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유동성을 줄이는 두 가지 방법, 테이퍼링과 양적긴축 | 밸류체인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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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권예원 칼럼니스트] 양적 완화로 인해 시중에 유동성이 과도하게 풀리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점점 커지게 된다. 이를 억제하기 위해 중앙은행은 유동성을 조절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게 되며, 이때 사용되는 대표적인 수단이 테이퍼링(Tapering)과 양적 긴축(Quantitative Tightening, QT)이다. 두 정책 모두 시중의 돈을 줄인다는 목적은 같지만, 그 방식과 시점, 시장에 주는 영향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테이퍼링, 자산 매입 규모의 점진적 축소
테이퍼링은 ‘점점 가늘어진다’는 뜻처럼, 중앙은행이 국채나 주택저당증권(MBS) 등 자산 매입의 규모를 점차 줄여나가는 정책이다. 유동성 공급은 계속되고 있지만, 이전보다 줄어드는 형태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완화 축소’ 정책으로 불린다.
예를 들어, 미국 연준이 매월 1,20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매입하던 것을 1,000억 달러, 800억 달러로 점차 줄여가는 것이 바로 테이퍼링이다. 이는 시장에 유동성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신호를 사전에 전달하면서 충격을 완화하는 시장 친화적인 출구 전략이다. 테이퍼링의 핵심은 매입의 중단이 아닌,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양적긴축, 본격적인 자산 축소 정책
반면 양적 긴축(QT)은 중앙은행이 보유 자산을 시장에 되팔거나, 만기 도래한 자산의 재매입을 중단하여 직접적으로 유동성을 흡수하는 강도 높은 긴축 정책이다. 테이퍼링이 ‘속도 조절’에 가깝다면, 양적 긴축은 ‘규모 축소’ 그 자체를 의미한다.
사진출처: unsplash
양적 긴축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방식으로 실행된다. 첫째는 자산 재투자 중단으로, 만기 도래한 채권을 다시 매입하지 않음으로써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유동성이 빠져나가게 한다. 둘째는 자산 매각 방식으로, 중앙은행이 보유한 채권을 직접 시장에 팔아 시중 자금을 흡수하는 것이다. 자산 매각은 금리 상승에 더 강한 영향을 미치며, 시장 반응도 더 민감할 수 있다.
양적 긴축은 종종 기준금리 인상과 병행되며, 이중의 긴축 효과를 발생시킨다. 그만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테이퍼링보다 훨씬 크고 예측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양적긴축과 테이퍼링의 교과서, 미국
미국은 테이퍼링과 양적 긴축을 가장 먼저 실험하고, 가장 체계적으로 적용한 국가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 연준은 대규모 자산 매입과 초저금리 정책을 통해 유례없는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급등하자, 연준은 긴축 정책으로 방향을 틀었다.
2013년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처음 테이퍼링을 언급하자, 미국 국채 금리는 급등했고, 신흥국에서는 자본 유출이 심화되었다. 이로 인해 연준은 이후 테이퍼링 실행 시 시장과의 소통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2021년 말, 연준은 팬데믹 이후 확대된 자산 매입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테이퍼링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2022년부터는 본격적인 양적 긴축으로 전환하였다. 월 최대 950억 달러 규모의 자산 축소가 단행되었고, 이에 따라 미 국채금리는 급등했고 주식시장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 그 결과 은행 시스템에는 일시적 유동성 경색도 발생했다.
또한, 2018년 시행된 첫 양적 긴축은 월 500억 달러 수준의 자산 축소였으나, 단기금리 급등과 금융 불안으로 인해 2019년 중단된 바 있다. 이 사례를 통해, 단순 실행보다도 속도 조절과 시장 반응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되었다.
테이퍼링의 실패, 일본
일본은 2000년대부터 이어진 장기 디플레이션과 저성장으로 인해 세계 최초로 양적 완화를 도입한 국가다. 2018년부터 일본은행은 자산 매입 규모를 은밀히 줄이는 이른바 ‘숨겨진 테이퍼링’을 시도했다. 하지만 경기 둔화와 수출 감소로 인해 더 이상 축소를 지속할 수 없었고, 결국 다시 자산 매입을 확대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출처:unsplash
특히 일본은 국채의 50% 이상을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어, 양적 긴축 자체가 구조적으로 어렵다. 여기에 낮은 물가상승률과 고령화, 저성장 구조까지 겹치며 긴축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사례는 양적 긴축이 효과를 내려면 전제 조건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인플레이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저성장 국가에서는 정책 정상화 자체가 매우 어렵다는 현실도 드러났다.
미온적 양적긴축, 한국
한국은행은 2021년 8월, 팬데믹으로 침체된 상황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기준금리를 인상한 중앙은행 중 하나였다. 미국보다 먼저 ‘제로금리 시대’를 끝내고, 2022년까지 총 7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상하며 인플레이션에 적극 대응했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미국처럼 본격적인 양적 긴축을 시행하지는 않았다. 기준금리를 올리는 전통적인 방식에는 적극적이었지만, 중앙은행이 직접 자산을 매각하거나 재투자를 중단하는 비전통적 긴축 전략에는 다소 소극적이었다.
사진출처:unsplash
이는 팬데믹 당시 한국이 미국처럼 대규모 자산을 매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고채를 일부 매입했지만, 연준처럼 월 수백억 달러 규모의 양적 완화(QE)를 실시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되돌릴 여지도 적었다. 또한 금리 인상만으로도 부동산 시장과 소비에 큰 영향을 주고 있어, 추가 긴축 여력은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선제적인 금리 인상이 양적 긴축을 대체할 수 있는 효과를 낼 수 있으며, 자산 매입 규모가 작았던 국가는 긴축 강도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양적 긴축은 ‘공식’이 아니라 ‘전략’이다
테이퍼링과 양적 긴축은 단순히 돈의 양을 줄이는 기술적 조치가 아니다. 이는 금융시장과 국가 경제 전반의 체력과 신뢰를 시험하는 통화정책 수단이다. 미국은 비교적 교과서적으로 긴축을 시행했지만, 그 과정에서 시장 불안과 예측 밖의 리스크도 경험했다. 일본은 구조적 한계로 인해 제대로 된 긴축조차 시행하지 못했고, 한국은 유동성 흡수보다 금리 조정 중심의 긴축 정책을 선택했다.
사진출처:unsplash
결국 양적 긴축은 이론이 아닌 현실 기반의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통화량 조절이 아니라, 정치·시장 심리·구조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고차원적 정책이다. QT의 속도는 시장보다 앞서서는 안 되며, 시장과의 소통은 수학이 아닌 심리학의 영역임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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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권예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