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의 단상] 대한간호협회의 창시자 간호선교사 서서평 ㅣ 밸류체인타임스

김혜선 기자
202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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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김혜선기자] 우리나라의 의료와 간호는 서양인들의 의료선교사업에 의해 발전했다. 공식적인 간호교육 및 전문직으로서 간호직 등장 계기 마련, 간호 교육기관의 설립과 최초 간호사회 조직 등이 선교사들의 희생과 섬김으로 이루어졌다. 여러 의료 간호사들 중 서서평 간호사에 대해 소개해 보려 한다. 백춘성씨의 책 『조선의 작은 예수 서서평』에는 의료 선교사로 조선에서 평생을 살아간 서서평(E.J.Shepping, 1880-1934) 간호사의 일대기를 읽을 수 있다. 또 홍현정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는 평생을 ‘조선의 가난과 아픔을 등에 업고 살다간 푸른 눈의 여인’ 서서평의 이야기로 잔잔한 울림을 일으켰다.



[간호사의 단상 :조선의 작은예수, 서서평 / 밸류체인타임스 / 사진출처 : 서서평을 소재로 한 영화포스터]



그녀의 본명은 엘리자베스 쉐핑(Elisabeth Johanna Shepping)이며 본명인 쉐핑을 음역한 서서평(徐舒平)으로 개명했다. 평소 성격이 급했던 그녀는 ‘천천히 평온하게’ 주님과 함께 살기 원해 한국 이름을 ‘서서평’이라 지었다. 3세 때 어머니가 미국으로 홀로 이민을 떠나 조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독일계 미국인으로 미국에서 성장하며 간호사가 되었고 의료진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1912년 미국 남장로교 해외선교부 모집에 지원하여 간호선교사로 파송을 받는다.


당시 조선은 가난과 전염병으로 잠식됐던 시대였다. 서서평은 미혼의 몸으로 32세인 1912년에 조선에 들어왔다. 1934년 54세로 소천하기까지 전라도 광주를 중심으로 광주 선교부 제중원의 간호사로서 병원과 주일학교 및 가난하고 병약한 많은 사람들 즉 미혼모, 고아, 한센인, 노숙인 등을 보살폈다. 그녀는 제중원(현 기독병원)뿐 아니라 군산 예수병원 선교부, 서울 세브란스 간호사 양성소 교사까지 두루 거쳤다.


그녀는 온전히 조선인이 되고자 했다. 조선인들처럼 보리밥에 된장국을 먹고, 남자 검정 고무신에 무명으로 지은 한복을 입고 평생을 조선에서 선교사역을 해나갔다. 그녀는 서양식 삶을 고수하던 여러 선교사와는 달랐다. 조선 사람보다 더 조선을 사랑했다.


그 시절 약 2만여 명 정도의 한센병 환자들이 있었고 버림받은 이들을 보살핀 이는 서서평과 동료 선교사이던 포사잇 윌슨뿐이었다. 그녀는 한센병을 전염병으로 여기며 말살정책을 펴던 일본 총독부에 대항해 전국의 한센병 환자들과 행진에 나섰다. 이로 인해 소록도에 한센병 치료 병원과 요양 시설이 탄생한다.



서서평은 자신을 조선의 간호사라 여겼다.

조선은 여성을 천시하는 유교 사상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서서평이 1921년 미국 내쉬빌 선교부에 보낸 편지에는 “......500명이 넘는 한국 여성을 만났지만 큰년, 작은년, 개똥이 어멈 등으로 부르며 본인의 이름이 있는 여성은 열 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라고 되어있다. 남성에 의해 종속됐던 여성이었기에 제대로 된 이름조차 갖지 못하던 때였다.


서서평은 집안에 갇혀 외출도 못하고 경제력 및 이름도 없이 살아가는 조선 여성들이 안타까웠다. 그녀들을 돕기 위해서는 교육을 시켜 의식을 먼저 깨워야 했다. 간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적이었다. 조선 여성들은 교육 과정을 거치면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인격체로 변화되었다.


