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체인타임스=김혜선기자]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가치관과 생각이 세워져있어야 한다. 세상과 주변인들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을 존중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생각이 세워지려면 자신과의 대화 시간이 있어야 하고 ‘나’와 ‘내 안의 나’가 협의하여 기준점을 만들어야 한다.
배려가 없고 독단적인 사람은 무례하다.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에게는 친절하지만 자신에게는 무례한 사람도 있다.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일은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필요하며 ‘나’와 ‘내 안의 나’가 서로를 궁금해하지 않고 살피지 않으면 어색하고 멀어진다. 소통과 교류가 없으니 사이가 좋을 리도 없다.
누군가를 알아가려면 시간과 경험들이 공유되어야 한다. 타인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다른 이들의 관심사와 식성 · 종교 · 취미 등은 꿰고 있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모른다면 자신을 관찰하고 질문한 적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나의 마음이 두근거리는 공간은 어디이고, 의욕이 생기지 않을 때는 어떻게 달래야 하고, 감동받는 때는 언제고, 슬플 때는 어떤 반응을 하는지 등에 대해 알고 있는가? 소중하고 좋아하면 세심하게 살피고 작은 것에도 관심이 많아진다. 질문하고 살피고 생각을 물어봐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일들처럼 시간과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평생 데리고 같이 갈 동반자는 ‘나’다. ‘나’를 아껴줘야 하며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먼저 내가 나 자신을 도와야 한다.

[사진출처 unsplash]
생각과 가치관이 정립되어야 주인이 될 수 있다. 타인의 생각 · 세상의 요구 · 유행과 트렌드는 나의 주인자리를 호시탐탐 노린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자리 잡으면 정작 주인인 나는 머물 곳이 없어진다. 따라서 주체적으로 걸러내야 한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책은 저자의 생각 결정체다. 내 생각이 없다면 농축된 저자의 생각에 흡수된다. 나 자신이 거름망이 되어 순수한 내 것으로 정제시키고 책을 나의 부분집합으로 만들어야 한다.
몰려오는 바깥의 생각들 사이사이 나만의 깨달음이 들어가야 한다. 깨달음은 공간이다. 공간 안에서 ‘나’와 ‘내 안의 나’에게 자리를 내주자. 빅터 프랭클은 그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삶을 잘 살기 위한 답을 찾는 과정은 먼저 ‘나’와 ‘내 안의 나’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친하게 지내려면 시간과 수고가 필요하다. 수고 없이 얻으면 밀도와 함량이 성글다. 나만의 답을 찾기 위해서 수시로 질문하고 답하고 기다려줘야 한다. 학교 교육의 정답 맞히기에 익숙하고 사방에 ‘답정녀’와 ‘답정남’들이 포진해있는 시대에서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다. 어렵기에 예전처럼 사지선다나 답정녀를 찾거나 남의 정답을 나에게 적용하려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내 것이 아니기에 언젠가는 내려놔야 한다.
‘나’와 ‘내 안의 나’를 만나게 하자. 편하게 수다 떨도록 말이다. ‘넌 오늘 어땠니?’, ‘어떤 게 힘들었어?’ 하고 다정하게 물어봐 주자. ‘내 안의 나’에게 귀 기울이면 반드시 대답해 주니 시간을 주자. 정혜윤 작가는 감동의 순간에 이렇게 말한다.
“나 딱 오 분만 시간 주면 안 돼? 오 분 동안 감동 좀 하고 올게.” [정혜윤 저, 『아무튼, 메모』 p. 20 중에서]
감동의 순간을 알면 다음번에는 더 많이 감동할 수 있다. 따로 오 분을 추가해서 감동하는 순간은 ‘나’와 ‘내 안의 나’가 같이 누리는 때다.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면 그 삶은 매혹적’이라는 로댕의 말은 ‘나’와 ‘내 안의 나’가 친해지면 누릴 수 있는 현재진행형이면서 동시에 앞으로 지속될 미래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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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김혜선기자]
[밸류체인타임스=김혜선기자]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가치관과 생각이 세워져있어야 한다. 세상과 주변인들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을 존중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생각이 세워지려면 자신과의 대화 시간이 있어야 하고 ‘나’와 ‘내 안의 나’가 협의하여 기준점을 만들어야 한다.
