 둘 다 너무 완고했고, 독선적이었다.
근엄한 감독 카펠로와 무정부주의적 리더 토티는 차츰 멀어져 2004년 카펠로가 떠나면서 이 둘의 인연은 허무하게 끝났다. 토티는 2004년 20골을 득점하면서 AS 로마의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으며, 2연속으로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상을 수상했다. 카펠로가 떠나고 시즌 중 네 번의 감독교체를 겪고, AS 로마는 8위까지 떨어졌다.
토니는 데뷔 8년 만에 100골을 2004년에 달성했다. 격한 한해를 보내고 2005-2006 시즌 스팔레티 감독 하에서 토티는 포워드로서 크로스나 패스를 기다리지 않고, 후방으로 내려가 볼을 받아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공간을 창출해주는 플레이를 배웠다. 이 새로운 포지션에서 토티는 전보다 더 많은 득점을 했고, 24경기에서 15골을 넣었다. 이때 로마는 11연승을 구가하기도 했다.
토티는 2006 독일 월드컵을 4개월 앞두고 리그에서 인대손상을 입었다. 다행히 부상에서 빨리 돌아와 토티는 월드컵에 가까스로 합류하게 됐다. 3개월동안 부상으로 거의 훈련을 하지 못했음에도 리피 감독은 토티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였고, 회복에만 전념하라고 안심시켰다.
대회기간 내내 발목에 금속판을 박으며 뛴 토티는 대회 7경기를 모두 출전했다. 토티는 대회 도움왕에 올랐고, 이탈리아 4번째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다. 2006-2007 시즌 26골로 득점왕을 차지하면서 개인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토탈로 따지면 50경기 32골 13도움이었다.
토티 개인으로서는 최고였으나 팀은 2000년대 들어서 세리에A 준우승만 9번을 하는 결과를 낳았다. 토티는 유럽리그 최다득점자에 올라 골든슈를 받았다. 발롱도르는 10위에 그쳤다. 리그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토티는 유독 코파 이탈리아에선 우승컵을 잘 들어올렸고 그 횟수는 통산 2번이나 됐다.
이후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로마는 어려운 기간을 보냈다. 스팔레티 감독도 4년 만에 스스로 사임했다. 하지만 라니에리 감독이 오고나서 토티는 유로파와 리그를 넘나들며 3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33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로마와 5년계약을 체결했고, 기대에 부응하며 리그 24경기 무패행진에 일조했다.
토티는 리그 마지막 남은 3경기까지 인테르와 경쟁을 펼쳤지만 아쉽게 리그 우승을 놓쳤다. 토티는 2010년 5월 5일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 종료직전 마리오 발로텔리를 걷어차고 퇴장 당했다. 당시 발로텔리가 토티에게 "너무 늙었어"라고 도발한 것에 화가 치민 이유였다.
이전부터 토티의 멘탈에 문제가 있는 것은 여러 차례 제기됐다. 2005년만 해도 토티는 리그내 최다 퇴장선수였고, 2007년에는 라치오와 더비전 넘어진 라치오 선수를 발로 2번이나 걷어차 옐로 카드를 받은 적이 있었다. 토티는 선수뿐만 아니라 퇴장당한 후 데려나가는 스탬을 밀쳐서 쓰러뜨린 적도 있었다.
토티는 골든 풋상을 수상했지만 라니에리 감독은 토티를 신뢰하지 않았고, 벤치에서 보내게 하는 시간이 많았다. 토티는 출전시간이 줄어들면서 21경기 3골을 넣는데 그쳤다. 2011년 2월 20일 제노아전 패배로 라니에리가 팀을 떠나고, 몬텔라가 대행감독으로 임명되자 전술이 예전 스팔레티 감독 시절로 돌아갔다.
