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체인타임스=서반석 인재기자] 기다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나야 하는 필수코스다. 오래전 역사를 보면 수많은 기다림의 아이콘이 존재했다. 자신의 때를 기다리며 주군을 섬기다 일본 열도를 집어삼킨 도쿠가와 이에야스, 로마의 집정관이 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내했던 카이사르 등, 역사 속 많은 위인은 자신이 기다림의 아이콘임을 자처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 누군가 기다림의 아이콘이 누구임을 물어본다면, 그 답변은 단연코 리버풀 FC일 것이다. 위인도 아니고 전설도 아닌 평범한 축구팀이 어떻게 기다림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을까?
존 하울딩, 리버풀 FC를 창단하다
1878년, 에버튼 FC의 공동 창단자 존 하울딩(John Houlding)은 금전적 이유로 에버튼 FC와 갈등을 겪었고, 결국 그는 자신만의 클럽을 창단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협회에 신청한 팀의 이름은 리버풀 FC (Liverpool FC), 잉글랜드를 붉게 물들일 전설의 시작이었다. 창단 직후 1부리그와 2부리그를 넘나들던 리버풀 FC는 톰 왓슨(Tom Watson) 감독이 부임된 이후 그들만의 색깔을 갖추기 시작했다. 빨간색 유니폼을 입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1898-99시즌 리버풀은 1부리그 준우승, FA컵 준결승에 진출하는 등, 강팀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버풀은 리그 우승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갔다.
잠깐의 우승, 기나긴 침체기
1차 세계대전 직후, 리그가 다시 시작되자 리버풀은 2년 연속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팀을 책임진 매튜 맥퀸(Matthew McQueen, 1863-5-18~1944-9-28)이 리버풀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리버풀은 창단 이후 첫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쁨도 잠시, 이후 팀이 계속 중위권에 머무는 상황이 발생하자, 주축 선수들이 상위권 팀이 찾아 떠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는 리버풀이 긴 시간 동안 침체기를 겪게 되는 요인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또 한 번 우승을 이뤘지만, 또 다시 추락했고, 결국 1953-54시즌 리버풀은 1부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50년 만에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 오랜 기간 2부리그를 전전하던 리버풀은 빌 샹클리 감독을 중심으로 반등의 서막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빌 샹클리, 붉은 제국의 창시자
빌 샹클리(Bill Shankly, 1913-9-1~1981-9-29) 감독은 리버풀에 부임하자 경기장과 훈련장의 시스템과 구단의 내부적인 문제들을 해결했고, 24명의 선수를 방출하며 선수단 전체를 갈아엎었다. 이는 8년 만에 리버풀이 1부리그로 승격되는 결실을 맺었다. 빌 샹클리는 1963-64시즌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그에 따라 유로피언 컵 출전이 확정되었다. 빌 샹클리가 리버풀을 이끈 15년의 기간 동안 리버풀은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진정한 강팀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후 부임한 밥 페이즐리(Bob Paisley, 1919-1-23~1996-2-14) 감독도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리버풀을 이끌며 수많은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빌 샹클리와 밥 페이즐리가 이끈 196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리버풀은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들이 떠난 뒤 리버풀은 비극과 침체기의 시간을 보냈다.
(사진=Pixabay)
헤이즐과 힐스버러 참사, 기다림의 시작
1985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러피언 컵 결승전, 잉글랜드의 리버풀과 이탈리아의 유벤투스가 격돌했다. 양 팀 팬들은 경기가 시작되고 점점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고, 리버풀의 훌리건들이 흥분을 참지 못하고 유벤투스 관중석으로 난입했다. 경기장은 오래되고 낙후된 스타드 루아 보두앵. 사람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관중석은 결국 무너지게 됐다. 이 사건으로 39명의 사망자와 6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이에 유럽축구를 주관하는 UEFA는 리버풀엔 7년, 다른 잉글랜드 클럽들엔 5년간 유러피언컵 출전을 금지했다. 이후 4년이 지난 시점,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경기에서 진행요원들의 실수로 1,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관중석에 3,000명 이상이 입장했고, 이는 97명이 압사당하는 비극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참극은 리버풀과 잉글랜드 축구 리그를 변화시키는 시작점이 되었다.
프리미어리그의 출범, 끝없는 기다림
리버풀 훌리건들의 만행은 리버풀을 넘어 잉글랜드 축구 리그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다. 그 여파로 잉글랜드 축구 리그는 은퇴를 준비하는 선수들이 주로 이적하는 하위 리그가 되었고, 이러한 이미지를 벗어내고자 아스널, 맨유와 같은 빅클럽의 주도 아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새롭게 창설하게 되었다. 프리미어리그가 출범되자 리그를 양분한 두 팀은 맨유와 아스널이었다. 이후 석유 자본을 바탕으로 성장한 첼시와 만수르의 재산을 등에 업은 맨시티, 계속해서 스타플레이어들을 배출하는 토트넘 홋스퍼 등이 치고 올라오며 프리미어리그는 혼란에 빠졌다. 리버풀은 상위권에 안착하며 우승에 도전하는 강팀이었지만,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리그 우승이 없는 강팀 아닌 강팀이 되었다. 그러나 챔피언스리그에서 리버풀은 여전히 강팀의 면모를 주었다.
