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unsplash]
미술은 시대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한다. 과거와 현재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다른 것처럼 미술의 정의도 지속적으로 변하고 넓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미술이 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고, 그 배경이 존재한다.
미술의 첫 시작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 언어를 배우지 못하고, 인간이 따로 역사적인 기록을 하지 않은 시대에, 미술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주로 자연동굴에서 생활했다.
자연동굴 속에서 자신들의 기억나는 일을 동굴 벽에다 직접 그리고 표현했다. 이것이 동굴 벽화가 되었다. 이것이 역사상 제일 오래된 동굴 벽화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에서 발견되었다. 이 동굴 벽화에는 실물 크기의 야생 멧돼지와 손바닥 등이 그려져 있으며, 최소 4만 5500년 전에 그려진 그림으로 추정된다.
이후 미술은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후 15세기까지인 중세 미술로 발전하게 된다. 중세 시대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며 시작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믿는, 현재 기독교로 알려진 크리스트교가 로마에 전파되면서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크리스트교를 믿게 되었다.
강력한 영향력은 예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인류는 신을 위한 작품이 아니면 예술 작품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초자연적인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원근법과 명암을 무시하는 그림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이유로 중세 미술은 ‘천년의 암흑시대’로 불리기도 한다.
16세기로 넘어오면서 종교는 타락하기 시작했고, 교황 레오 10세는 금전을 통한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다. 종교의 본래 의미를 되찾기 위해 1517년, 마르틴 루터의 95개 조항 논제가 발표되며 종교 개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근세 미술은 크리스트교 중심에서 벗어나 현실적이고 강령한 표현, 현란한 장식성을 특징으로 하는 회화적 성격의 작품들이 등장했다. 이 시기는 16세기의 르네상스 미술, 17세기의 바로크 미술, 18세기의 로코코 미술로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주로 아는 미술 작품은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때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모나리자(Mona Lisa)가 이 시대에 그려졌다. 르네상스는 인간성 회복에 중심을 두고, 수학적 비율을 추구하며 현실적인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17세기 바로크 시대는 절대왕정을 배경으로 했다. 특히 17세기에는 종교 개혁이 강했던 시기로, 신성 로마 제국을 비롯한 중부 유럽에서 벌어진 최초의 국제 전쟁인 30년 전쟁으로 인해 스페인과 독일이 몰락하고 프랑스가 압도적인 국력을 키워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절대왕정 시기는 미술에도 영향을 끼쳤다.
18세기의 로코코 미술은 파리 귀족층을 중심으로 유행했다. 루이 14세는 파리의 모든 왕궁 행정을 베르사유로 이적했다. 이에 따라 수많은 귀족들과 병사들이 베르사유 또는 그 근처에 이주해 좁은 궁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면서 불만이 증폭했다. 루이 14세가 죽은 이후 뿔뿔이 흩어지며 넓은 공간을 선호하고, 그 넓은 공간을 화려한 장식으로 꾸미게 되었다.
로코코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19세기 말부터 20세시 초까지 유행했던 근대 미술 시대가 시작된다. 난해하고,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이 시대 사람이다. 다들 한 번 즈음 보았을 법한 그의 그림은 근대 미술을 한 번에 설명할 수 있다.
19세기 초에 등장한 ‘근대미술’. 근대주의는 프랑스 혁명 이후 등장했다. 철저하게 나누어진 계급에서 미술은 오직 귀족에게 한정되어 있던 예술이었다. 하지만 혁명 이후 귀족과 계급이 동등해지며 누구나 자유롭게 미술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초,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줍기’는 근대 미술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현실적인 자연 속 빛과 명암으로 강조를 하고, 귀족들의 시선이 아닌 평범한 농민의 생활을 담은 작품이다. 무엇을 그리던 자유로워진 예술가들은 빛과 그림자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이 인식은 19세기 후반 인상주의에도 영향을 미친다.
19세기 후반에는 사물의 고유색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또한 아침의 하늘과 저녁의 하늘의 색이 다른 것처럼, 시간의 변화에 따른 색채 변화, 그리고 자연의 세밀함에 표현을 가했다.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는 인상파의 기원이 된 작품이다. 그의 그림은 빛의 아름다움을 세밀하게 그렸다. 그의 그림 하나로 인상주의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20세기 초에 시작한 현대미술은 아직까지도 향유되고 있다. 현대미술은 기존의 전통적인 회화 기법에서 탈피한다. 현대미술에서 기존의 미술이 과거의 미술과 확연히 달라진 것에도 엄연한 이유가 존재한다.
과거의 미술은 단순히 자연을 모방해 그리는 것에서 끝났다. 아름다운 자연이 눈앞에 펼쳐져 있을 때, 그 자연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현재는 사진기의 등장으로 그 누구보다 생생하게 담을 수 있다. 마치 굴삭기 옆에서 삽으로 땅을 파는 것과 다름없었다.
또한 과거의 미술은 오직 상류층만이 즐기는 예술이었다. 그러다 보니 미술에는 온전히 상류층의 모습만 담기게 되었고, 다른 미술은 존재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이후 자유로운 미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과거에 얽매여 있지 않은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하고 있다.
미술의 첫 시작은 동굴 벽화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회가 변함에 따라 우리가 추구하는 미술도 변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림이 있다면, 그 그림에는 그만의 역사가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미술의 아름다움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작품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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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국세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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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시대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한다. 과거와 현재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다른 것처럼 미술의 정의도 지속적으로 변하고 넓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미술이 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고, 그 배경이 존재한다.