서서평의 조선 여성들에 대한 마음은 한일장신대학교의 전신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신학교인 이일학교 설립으로까지 이어진다. 또한 1923년 조선간호부회를 설립하여 회장을 맡았고 간호사들의 양성과 자립을 도왔는데 이는 훗날 대한간호협회의 전신이 된다. 조선 여성들의 자부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조선간호부회를 일본과 별도로 세계 간호사협회에 등록하려 애썼던 이도 서서평이다. 1929년 캐나다에서 열리는 총회에서 국제간호협회에 가입시켜주겠다는 연락을 받고 국제간호협의회(ICN) 제6차 총회(캐나다 몬트리올)에 우리나라 최초로 이효경, 이금전, 서서평이 대표로 참가했다.


그녀는 한글 말살정책이 한창이던 일제 치하에서 간호부 협회의 소식지와 서적들을 모두 한글로 발간했다. 한국간호협회 회칙에 ‘본회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한국어에 한함’이라는 규칙까지 만들어서 한글을 지켰다. 한글의 존귀성을 인식하고 존중했으며 이는 조선에 대한 사랑이었다.



서서평은 교육자였다

생명을 다루는 일은 우유부단함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매정해 보일 수 있으나 환자의 회복과 상태에 즉각 연결되기 때문이다. 수술 뒤에 물을 마시면 죽을 수도 있는 환자에게 원하는 대로 물을 주면 어떻게 되겠는가? 서서평은 이런 예를 들면서 아무 때나 인정을 베풀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교육했다.


서서평은 직업으로서의 간호사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도 간호사 의식을 갖도록 교육했다. 질병의 치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깨끗해야 한다. 간호사는 청결 문제에 있어서 어떤 직업인보다도 예민하고 까다로워야 하고 자신부터 먼저 깨끗해야 함을 강조했다. 신발이 더럽거나 옷을 제대로 빨지 않아 지저분한 경우에는 예외 없이 호통을 쳤다.


서서평은 직업의식이 철저했다. 정직을 강조했다. 처치해야 할 시간에 의사가 안 본다고 게으름 피우며, 책임 회피를 위해 허위로 기록하면 의사가 제대로 치료하고 처방할 수 없다. 이는 오늘날도 동일하다. 처방된 약의 정확한 투여, 정확한 기록, 정확한 확인은 기본이고 환자 상태에 대한 기록은 의무기록이기에 정확하게 기재되어야 한다.



서서평은 조선의 돕는자였다.

'Not Success But Service'(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 서서평의 침대 맡에 적힌 글귀이자 그녀의 삶을 대변해 주는 글귀다. 평생을 독신 여성으로 살면서 기본적인 식사비 외에는 월급의 대부분을 빈민과 병자, 여성을 위해 사용했다. 화장품을 산적도 없고 질기고 튼튼하다는 이유로 남자 검정 고무신을 고집했다. 14명의 양자를 입양하고, 38명의 과부를 돌보고 가족처럼 품어 집에서 같이 지냈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성경 말씀대로 살아갔다.


서서평은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 불우한 이웃을 먼저 돌보느라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남긴 것은 담요 반 장, 강냉이가루 두 홉, 현금 7전이 전부였다. 거적을 덮고 자는 사람에게 반을 찢어주고 남은 담요 반 장만 덮고 지내다가 떠난 그녀는 자신의 시신마저 의학용으로 기부했다. 장례는 교회장으로 하려했으나 유지들의 강력한 주장으로 광주 최초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졌다. 10일 동안 지속된 장례식은 이일학교의 학생들이 선두에 서고 천여 명이 뒤를 따르며 푸른 눈의 그녀를 '어머니 어머니!' 하며 슬퍼하는 통곡했다고 한다.


서서평은 먼 이국땅에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고 평생을 헌신한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 식민지하의 조선에서 환자 간호, 빈민 구제, 문맹 퇴치, 축첩 반대, 공창 제도 폐지뿐 아니라 출애굽기를 가르치며 독립의 확신을 심어줬다. 완전한 조선 사람이었던 그녀의 묘는 광주광역시 양림동 뒷동산에 있으며 광주 양림동의 골목길에는 그의 이름을 딴 도로명 ‘서서평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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