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 속 변동환율제, 무엇을 시사하는가 | 밸류체인타임스

권예원 칼럼니스트
2025-10-14
조회수 2307


[밸류체인타임스=권예원 칼럼니스트] 21세기 들어 글로벌 경제는 여러 차례의 거대한 위기를 겪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고금리와 고물가 시대는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이처럼 반복되는 경제 불안 속에서 다양한 방식의 정책적 대응을 시도해왔다. 그 중에서도 '환율 정책'은 경제 위기를 완화하는 핵심 수단으로 자주 활용돼 왔다.


그러나 환율을 정부가 직접 조정할 수 있는 고정환율제와 달리, 변동환율제는 시장에 환율 결정을 맡기기 때문에 이를 적극적인 정책 수단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과연 변동환율제는 위기 속에서 공격적인 무기가 될까, 아니면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장치가 될 수 있을까?


변동환율제란 무엇인가?

변동환율제는 통화의 가치가 외환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되는 제도다. 정부나 중앙은행의 인위적인 개입은 최소화되며, 반대로 고정환율제는 정부가 환율을 특정 수준에 맞춰 고정시킨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진출처:unsplash


변동환율제의 등장은 세계 경제가 더욱 복잡하고 불안정해진 환경 속에서 비롯됐다. 이 제도는 외부 충격이 발생할 경우, 환율이 시장에서 자동으로 조정되며 경제의 균형을 맞추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빈번한 환율 변동은 오히려 경제적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변동환율제의 양날을 확인하다


2008년,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던 미국의 금융 시스템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위기의 시작은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신용도가 낮은 개인을 대상으로 한 고위험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미국은 장기간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었고, 부동산 시장은 활황세를 보였다. 저금리는 대출을 쉽게 만들었고, 그에 따라 부동산 수요가 급증하면서 집값은 자연스레 상승했다. 은행들은 이러한 상승세에 기대어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도 주택담보대출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설령 대출자가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하더라도 집을 매각하면 손실을 회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깔려 있었다. 집값 상승이 곧 담보의 안전성을 보장해준다고 믿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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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위험한 금융 관행은 점차 ‘안정적인 투자 상품’으로 포장되어 미국 금융시장 전반에 퍼져 나갔다. 그러나 2006년을 전후해 집값 상승세가 둔화되기 시작했고, 이내 하락세로 전환되었다. 이에 따라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의 연체가 급증했고,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파생상품들 또한 가치가 폭락하면서 시장 전반의 신뢰가 흔들렸다.


결정타는 미국의 4대 투자은행 중 하나였던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의 파산이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 대형 금융기관의 붕괴는 단순한 기업 실패를 넘어, "대형 금융기관이라도 정부의 구제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글로벌 금융시장에 심어주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했고, 자본 회수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세계 각국의 외국자본이 빠르게 유출되며 통화가치는 급락했고, 금융기관 간의 신뢰 역시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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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안전자산인 미국 달러에 자본이 집중되면서, 변동환율제를 채택한 신흥국들의 통화 가치는 더욱 큰 폭으로 하락했다. 외부 충격이 발생했을 때, 변동환율제는 환율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자동으로 조정되어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일정 부분 경제 안정에 기여할 수 있지만,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반면 고정환율제를 운영하는 국가들은 외부 충격 시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소모해야 하며, 금리 정책의 유연성도 제한된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변동환율제를 채택한 국가들이 외환보유고 소진을 상대적으로 덜 겪었고, 자국 금리를 보다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었다. 이로써 변동환율제가 위기 상황에서 통화에 충격을 반영하고, 금리나 외환보유고를 보호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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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변동환율제가 지닌 또 다른 얼굴도 확인되었다. 급격하고 잦은 환율 변동은 수입 물가를 상승시키고, 이는 곧 국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들의 생산 원가 부담이 커지면서 경기가 둔화되고, 장기화될 경우 경제 침체를 불러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2008년 금융위기는 변동환율제가 외부 충격을 유연하게 흡수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그로 인해 자국 경제의 불안정성이 심화될 수 있는 위험도 내포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변동환율제는 충격의 완충 장치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불안의 촉매가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임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국제협력을 통한 댐을 만들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를 마비시켰다. 높은 전염성과 빠른 확산으로 인해 무역과 글로벌 주식시장이 일시에 멈췄고, 이는 곧 세계 공급망의 붕괴로 이어졌다. 각국이 봉쇄 조치를 시행하면서 공장 가동은 중단되고, 국제 무역이 급감했다. 생산이 멈추고 소비는 위축되었으며, 세계 경제는 실물경제의 충격과 금융시장의 불안이라는 이중 위기를 동시에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환율은 단순한 통화 가치의 개념을 넘어, 한 국가의 경제적 신뢰성과 안정성을 상징하는 지표로 기능했다. 불확실성이 극대화되자, 투자자들은 보다 안전한 자산으로 자금을 옮기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미국 달러가 있었다. 세계 투자자들이 앞다퉈 달러를 사들이면서 달러 가치는 급등했고, 반대로 대부분의 국가 통화 가치는 급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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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변동환율제를 운영하던 국가들은 극심한 환율 변동에 직면하며 큰 타격을 입었다. 고정환율제였다면 인위적으로 환율을 방어할 수 있었겠지만, 시장 흐름에 전적으로 맡기는 변동환율제는 이러한 환율의 급격한 출렁임을 통제하기 어려웠다.


