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임차인’만 울게 된 임대차 3법, 보호법의 역설 | 밸류체인타임스

이지유 칼럼니스트
2025-10-26
조회수 1707

(출처=unsplash)

[밸류체인타임스=이지유 칼럼니스트] 2020년 7월,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목표로 도입된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임차권등기명령제도)이 시행된 지 4년이 넘었다. 그러나 법의 취지와 달리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갈등이 오히려 심화되고, 시장의 왜곡 현상이 커지면서 ‘선량한 임차인’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도의 방향은 옳았지만, 현실과의 괴리를 좁히지 못한 채 법적 사각지대가 확대됐다”며 정교한 제도 보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실거주”를 빌미로 한 갱신 거절, 악용되는 법의 허점

임대차 분쟁 가운데 가장 흔한 유형은 임대인이 ‘실거주’를 명분으로 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경우다. 법은 임대인이 실제로 거주할 필요가 있을 경우 갱신을 거절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만, 이를 악용해 더 높은 임대료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던 김모 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 씨는 집주인이 “부모님이 실거주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갱신을 거절하자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했다. 그러나 1년 뒤, 우연히 자신의 옛집이 다시 전세 매물로 나와 있고, 새로운 세입자가 더 높은 가격으로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 씨는 결국 소송을 통해 임대인의 허위 진술을 입증하고 손해배상을 받았지만, 법적 공방에 드는 시간과 정신적 고통은 온전히 본인의 몫이었다.


이처럼 현행법의 허점을 이용해 임대인이 ‘실거주’ 명목으로 세입자를 내보내는 사례가 늘면서, 정직하게 계약을 이행한 세입자만 피해를 보는 구조적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출처=unsplash)

소유권 이전과 갱신요구권의 충돌

또 다른 주요 분쟁은 소유권 이전 시점과 임차인의 갱신요구권이 충돌하는 문제다. 임차인이 계약 만료 6개월~2개월 전 갱신을 요구했음에도, 그 사이 새 집주인이 소유권 이전을 마치면 ‘실거주’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는 판례가 나오면서 논란이 커졌다.


대법원은 “새 집주인이 임차인의 갱신요구권 행사 기간 내에 소유권 등기를 마쳤다면, 실거주 목적의 갱신 거절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이 판결 이후, 임차인이 갱신을 요청했음에도 매매 시점이 엇갈리면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법의 예측 가능성이 훼손되어 임차인의 권리가 사실상 무력화됐다”고 지적한다.


임차권등기명령제도의 한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도입된 임차권등기명령제도 역시 한계를 드러냈다. 실제로 한 임차인은 임차권등기를 완료한 뒤 안심하고 이사했지만, 이후 해당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대법원은 “임차권등기를 하더라도, 이사 후에는 대항력이 소급해 유지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로 인해 임차인은 집을 비운 순간 대항력을 상실하게 되어, 경매 절차에 휘말리면 사실상 보증금을 회수하기 어려운 구조에 놓이게 된다. 결과적으로 법이 임차인을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불안을 가중시키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시장 왜곡과 새로운 불안

임대차 3법은 부동산 시장의 흐름 자체를 변화시켰다. 임대인들이 전월세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신규 계약 시 임대료를 크게 올리거나,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경우가 급증했다. 이로 인해 전세 매물은 급감하고, 임대료 상승세가 이어지며 세입자들의 주거비 부담이 더 커졌다.


최근에는 계약 기간을 최대 9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3+3+3 임대차법안’이 국회에 발의되면서 시장의 불안감이 한층 커지고 있다. 임대인들은 장기 계약으로 인한 재산권 침해를 우려하고, 세입자들은 시장 불안정 속에서 실질적 주거 안정이 담보되지 않는 현실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출처=unsplash)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정교한 보완 필요

전문가들은 “임대차 3법의 근본적인 목적은 세입자 보호였지만,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규제는 오히려 선량한 임차인과 임대인 모두를 곤란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임대차 제도의 보완을 위해선 ▲실거주 요건 검증 강화 ▲임차권등기명령제의 실효성 확보 ▲시장 상황에 따른 유연한 임대료 조정 장치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임대차 3법은 세입자 보호라는 순수한 취지로 시작됐지만, 그 이면에는 법적 공백과 불균형이 존재한다. 법과 제도가 현실과 괴리될 때,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언제나 ‘선량한 임차인’이다. 이제는 보호의 이름 아래 생겨난 불균형을 바로잡고, 진정한 주거 안정을 위한 실질적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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