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의 단상] 벽에 문을 그리고 그 문을 여는 것 ┃ 밸류체인타임스

김혜선 기자
2025-05-13
조회수 2554

[밸류체인타임스=김혜선기자] 크리스티앙 보뱅의 『환희의 인간』에는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라는 글귀가 나온다. 괴로운 마음과 답답함, 슬픔을 넘어서기 위한 행위로서의 글쓰기. 상실과 자괴감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썼던 글은 시간이 지난 후 넘을 수 없던 벽을 여는 문이 되어준다. 벽을 꼭 넘어야만 한다는 굳은 생각이 사실은 벽보다 더 높고 견고한 장벽이었음도 알게 된다.

 

 

“문제는 ‘나이’가 아닙니다. 지금의 ‘나’는 늙었기 때문에 무언가 해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젊을 때부터 시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송길영씨의 『시대예보 : 핵개인의 시대』에서는 생각의 ‘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은 뭔가가 안되면 나이 탓을 하면서 전보다 체력이 떨어지고 머리 회전이 느려졌다고 변명을 한다. 하지만 핑계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나’다. 같은 맥락으로 ‘멋지게 나이 드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멋진 사람이 나이가 든 것‘이라고 알려준다. 아인슈타인의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것이다.”라는 말을 떠올려보라. 생각을 바꿔야 행동이 바뀔 수 있다. 같은 생각으로는 다른 답을 찾을 수 없다. 벽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벽에 문을 그리고 열고 나간 것처럼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진출처 unsplash]




『환희의 인간』에서 저자는 “나는 페이지마다 하늘의 푸르름이 스며든 책”만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죽음의 어두움이 새겨진 푸르름이기 때문이다. 이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의 글귀 “나는 피로 쓴 글로 쓰인 모든 것 가운데서 오로지 피로 쓰인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인 것을 알게 되리라.”와 연결된다. 피를 쏟게 되면 종말은 죽음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피를 토하듯 써 내려간 글만이 진정한 글이다. 글쓰기는 막힌 벽에 문을 그리는 행위다. 진정함을 페이지마다 새겨 청량한 푸름이 아닌 핏빛 묵직함이 가미된 푸르름으로 채운다.

 

 

내가 쓴 글이 나를 다독이고 살린다. 메마른 마음에 물을 주고, 씁쓸하다고 생각한 인생에 달콤 쌉싸름한 맛도 있음을 알게 된다. 글은 나를 응시한다. 써 내려간 글이 나를 바라본다. 글과 대화함은 벽에 문을 그리는 과정이다. 누구에게나 벽은 있으며 내용은 다르다. 따라서 문의 모양과 크기, 높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왜 나의 벽만 높고 견고한지 불평할 필요 없다. 다른 이들의 심근경색이나 암보다 자신의 감기몸살을 더 위중하게 보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벽은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스스로 벽에 문을 그리고 문을 열라.

 

 

글을 써가면서 새로운 나로 변해간다. 변해가면서 새로워진다. 새롭기에 지금의 나와 다른 듯하다. 현재 속에 있는 과거의 나는 과거 속의 현재의 나와 동일 인물이다. 하지만 또 다르다. 문을 열고 통과했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가 중첩되어 공존한다. 크리스티앙 보뱅은 글쓰기를 통해 막힌 벽에 문을 그린 후 열고 통과했다.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문을 그릴 것인가? 벽만 바라보지 말고 진정성을 가지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문을 그려보라. 벽을 통과할 것이다.

 

 

 


 

저작권자 ⓒ 밸류체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밸류체인타임스 = 김혜선기자]

 

 

0

성경 속 예술가들 | 밸류체인타임스
황지민 인재기자 2025-06-13

POST NEWS



경기도 부천시 삼작로108번길 48, 201호

대표전화 02 6083 1337 ㅣ팩스 02 6083 1338

대표메일 vctimes@naver.com


법인명 (주)밸류체인홀딩스

제호 밸류체인타임스

등록번호 아53081

등록일 2021-12-01

발행일 2021-12-01 

발행인 김진준 l 편집인 김유진 l 청소년보호책임자 김유진



© 2021 밸류체인타임스.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