배려가 없고 독단적인 사람은 무례하다.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에게는 친절하지만 자신에게는 무례한 사람도 있다.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일은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필요하며 ‘나’와 ‘내 안의 나’가 서로를 궁금해하지 않고 살피지 않으면 어색하고 멀어진다. 소통과 교류가 없으니 사이가 좋을 리도 없다.
누군가를 알아가려면 시간과 경험들이 공유되어야 한다. 타인 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다른 이들의 관심사와 식성 · 종교 · 취미 등은 꿰고 있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모른다면 자신을 관찰하고 질문한 적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나의 마음이 두근거리는 공간은 어디이고, 의욕이 생기지 않을 때는 어떻게 달래야 하고, 감동받는 때는 언제고, 슬플 때는 어떤 반응을 하는지 등에 대해 알고 있는가? 소중하고 좋아하면 세심하게 살피고 작은 것에도 관심이 많아진다. 질문하고 살피고 생각을 물어봐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일들처럼 시간과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평생 데리고 같이 갈 동반자는 ‘나’다. ‘나’를 아껴줘야 하며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먼저 내가 나 자신을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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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가치관이 정립되어야 주인이 될 수 있다. 타인의 생각 · 세상의 요구 · 유행과 트렌드는 나의 주인자리를 호시탐탐 노린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자리 잡으면 정작 주인인 나는 머물 곳이 없어진다. 따라서 주체적으로 걸러내야 한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책은 저자의 생각 결정체다. 내 생각이 없다면 농축된 저자의 생각에 흡수된다. 나 자신이 거름망이 되어 순수한 내 것으로 정제시키고 책을 나의 부분집합으로 만들어야 한다.
몰려오는 바깥의 생각들 사이사이 나만의 깨달음이 들어가야 한다. 깨달음은 공간이다. 공간 안에서 ‘나’와 ‘내 안의 나’에게 자리를 내주자. 빅터 프랭클은 그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삶을 잘 살기 위한 답을 찾는 과정은 먼저 ‘나’와 ‘내 안의 나’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친하게 지내려면 시간과 수고가 필요하다. 수고 없이 얻으면 밀도와 함량이 성글다. 나만의 답을 찾기 위해서 수시로 질문하고 답하고 기다려줘야 한다. 학교 교육의 정답 맞히기에 익숙하고 사방에 ‘답정녀’와 ‘답정남’들이 포진해있는 시대에서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다. 어렵기에 예전처럼 사지선다나 답정녀를 찾거나 남의 정답을 나에게 적용하려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내 것이 아니기에 언젠가는 내려놔야 한다.
‘나’와 ‘내 안의 나’를 만나게 하자. 편하게 수다 떨도록 말이다. ‘넌 오늘 어땠니?’, ‘어떤 게 힘들었어?’ 하고 다정하게 물어봐 주자. ‘내 안의 나’에게 귀 기울이면 반드시 대답해 주니 시간을 주자. 정혜윤 작가는 감동의 순간에 이렇게 말한다.
“나 딱 오 분만 시간 주면 안 돼? 오 분 동안 감동 좀 하고 올게.” [정혜윤 저, 『아무튼, 메모』 p. 20 중에서]
감동의 순간을 알면 다음번에는 더 많이 감동할 수 있다. 따로 오 분을 추가해서 감동하는 순간은 ‘나’와 ‘내 안의 나’가 같이 누리는 때다.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면 그 삶은 매혹적’이라는 로댕의 말은 ‘나’와 ‘내 안의 나’가 친해지면 누릴 수 있는 현재진행형이면서 동시에 앞으로 지속될 미래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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