환율 하락은 신흥국에 특히 치명적이었다. 자국 통화가 빠르게 약세를 보이자, 달러로 수입하던 원자재와 식료품의 가격은 급등했고, 외환시장에서는 불안정성이 확대되며 외국 자본이 대거 유출되었다. 주가는 연이어 하락했고, 이는 다시 환율에 영향을 미쳐 악순환을 초래했다. 전 세계 경제는 불안정성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러한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협력에 나섰다. 미국은 '달러 통화 스와프 협정'을 통해 주요 국가들에 달러를 공급했고, IMF 역시 유동성 자금을 시장에 투입하며 경색된 자금 흐름을 풀었다. 여기에 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시중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불안정한 환율을 점차 안정시켜 나갔다. 글로벌 경제가 붕괴되거나 통화 위기로 번질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이 같은 국제적 공조 덕분에 위기는 완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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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례는 변동환율제가 외부 충격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한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국제 협력과 적절한 정책 대응이 이를 충분히 보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변동환율제는 결코 외부 충격에 무력한 시스템이 아니며, 각국의 협조와 정책적 조율을 통해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한 제도라는 점이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입증된 것이다.


고금리 시대, 변동환율제의 시험대에 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 2022년 이후, 글로벌 경제는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팬데믹 당시의 초저금리 기조는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했고, 이를 억제하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급격히 인상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환율시장은 다시 한 번 긴장 국면에 들어섰고, 세계 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촉발되었다.


당시 전 세계는 경기 부양을 위해 초저금리 정책과 함께 대규모 양적완화에 나서며 막대한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했다. 그 결과,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크게 상승하고 소비도 활발해졌다. 그러나 2021년부터 공급망 붕괴가 본격화되었고, 이어진 에너지·식료품 가격 상승과 지정학적 분쟁까지 겹치면서 전 세계는 극심한 물가 상승, 즉 인플레이션의 파고를 맞게 되었다. 이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필두로 세계 각국은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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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미국이 금리 인상을 지속하면서 달러화의 가치는 강세를 보였고, 이로 인해 미국 외 국가들의 통화는 상대적으로 절하 압력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고금리·강달러 환경에서 변동환율제는 오히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변동환율제는 각국이 자국 경제 상황에 맞춘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보장해준다. 예를 들어, 한국이 미국과의 금리차가 확대되더라도 자국 경기 여건에 맞춰 금리를 조정할 수 있는 유연성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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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시에, 고금리 시대에 환율은 경제 전반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변동환율제를 채택한 국가들은 외부 충격이 환율에 즉각 반영되기 때문에 그 여파가 더욱 민감하게 나타난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달러 강세로 이어지면, 한국 원화는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이는 환율 급등을 초래한다. 급등한 환율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직결되며, 결국 국내 물가에 부담을 가중시킨다. 이처럼 고금리 시대에는 환율 변동성이 커지고, 변동환율제를 운용하는 국가일수록 그 영향은 직접적이고 깊게 나타난다.


결국, 오늘날의 고금리 환경은 변동환율제가 외부 충격을 효과적으로 흡수하는 ‘완충 장치’인지, 아니면 오히려 위기를 가중시키는 ‘불안 요인’인지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오르게 만든다.


변동환율제도의 핵심은?

변동환율제도의 본질은 위기 상황 속에서도 시장의 자동조절 기능을 신뢰한다는 데 있다. 급격한 자본 유출입이나 통화 가치 변동이 발생하더라도 정부가 환율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해당 국가의 경제가 그만큼 안정적이며 국제적으로 신뢰받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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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충분한 외환보유고, 정책당국에 대한 시장의 신뢰, 투명한 정보 공개, 그리고 시장과의 원활한 소통 능력이 그것이다. 이러한 요건들은 주로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갖추고 있는 특성으로, 결과적으로 변동환율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국가는 대체로 경제력과 제도적 기반이 탄탄한 국가임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변동환율제도는 일종의 ‘경제적 자유’이자, ‘책임 있는 통화주권’을 가진 국가에게 주어진 특권이라 볼 수 있다.


변동되는 환율, 결국 자유를 의미한다


지난 수십 년간의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 변동환율제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외부 충격을 흡수하고, 자국의 통화정책 자율성을 보장함으로써 각국이 경제를 능동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왔다. 환율이 시장의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변동된다는 점은, 해당 국가가 외부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독립적인 경제 주체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정환율제가 정부의 일방적 통제에 의해 움직이는 구조라면, 변동환율제는 시장의 판단, 개인과 기업의 선택, 그리고 국제 경제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조율되는 시스템이다. 이는 정부가 경제를 일방적으로 조작하는 대상이 아니라,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유기적으로 조정해가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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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의 의사와 시장의 반응을 존중하는 시스템 속에서 변동환율제가 더욱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변동하는 환율은 단순한 숫자의 변화를 넘어, 외부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자국 경제의 독립성과 회복력을 상징하는 ‘경제적 자유의 척도’로 볼 수 있다.


결국 변동환율은 자유롭고 자율적인 국가의 상징이며, 그 나라는 스스로의 경제에 책임을 지고,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증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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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권예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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