미술의 첫 시작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 언어를 배우지 못하고, 인간이 따로 역사적인 기록을 하지 않은 시대에, 미술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주로 자연동굴에서 생활했다.
자연동굴 속에서 자신들의 기억나는 일을 동굴 벽에다 직접 그리고 표현했다. 이것이 동굴 벽화가 되었다. 이것이 역사상 제일 오래된 동굴 벽화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에서 발견되었다. 이 동굴 벽화에는 실물 크기의 야생 멧돼지와 손바닥 등이 그려져 있으며, 최소 4만 5500년 전에 그려진 그림으로 추정된다.
이후 미술은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후 15세기까지인 중세 미술로 발전하게 된다. 중세 시대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며 시작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믿는, 현재 기독교로 알려진 크리스트교가 로마에 전파되면서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크리스트교를 믿게 되었다.
강력한 영향력은 예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인류는 신을 위한 작품이 아니면 예술 작품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초자연적인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원근법과 명암을 무시하는 그림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이유로 중세 미술은 ‘천년의 암흑시대’로 불리기도 한다.
16세기로 넘어오면서 종교는 타락하기 시작했고, 교황 레오 10세는 금전을 통한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다. 종교의 본래 의미를 되찾기 위해 1517년, 마르틴 루터의 95개 조항 논제가 발표되며 종교 개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근세 미술은 크리스트교 중심에서 벗어나 현실적이고 강령한 표현, 현란한 장식성을 특징으로 하는 회화적 성격의 작품들이 등장했다. 이 시기는 16세기의 르네상스 미술, 17세기의 바로크 미술, 18세기의 로코코 미술로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주로 아는 미술 작품은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때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모나리자(Mona Lisa)가 이 시대에 그려졌다. 르네상스는 인간성 회복에 중심을 두고, 수학적 비율을 추구하며 현실적인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17세기 바로크 시대는 절대왕정을 배경으로 했다. 특히 17세기에는 종교 개혁이 강했던 시기로, 신성 로마 제국을 비롯한 중부 유럽에서 벌어진 최초의 국제 전쟁인 30년 전쟁으로 인해 스페인과 독일이 몰락하고 프랑스가 압도적인 국력을 키워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프랑스의 루이 14세의 절대왕정 시기는 미술에도 영향을 끼쳤다.
18세기의 로코코 미술은 파리 귀족층을 중심으로 유행했다. 루이 14세는 파리의 모든 왕궁 행정을 베르사유로 이적했다. 이에 따라 수많은 귀족들과 병사들이 베르사유 또는 그 근처에 이주해 좁은 궁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면서 불만이 증폭했다. 루이 14세가 죽은 이후 뿔뿔이 흩어지며 넓은 공간을 선호하고, 그 넓은 공간을 화려한 장식으로 꾸미게 되었다.
로코코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19세기 말부터 20세시 초까지 유행했던 근대 미술 시대가 시작된다. 난해하고,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이 시대 사람이다. 다들 한 번 즈음 보았을 법한 그의 그림은 근대 미술을 한 번에 설명할 수 있다.
19세기 초에 등장한 ‘근대미술’. 근대주의는 프랑스 혁명 이후 등장했다. 철저하게 나누어진 계급에서 미술은 오직 귀족에게 한정되어 있던 예술이었다. 하지만 혁명 이후 귀족과 계급이 동등해지며 누구나 자유롭게 미술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초,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줍기’는 근대 미술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현실적인 자연 속 빛과 명암으로 강조를 하고, 귀족들의 시선이 아닌 평범한 농민의 생활을 담은 작품이다. 무엇을 그리던 자유로워진 예술가들은 빛과 그림자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이 인식은 19세기 후반 인상주의에도 영향을 미친다.
19세기 후반에는 사물의 고유색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또한 아침의 하늘과 저녁의 하늘의 색이 다른 것처럼, 시간의 변화에 따른 색채 변화, 그리고 자연의 세밀함에 표현을 가했다.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는 인상파의 기원이 된 작품이다. 그의 그림은 빛의 아름다움을 세밀하게 그렸다. 그의 그림 하나로 인상주의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20세기 초에 시작한 현대미술은 아직까지도 향유되고 있다. 현대미술은 기존의 전통적인 회화 기법에서 탈피한다. 현대미술에서 기존의 미술이 과거의 미술과 확연히 달라진 것에도 엄연한 이유가 존재한다.
과거의 미술은 단순히 자연을 모방해 그리는 것에서 끝났다. 아름다운 자연이 눈앞에 펼쳐져 있을 때, 그 자연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현재는 사진기의 등장으로 그 누구보다 생생하게 담을 수 있다. 마치 굴삭기 옆에서 삽으로 땅을 파는 것과 다름없었다.
또한 과거의 미술은 오직 상류층만이 즐기는 예술이었다. 그러다 보니 미술에는 온전히 상류층의 모습만 담기게 되었고, 다른 미술은 존재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이후 자유로운 미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과거에 얽매여 있지 않은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하고 있다.
미술의 첫 시작은 동굴 벽화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회가 변함에 따라 우리가 추구하는 미술도 변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림이 있다면, 그 그림에는 그만의 역사가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미술의 아름다움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적 작품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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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국세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