토티는 다시 활약을 하기 시작해 5경기에서 7골을 뽑았다. 시즌이 끝나갈때쯤 마지막 13경기에서 토티는 12골을 포함해 토탈 15골을 넣으며 재기에 성공했다. 루이스 엔리케 감독이 온 2011년 초반 토티가 부상을 당한 사이 AS 로마는 흔들렸다. 그해 12월, 토티가 돌아온 후 로마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골을 노리기보다는 미드필더와 공격진을 연결하는 역할에 주력했다.
2012월 1월이 되어 통산 212골을 넣은 토티는 세리에A 단일클럽 최다골 기록 보유자가 됐다. 팀성적이 시원치 않아 엔리케가 자진 사임했고, 로마는 15년 만에 유럽대회 진출에 실패했다. 13년전 감독이었던 제만이 다시 부임하며 토티와 재회했다.
토티는 2013-2014 시즌 리그 준우승을 했고, 팀의 4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복귀에 기여했다. 토티는 2014년 9월 30일 맨시티와의 원정경기에서 챔피언스리그 역대 최고령 득점자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이 골로 개인 통산 300골을 달성했다.
2015-2016 시즌 들어서 급격히 팀내에서 입지가 줄어들었다. AS 로마가 제코의 영입에 이어 겨울 이적시장 제로톱으로 쓸 새로운 선수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페로티와 AS 모나코로부터 스테판 엘 샤라위까지 영입되어 토티가 벤치를 지키는 일이 많아졌다.
토티의 나이도 마흔이기 때문에 풀타임 출전이 힘들었지만 토티가 경기에 등장한 시간 동안에는 로마가 활기를 찾았다. 토티는 2017년 리그 마지막 경기 후 치뤄진 자신의 은퇴식에서 눈물을 보였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도 함께 울었다. 25년간 로마를 지배해온 캡틴 프란체스코 토티는 그라운드를 떠났다.
(출처= Devian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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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최한성 수습기자]
[밸류체인타임스=최한성 수습기자] 프란체스코 토티(Francesco Totti)는 1976년 9월 27일 노동계급 거주지인 로마 구도심 비아 베툴로니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은행원이었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였다. 토티는 생후 9개월부터 축구공을 껴안고 잠들곤 했다. 만 한 살이 되기 전에 걷기 시작하면서 해변에서 축구공을 가지고 놀아 토티의 어머니를 놀라게 했다.
토티의 모친은 토티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어린시절 토티는 도벽이 있었다. 모친은 토티에게 "항상 내면이 평화롭게 깨끗해야 한다"며 예의를 강조했다. 토티는 동네 축구교실 포르티투도에서 처음 축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10살부터 13살까지 4부리그였던 로디지아니에서 훈련을 받았다.
당시 어린 토티를 가르쳤던 스승 네로니는 "열살 때 프란체스코는 작고 빨랐다. 타고난 재능이 보였다. 그는 유전자에 축구를 품고 태어났다"라고 말했다. 토티는 어머니의 과잉보호로 키워졌다. 어머니는 항상 토티와 같이 돌아다녔고, AC 밀란이 어린 토티에게 관심을 보일 때도 "프란체스코는 로마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습니다"라고 토티를 로마에서 내보내지 않으려 했다.
시간이 지나서 다른 친구들이 모두 팀을 옮길 때 토티는 로마에 남았다. 토티가 팀을 라치오로 이적하려 했으나 어머니가 반대해 가지 못했다. 토티가 16살 때인 1993년 3월 브레시아 원정을 나서던 AS 로마 감독인 보슈코프가 토티를 데려갔다. 이 경기에서 17번을 달고 첫 성인팀 데뷔를 하게 됐다.
1997년 토티 축구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스승인 제만 감독이 라치오를 떠나 AS 로마로 왔고, 토티에게 창의성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제만 감독은 축구계에 유명한 공격전술의 장본인이었다. “골만 많이 넣을 수 있다면 수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게 제만 감독의 철학이었다.
