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꾼 협정, ‘플라자 합의’의 명암 | 밸류체인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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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이지유 칼럼니스트]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 호텔. 미국, 일본, 서독, 프랑스, 영국 등 세계 주요 5개국(G5)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이 발표한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는 20세기 후반 세계 경제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뒤바꾼 역사적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은 고(高)달러 현상과 심각한 무역 적자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강한 달러는 미국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제조업 기반을 흔들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G5는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고,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가치를 높이기로 합의했다. 이는 시장의 자율에 맡겨지던 환율 체계를 국가 간 협의를 통해 직접 조정한, 매우 이례적이면서도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국제 공조의 시작, 그러나 균형은 깨졌다

플라자 합의는 주요 선진국들이 외환시장에 공동 개입해 특정 통화의 가치를 조정한 첫 다자간 합의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이는 국제 공조의 상징으로 평가받으며, 세계 경제가 협력의 틀 속에서 안정화를 모색한 첫 시도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각국의 경제 구조 차이와 정책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추진된 ‘불균형한 합의’라는 비판도 남겼다. 그 결과, 플라자 합의는 국가별로 극명하게 다른 결과를 낳았다.

일본, ‘잃어버린 30년’의 시작

가장 큰 충격을 받은 나라는 일본이었다. 합의 직후 엔화 가치는 달러 대비 거의 두 배 가까이 절상되었다. 수출 의존도가 높았던 일본 산업은 즉각 타격을 받았고,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며 경기 둔화 조짐이 나타났다.

이에 일본은행은 금리를 5%에서 2.5%로 인하했고, 정부는 대규모 공공투자와 유동성 공급으로 경기 부양에 나섰다. 그러나 시중에 풀린 자금은 제조업이나 생산 부문이 아닌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흘러들며 ‘거대한 자산 버블’을 형성했다.

이후 1990년대 초 일본은행이 금리를 인상하자 버블은 급격히 붕괴되었고, 주식과 부동산 가격은 폭락했다. 그 여파로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리는 장기 불황의 늪에 빠졌다. 2025년 현재까지도 일본은 그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 달러 약세로 얻은 회복의 발판

반면 미국은 플라자 합의의 최대 수혜국으로 평가된다. 달러 약세는 미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였고, 수출이 늘어나면서 무역 적자가 완화되었다. 일본과 독일 통화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미국의 경제 부담이 줄었으며, 이는 1980년대 후반 미국 경기 회복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또한 플라자 합의를 계기로 미국은 제조업 중심의 경제 구조에서 기술과 금융 중심의 산업 구조로 전환했다. 실리콘밸리의 부상, 정보기술(IT) 산업의 발전, 금융자본의 팽창 등 오늘날 미국 경제의 기반은 이 시기에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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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의 그림자, 세계 경제의 교훈

플라자 합의는 단기적으로는 국제 공조를 통한 환율 안정의 모범 사례로 평가되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 간 불균형과 경제 구조적 문제를 심화시킨 사건이기도 했다. 미국은 회복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일본은 거품 붕괴 이후 장기 침체를 겪었다.

40년이 지난 2025년, 세계는 다시 환율과 무역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각국의 통화 정책은 여전히 미묘한 힘의 균형 위에서 움직인다. 플라자 합의가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환율은 단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경제의 근본 체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당시의 협력은 한 나라의 운명을 되살렸지만, 다른 나라에는 장기 불황의 씨앗을 남겼다. 플라자 합의는 국제 협력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동시에, 그 협력이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도 증명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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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이지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