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게임, 패배로 향하는 경쟁의 역설 | 밸류체인타임스

이아림 칼럼니스트
2025-09-27
조회수 2802

[밸류체인타임스=이아림 칼럼니스트] 일반적으로 게임이라 하면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경쟁을 떠올린다. 하지만 현실 사회에는 승자가 사라지고 패자만 남는 게임이 존재한다. 이를 ‘치킨 게임(Chicken Game)’이라고 부른다. 가까운 매점끼리의 출혈적 경쟁이나 시장 점유율이 비슷한 기업 간의 할인 경쟁이 대표적인 예시다. 치킨 게임은 게임이론의 한 장을 차지하는 개념으로, 수학과 경제학이 맞물려 탄생한 전략 모형이다. 본질은 상대방의 선택을 예측하고 이에 맞춰 나의 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다.


치킨 게임은 도로 위에서 서로를 향해 달리는 두 대의 자동차로 설명된다. 누가 먼저 핸들을 꺾어 피할지가 핵심이다. 먼저 피하는 쪽은 겁쟁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끝까지 피하지 않으면 충돌이라는 파국을 맞는다. 제삼자가 보기에는 “둘 다 양보하면 되지 않느냐”는 단순한 해결책이 있지만, 실제 당사자들은 손익 계산에 민감해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상대가 양보하면 내가 이득을 얻고, 내가 양보하면 상대가 이득을 챙긴다. 결국 누구도 먼저 손해를 감수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갈등은 정면 충돌로 이어지기 쉽다.


(사진=Unsplash)



치킨 게임은 일상과 사회 곳곳에서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는 가격 할인 경쟁이다. 한 매장이 대폭 가격 인하를 시작하면, 경쟁 매장도 소비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더 큰 폭의 할인을 단행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이 반갑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장기적 수익이 악화되고 결국 양쪽 모두 타격을 입는다.


국제 사회에서는 관세 전쟁이 치킨 게임의 전형적 사례다. 국가 간 무역 보복이 장기화될수록 서로의 손실만 커지고, 무역 적자와 산업 침체라는 결과가 남는다. 정치 영역에서도 치킨 게임은 빈번하다. 여야가 끝내 합의하지 못해 국정이 마비되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양보 없는 대립은 사회 전반에 걸쳐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


치킨 게임의 가장 극적인 역사적 사례는 1962년 미국과 소련 간의 쿠바 미사일 위기다. 소련이 미국 본토에서 불과 90마일 떨어진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면서 긴장은 고조되었다. 미국은 해상 봉쇄로 대응했고, 양측은 핵전쟁 직전까지 치닫는 위험한 대치 상황에 놓였다. 당시 전 세계는 제3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우려했고, 실제로 미국 내에서는 대피 훈련과 방공호 건설이 이루어질 정도로 일촉즉발의 긴장이 이어졌다.


다행히도 양측은 끝내 파국을 피했다. 미국의 봉쇄 작전 이후 미국과 소련은 외교적 타협을 통해 한 발짝씩 물러섰고, 위기는 해소되었다. 만약 두 나라가 끝까지 양보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핵전쟁이라는 파멸적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치킨 게임의 파괴적 속성과 동시에 외교와 협상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사진=Unsplash)


오늘날까지도 이 사건은 세계가 핵전쟁에 가장 근접했던 ‘아찔한 순간’으로 회자된다. 치킨 게임에 한 번 휘말리면 마치 거센 해류에 휩쓸린 듯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여실히 증명한 것이다. 따라서 기업, 국가, 산업 전반은 이 같은 극단적 경쟁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쿠바 미사일 위기의 전개 과정은 치킨 게임의 구조를 잘 보여준다. 소련이 미사일을 철거하지 않으면 핵 공격도 불사하겠다고 위협한 반면, 미국은 해상 봉쇄를 풀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겠다고 맞섰다. 양측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버틴다면 결국 충돌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외교적 협상을 통해 조금씩 물러섬으로써 전 세계는 최악의 파국을 피할 수 있었다.


치킨 게임은 흔히 도로 위에서 같은 방향으로 돌진하는 두 차량에 비유된다. 충돌을 피하려면 두 차량이 동시에 속도를 줄이거나, 한쪽이 차선을 변경해야 한다. 만약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별화된 전략, 선제적 대응, 혹은 협력을 통해 위험을 완화해야 한다. 경제적 생존과 성장에서도 중요한 것은 무리한 대결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손실을 피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전략을 마련하는 일이다.


결국 치킨 게임은 단순한 이론적 모델을 넘어, 기업의 경쟁, 국가 간 갈등, 그리고 개인의 일상적 선택에까지 깊은 함의를 던져준다. 양보 없는 대립은 순간적으로 강인해 보일 수 있으나, 그 끝은 파멸로 이어지기 쉽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꺾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는 일이다. 


치킨 게임의 교훈은 명확하다. 극단적 대결 구도 속에서도 타협과 협력, 그리고 차별화된 전략만이 공멸을 피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경쟁을 단순히 승부의 차원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시각에서 상생의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패배 엔딩을 피하고 미래를 지켜내는 유일한 길이다.



저작권자 © 밸류체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밸류체인타임스 = 이아림 칼럼니스트]

0

POST NEWS



경기도 고양시 의장로114 하이브 A타워 1312호

대표전화 02 6083 1337 ㅣ팩스 02 6083 1338

대표메일 vctimes@naver.com


법인명 (주)밸류체인홀딩스

제호 밸류체인타임스

등록번호 경기, 아53541

등록일 2021-12-01

발행일 2021-12-01 

발행인 김진준 l 편집인 김유진 l 청소년보호책임자 김유진



© 2021 밸류체인타임스.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