이스탄불의 기적, 계속되는 부진
2004-05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터키 이스탄불 아타투르크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리버풀과 AC밀란이 맞붙었다. 당시 두 팀의 스쿼드를 비교해보면, AC밀란의 손쉬운 승리를 예상할 수 있었다. 그 예상이 적중하듯, 밀란은 전반전에만 무려 3골을 넣었다. 그러나 후반전 시작과 함께, 리버풀은 단 6분 만에 3골로 따라잡았다. 경기는 추가시간을 넘어 연장전,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고, 밀란의 스트라이커 셰브첸코의 슛이 리버풀의 골키퍼 두덱에 의해 막힌 순간, 리버풀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현실이 됐다. 리버풀은 챔스 우승을 이뤄냈지만, 리그 우승은 아득한 꿈에 불과했다. 챔스 우승 이후, 2010년대의 리버풀은 처참했다. 중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며 챔스와의 인연도 사라지는듯했다. 리버풀은 마지막 희망으로 위르겐 클롭 감독을 영입했고, 이 선택은 리버풀을 바꿔놓았다.
위르겐 클롭, 기다림의 결실
강팀은커녕 중위권을 전전하던 리버풀에 2015-16시즌 도중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감독 위르겐 클롭이 부임했다. 시즌 도중 부임하며 결국 8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유로파리그 결승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였다. 이후 리버풀을 2년 연속 4위에 안착시키며 2016-17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2017-18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엄청난 성장세를 보여주었다. 타팀 팬들에게 놀림당하던 리버풀은 위르겐 클롭 감독 부임 이후 다시 한번 강팀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이후 2019-20시즌, 맨시티가 독점하던 프리미어리그에서 리버풀이 30년 만에 우승하며 리버풀 팬들은 오랜 시간 염원했던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항상 중위권에 머물던 리버풀은 이제 맨시티와 함께 프리미어리그를 양분하게 되었다. 단 4년 만에 리버풀을 우승시킨 클롭은 전설이 되었고, 리버풀은 그 무엇보다 값진 프리미어리그 우승으로 기다림의 결실을 맺었다. 기다림의 끝에 부활한 리버풀의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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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서반석 인재기자]
[밸류체인타임스=서반석 인재기자] 기다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나야 하는 필수코스다. 오래전 역사를 보면 수많은 기다림의 아이콘이 존재했다. 자신의 때를 기다리며 주군을 섬기다 일본 열도를 집어삼킨 도쿠가와 이에야스, 로마의 집정관이 되기 위해 오랜 기간 인내했던 카이사르 등, 역사 속 많은 위인은 자신이 기다림의 아이콘임을 자처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 누군가 기다림의 아이콘이 누구임을 물어본다면, 그 답변은 단연코 리버풀 FC일 것이다. 위인도 아니고 전설도 아닌 평범한 축구팀이 어떻게 기다림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을까?
존 하울딩, 리버풀 FC를 창단하다
1878년, 에버튼 FC의 공동 창단자 존 하울딩(John Houlding)은 금전적 이유로 에버튼 FC와 갈등을 겪었고, 결국 그는 자신만의 클럽을 창단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협회에 신청한 팀의 이름은 리버풀 FC (Liverpool FC), 잉글랜드를 붉게 물들일 전설의 시작이었다. 창단 직후 1부리그와 2부리그를 넘나들던 리버풀 FC는 톰 왓슨(Tom Watson) 감독이 부임된 이후 그들만의 색깔을 갖추기 시작했다. 빨간색 유니폼을 입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1898-99시즌 리버풀은 1부리그 준우승, FA컵 준결승에 진출하는 등, 강팀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버풀은 리그 우승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갔다.
잠깐의 우승, 기나긴 침체기
1차 세계대전 직후, 리그가 다시 시작되자 리버풀은 2년 연속 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팀을 책임진 매튜 맥퀸(Matthew McQueen, 1863-5-18~1944-9-28)이 리버풀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리버풀은 창단 이후 첫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쁨도 잠시, 이후 팀이 계속 중위권에 머무는 상황이 발생하자, 주축 선수들이 상위권 팀이 찾아 떠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는 리버풀이 긴 시간 동안 침체기를 겪게 되는 요인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또 한 번 우승을 이뤘지만, 또 다시 추락했고, 결국 1953-54시즌 리버풀은 1부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50년 만에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 오랜 기간 2부리그를 전전하던 리버풀은 빌 샹클리 감독을 중심으로 반등의 서막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빌 샹클리, 붉은 제국의 창시자
빌 샹클리(Bill Shankly, 1913-9-1~1981-9-29) 감독은 리버풀에 부임하자 경기장과 훈련장의 시스템과 구단의 내부적인 문제들을 해결했고, 24명의 선수를 방출하며 선수단 전체를 갈아엎었다. 이는 8년 만에 리버풀이 1부리그로 승격되는 결실을 맺었다. 빌 샹클리는 1963-64시즌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그에 따라 유로피언 컵 출전이 확정되었다. 빌 샹클리가 리버풀을 이끈 15년의 기간 동안 리버풀은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진정한 강팀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후 부임한 밥 페이즐리(Bob Paisley, 1919-1-23~1996-2-14) 감독도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리버풀을 이끌며 수많은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빌 샹클리와 밥 페이즐리가 이끈 196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리버풀은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들이 떠난 뒤 리버풀은 비극과 침체기의 시간을 보냈다.