제만 감독은 1998년 22살의 토티에게 세리에A 역대 최연소 주장완장을 채워주었다. 주장 선임은 감독 권한이었지만 제만 감독은 선수단 투표로 넘겼고, 1등을 한 알다이르가 어린 토티에게 양보한 것이다. 토티는 페널티 박스에서 원터치로 찬스를 만들고, 효율적인 축구를 배워나가며 토티는 한 단계 월드클래스에 가까워졌다.
토티는 세리에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게 됐다. 유로 2000에서 이탈리아는 철벽수비를 자랑했고, 토티는 공격의 선봉에 섰다. 토티는 벨기에를 상대로 국가대표 첫 골을 넣었다. 8강 루마니아전에서도 골을 넣었다. 팀은 결승에서 프랑스에게 패했지만 토티는 결승 MOM으로 뽑혔다. 대회 올스타팀에도 선정됐다.
1999년 파비오 카펠로가 AS 로마의 감독으로 취임됐다. 카펠로 감독은 토티와 빈센초 몬텔라,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로 공격진을 강화했다. 이 공격 3인방은 로마가 2000-2001 시즌 세리에A에서 터뜨린 68골 중 47골을 합작해서 넣었다. 바티스투타가 "토티는 내가 함께 뛰어본 공격 파트너 중 최고였다. 판단이 빨랐고, 스트라이커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라고 토티를 극찬했다.
토티는 득점과 도움을 모두 해낼줄 아는 찬스메이커였다. 토티는 2000-2001 시즌 13골을 터뜨리며, 2001년 AS 로마가 리그 우승을 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것이 토티 커리어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리그 우승이었다. 토티는 국가대표팀에서 등번호 10번을 배정받았다.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해야 했던 대회가 2002 한일 월드컵이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토티의 월드컵 데뷔라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한국과의 16강전에서 패배해 탈락했다. 특히 토티는 연장전에서 다이빙 행위로 퇴장을 당해 팀패배의 주역으로 주목 받았다.이탈리아로 돌아온 토티는 감독인 카펠로와 잦은 충돌을 일으켰다. 카펠로, 토티 둘 다 너무 완고했고, 독선적이었다.
근엄한 감독 카펠로와 무정부주의적 리더 토티는 차츰 멀어져 2004년 카펠로가 떠나면서 이 둘의 인연은 허무하게 끝났다. 토티는 2004년 20골을 득점하면서 AS 로마의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으며, 2연속으로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상을 수상했다. 카펠로가 떠나고 시즌 중 네 번의 감독교체를 겪고, AS 로마는 8위까지 떨어졌다.
토니는 데뷔 8년 만에 100골을 2004년에 달성했다. 격한 한해를 보내고 2005-2006 시즌 스팔레티 감독 하에서 토티는 포워드로서 크로스나 패스를 기다리지 않고, 후방으로 내려가 볼을 받아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공간을 창출해주는 플레이를 배웠다. 이 새로운 포지션에서 토티는 전보다 더 많은 득점을 했고, 24경기에서 15골을 넣었다. 이때 로마는 11연승을 구가하기도 했다.
토티는 2006 독일 월드컵을 4개월 앞두고 리그에서 인대손상을 입었다. 다행히 부상에서 빨리 돌아와 토티는 월드컵에 가까스로 합류하게 됐다. 3개월동안 부상으로 거의 훈련을 하지 못했음에도 리피 감독은 토티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였고, 회복에만 전념하라고 안심시켰다.
대회기간 내내 발목에 금속판을 박으며 뛴 토티는 대회 7경기를 모두 출전했다. 토티는 대회 도움왕에 올랐고, 이탈리아 4번째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다. 2006-2007 시즌 26골로 득점왕을 차지하면서 개인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토탈로 따지면 50경기 32골 13도움이었다.
