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형태의 법정 화폐 CBDC | 밸류체인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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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unsplash)
[밸류체인타임스=이지유 칼럼니스트] 지갑에서 현금이 사라진 지 오래다. 2026년 현재 대부분의 거래는 카드나 간편결제로 이뤄지며, 현금 없는 사회는 이미 일상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정부는 또 다른 형태의 디지털 화폐인 CBDC(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도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전 세계 130여 개국이 앞다투어 개발에 나선 CBDC는 기존의 디지털 결제와 무엇이 다르며, 왜 이토록 주목받는 것일까?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법정 화폐로, 쉽게 말해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원화'다. 기존의 계좌이체나 카드 결제 역시 디지털 방식이지만, 이는 반드시 시중은행이라는 중개자를 거쳐야 한다. 시중은행의 예금 잔액은 엄밀히 말해 은행이 고객에게 지급해야 할 부채를 기록한 숫자에 불과하다. 반면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고 가치를 보증하는 화폐다. 지폐나 동전과 같은 공신력을 지니되 물리적 형태 없이 디지털로만 존재하며, 가격 변동성이 큰 민간 암호화폐와 달리 법정통화로서 안정적인 가치가 보장된다.
중앙은행들이 CBDC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현금 사용 급감으로 민간 결제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었고, 이는 위기 상황에서 국가의 통화정책 수단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CBDC는 디지털 시대에도 중앙은행이 화폐를 직접 공급하고 통제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 된다. 또한 은행 계좌가 없어도 스마트폰만 있다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어 금융 소외 계층을 포용할 수 있으며, 복잡한 중개 과정을 생략한 실시간 국제 송금을 통해 결제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출처=unsplash)
한국은행은 2026년을 CBDC 실증의 원년으로 삼고 두 가지 경로로 접근하고 있다. 소매용 실험인 '프로젝트 한강'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디지털 바우처 형태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육아수당을 CBDC로 지급하면 분유나 기저귀 등 지정된 품목에서만 사용 가능하며, 유흥업소 등 목적 외 결제는 원천 차단된다. 이는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다. 한편 '예금 토큰 프로젝트'는 기업 간 거래를 위해 은행 예금을 블록체인 기반 토큰으로 변환하여 실시간 결제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이다. 한국은 싱가포르, 프랑스 등과 함께 BIS의 '아고라 프로젝트'에도 참여하며 국가 간 CBDC 연결망 실험을 주도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의 도입 속도는 국가별로 상이하다. 중국은 이미 28개 도시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시범 운영하며 공무원 급여 지급 등에 활용, 거래 전반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설계를 마친 후 프라이버시 보호 장치를 보완하여 2028년 이후 발행할 계획이며, 미국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고려해 기술 연구 위주의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반면 금융 인프라가 낙후된 바하마나 나이지리아 같은 신흥국들은 기존 시스템을 건너뛰는 도약 전략의 일환으로 이미 상용화를 마친 상태다.
물론 CBDC 도입에 따른 우려도 존재한다. 가장 큰 쟁점은 프라이버시 침해다. 모든 거래 내역이 중앙은행 서버에 기록되면 국가가 개인의 소비 패턴이나 이동 경로 등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권위주의 국가에서 특정 인사의 경제 활동을 제한하는 등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이 있다. 또한 금융 안정성에 대한 우려도 크다. 시중은행 예금이 더 안전한 자산인 CBDC 계좌로 썰물처럼 빠져나갈 경우, 은행의 대출 여력이 급감하고 위기 시 실시간 '디지털 뱅크런'이 발생하여 금융 시스템 전체가 마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CBDC와 스테이블 코인은 디지털 화폐라는 외형은 같으나 목적이 상이하다. CBDC는 국가가 통화정책을 위해 발행하며 안정성과 통제에 방점을 둔다. 반면 민간 기업이 발행하는 스테이블 코인은 주로 암호화폐 생태계의 결제나 투자를 위해 활용되며, 탈중앙화 금융 시장의 혁신 도구로 쓰인다. 한국 정부는 공공 부문의 효율성을 높이는 CBDC와 민간의 자율적 혁신을 촉진하는 규제 기반 스테이블 코인을 병행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결국 CBDC는 단순한 결제 기술의 도입을 넘어, 돈의 본질과 국가 및 개인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중대한 과제다. 기술적 완성도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다. 프라이버시 보호의 수준과 은행의 역할 재정립 등에 대한 투명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2026년 한국은행이 진행하는 실거래 테스트는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내리는 우리의 선택이 향후 수십 년간 대한민국 경제 시스템의 근간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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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이지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