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의 단상]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l 밸류체인타임스

김혜선 기자
2023-07-12
조회수 9863

 

[밸류체인타임스=김혜선기자] 아이들 양육을 위해 부모님 가까이 이사 간 은아. 18년 만의 만남을 위해 윤경이와 은아가 있는 마산으로 향했다. 2,30대에 치열하게 일했던 동료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반갑다. 생사가 오가는 현장에서 절박함과 위기를 겪어내며 뭉쳐진 관계는 학교 친구나 이웃, 선후배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우리 꼭 오프(휴일) 끝나고 며칠 만에 만나는 것 같지 않니?”

은아의 이야기처럼 오랜만의 만남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20대에서 40대로 우리의 나이는 순간 이동을 했지만 18년 전과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는 지속되었고 친구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이 있다. 비슷한 부류의 사람끼리 모인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열심을 다해 살아온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삶이 괜찮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잘 살아줘서 고마웠다. 일상에 뿌리를 내리고 피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자신의 몫을 다해 살아가는 친구들이 고마웠다.



[사진출처 unsplash]



“정서는 그것과 반대되는 정서, 그리고 억제되어야 할 정서보다 더 강한 정서 없이는 억제될 수도 없고 제거될 수도 없다.” 스피노자의 『에티카 Etika』에 나오는 글귀다. 임상간호사로 치열하게 일했던 시절의 힘듦이 생각나지 않는 건 바람이 불면 쭉정이가 날아가듯 고됨은 시간 속에 풍화되고 동료들 즉 나의 별들이 알곡으로 남아 반짝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고 마음을 나누고 격려했던 따뜻함은 힘겨움을 넘어 좋은 기억만 남게 해주었다.

 

우린 스스로를 ‘어벤저스’라고 지칭했다. 같은 상황에서 다시 일하라고 하면 고개가 절로 저어지지만 지금도 이 멤버라면 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우리다. 응급상황은 일상이고 쏟아지는 처방과 믹스해야 하는 주사약들, 확인하고 정리하고 투약해야 하는 수많은 약제, 밀물과 썰물 같은 입퇴원은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일상이었다. 우리는 혼돈의 일상을 사소함으로 보듬었다. 서로의 마음과 상황을 읽고 옆에 가서 밀린 일을 도와주고 응급상황을 같이 치러내는 것이 우리의 따뜻한 사소함이었다.

 

“윤경아, 은아샘 보러 마산 갈까?”

“당연하지. 난 샘이랑 가면 어디든 좋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하는 윤경이.

 

마산행 KTX를 예매하면서부터 설렘이 가득했다. 사막 여우가 어린 왕자를 향해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말이다. 어린 왕자를 향한 사막 여우의 말처럼 서로에게 설레는 존재인 우리는 같이 있음에 행복했다. 누군가에게 있음 자체가 행복한 존재이고 있어줘서 고마운 존재임을 알게 해준 감사한 만남. 신뢰는 배려다. 믿어줌이다. 서로의 말과 세계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데서 신뢰가 쌓이며 서로에게 그런 존재임을 확인하게 된 의미 있는 여행의 잔향은 오래도록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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