토티 개인으로서는 최고였으나 팀은 2000년대 들어서 세리에A 준우승만 9번을 하는 결과를 낳았다. 토티는 유럽리그 최다득점자에 올라 골든슈를 받았다. 발롱도르는 10위에 그쳤다. 리그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토티는 유독 코파 이탈리아에선 우승컵을 잘 들어올렸고 그 횟수는 통산 2번이나 됐다.
이후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로마는 어려운 기간을 보냈다. 스팔레티 감독도 4년 만에 스스로 사임했다. 하지만 라니에리 감독이 오고나서 토티는 유로파와 리그를 넘나들며 3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33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로마와 5년계약을 체결했고, 기대에 부응하며 리그 24경기 무패행진에 일조했다.
토티는 리그 마지막 남은 3경기까지 인테르와 경쟁을 펼쳤지만 아쉽게 리그 우승을 놓쳤다. 토티는 2010년 5월 5일 코파 이탈리아 결승에서 종료직전 마리오 발로텔리를 걷어차고 퇴장 당했다. 당시 발로텔리가 토티에게 "너무 늙었어"라고 도발한 것에 화가 치민 이유였다.
이전부터 토티의 멘탈에 문제가 있는 것은 여러 차례 제기됐다. 2005년만 해도 토티는 리그내 최다 퇴장선수였고, 2007년에는 라치오와 더비전 넘어진 라치오 선수를 발로 2번이나 걷어차 옐로 카드를 받은 적이 있었다. 토티는 선수뿐만 아니라 퇴장당한 후 데려나가는 스탬을 밀쳐서 쓰러뜨린 적도 있었다.
토티는 골든 풋상을 수상했지만 라니에리 감독은 토티를 신뢰하지 않았고, 벤치에서 보내게 하는 시간이 많았다. 토티는 출전시간이 줄어들면서 21경기 3골을 넣는데 그쳤다. 2011년 2월 20일 제노아전 패배로 라니에리가 팀을 떠나고, 몬텔라가 대행감독으로 임명되자 전술이 예전 스팔레티 감독 시절로 돌아갔다.
토티는 다시 활약을 하기 시작해 5경기에서 7골을 뽑았다. 시즌이 끝나갈때쯤 마지막 13경기에서 토티는 12골을 포함해 토탈 15골을 넣으며 재기에 성공했다. 루이스 엔리케 감독이 온 2011년 초반 토티가 부상을 당한 사이 AS 로마는 흔들렸다. 그해 12월, 토티가 돌아온 후 로마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골을 노리기보다는 미드필더와 공격진을 연결하는 역할에 주력했다.
2012월 1월이 되어 통산 212골을 넣은 토티는 세리에A 단일클럽 최다골 기록 보유자가 됐다. 팀성적이 시원치 않아 엔리케가 자진 사임했고, 로마는 15년 만에 유럽대회 진출에 실패했다. 13년전 감독이었던 제만이 다시 부임하며 토티와 재회했다.
토티는 2013-2014 시즌 리그 준우승을 했고, 팀의 4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복귀에 기여했다. 토티는 2014년 9월 30일 맨시티와의 원정경기에서 챔피언스리그 역대 최고령 득점자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이 골로 개인 통산 300골을 달성했다.
2015-2016 시즌 들어서 급격히 팀내에서 입지가 줄어들었다. AS 로마가 제코의 영입에 이어 겨울 이적시장 제로톱으로 쓸 새로운 선수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페로티와 AS 모나코로부터 스테판 엘 샤라위까지 영입되어 토티가 벤치를 지키는 일이 많아졌다.
토티의 나이도 마흔이기 때문에 풀타임 출전이 힘들었지만 토티가 경기에 등장한 시간 동안에는 로마가 활기를 찾았다. 토티는 2017년 리그 마지막 경기 후 치뤄진 자신의 은퇴식에서 눈물을 보였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도 함께 울었다. 25년간 로마를 지배해온 캡틴 프란체스코 토티는 그라운드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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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최한성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