헤이즐과 힐스버러 참사, 기다림의 시작
1985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러피언 컵 결승전, 잉글랜드의 리버풀과 이탈리아의 유벤투스가 격돌했다. 양 팀 팬들은 경기가 시작되고 점점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고, 리버풀의 훌리건들이 흥분을 참지 못하고 유벤투스 관중석으로 난입했다. 경기장은 오래되고 낙후된 스타드 루아 보두앵. 사람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관중석은 결국 무너지게 됐다. 이 사건으로 39명의 사망자와 6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이에 유럽축구를 주관하는 UEFA는 리버풀엔 7년, 다른 잉글랜드 클럽들엔 5년간 유러피언컵 출전을 금지했다. 이후 4년이 지난 시점,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경기에서 진행요원들의 실수로 1,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관중석에 3,000명 이상이 입장했고, 이는 97명이 압사당하는 비극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참극은 리버풀과 잉글랜드 축구 리그를 변화시키는 시작점이 되었다.
프리미어리그의 출범, 끝없는 기다림
리버풀 훌리건들의 만행은 리버풀을 넘어 잉글랜드 축구 리그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다. 그 여파로 잉글랜드 축구 리그는 은퇴를 준비하는 선수들이 주로 이적하는 하위 리그가 되었고, 이러한 이미지를 벗어내고자 아스널, 맨유와 같은 빅클럽의 주도 아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새롭게 창설하게 되었다. 프리미어리그가 출범되자 리그를 양분한 두 팀은 맨유와 아스널이었다. 이후 석유 자본을 바탕으로 성장한 첼시와 만수르의 재산을 등에 업은 맨시티, 계속해서 스타플레이어들을 배출하는 토트넘 홋스퍼 등이 치고 올라오며 프리미어리그는 혼란에 빠졌다. 리버풀은 상위권에 안착하며 우승에 도전하는 강팀이었지만,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리그 우승이 없는 강팀 아닌 강팀이 되었다. 그러나 챔피언스리그에서 리버풀은 여전히 강팀의 면모를 주었다.
이스탄불의 기적, 계속되는 부진
2004-05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터키 이스탄불 아타투르크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리버풀과 AC밀란이 맞붙었다. 당시 두 팀의 스쿼드를 비교해보면, AC밀란의 손쉬운 승리를 예상할 수 있었다. 그 예상이 적중하듯, 밀란은 전반전에만 무려 3골을 넣었다. 그러나 후반전 시작과 함께, 리버풀은 단 6분 만에 3골로 따라잡았다. 경기는 추가시간을 넘어 연장전,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고, 밀란의 스트라이커 셰브첸코의 슛이 리버풀의 골키퍼 두덱에 의해 막힌 순간, 리버풀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현실이 됐다. 리버풀은 챔스 우승을 이뤄냈지만, 리그 우승은 아득한 꿈에 불과했다. 챔스 우승 이후, 2010년대의 리버풀은 처참했다. 중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며 챔스와의 인연도 사라지는듯했다. 리버풀은 마지막 희망으로 위르겐 클롭 감독을 영입했고, 이 선택은 리버풀을 바꿔놓았다.
위르겐 클롭, 기다림의 결실
강팀은커녕 중위권을 전전하던 리버풀에 2015-16시즌 도중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감독 위르겐 클롭이 부임했다. 시즌 도중 부임하며 결국 8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유로파리그 결승에 진출하는 저력을 보였다. 이후 리버풀을 2년 연속 4위에 안착시키며 2016-17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2017-18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엄청난 성장세를 보여주었다. 타팀 팬들에게 놀림당하던 리버풀은 위르겐 클롭 감독 부임 이후 다시 한번 강팀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이후 2019-20시즌, 맨시티가 독점하던 프리미어리그에서 리버풀이 30년 만에 우승하며 리버풀 팬들은 오랜 시간 염원했던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항상 중위권에 머물던 리버풀은 이제 맨시티와 함께 프리미어리그를 양분하게 되었다. 단 4년 만에 리버풀을 우승시킨 클롭은 전설이 되었고, 리버풀은 그 무엇보다 값진 프리미어리그 우승으로 기다림의 결실을 맺었다. 기다림의 끝에 부활한 리버풀의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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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서반석 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