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체인타임스=김혜선기자] 출근길, 지하철을 향해 걷던 중 오른쪽 샌들이 느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멈춰 살펴보니 몇 년 만에 신은 샌들 끈 3개 중에 두 개가 끊어진 상태였다. 이전에도 쪼리 샌들을 신고 가다가 줄이 끊어져서 난감했던 경우가 있었기에 주변에 편의점이 있는지 살폈다. 안타깝게도 편의점은 이미 지나쳐왔다. 가방 안에 있던 머리끈을 꺼내 일단 샌들과 발을 묶어 임시방편으로 조치한 후 조심조심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샌들은 걸을 때마다 헐떡거렸다.
지하철역 안에도 편의점은 없었다. 하는 수없이 개표를 하고 들어갔다. 플랫폼에 간이매점이 보였고 사장님께 혹시 슬리퍼도 판매하시는지 물었다. 사장님은 “그건 없지.” 하셨다. “제가 샌들을 신고 오다가 끈이 떨어져서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사장님은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시더니 “이거라도 하고 가요.” 하면서 박스 테이프를 내미셨다. “동동 싸매고 가. 급한데 어쩌겠어.” 너무도 감사했다. 엄마같이 푸근한 사장님은 신발을 벗고 하라고 하셨지만 이미 평소보다 출근시간이 지연된 상태라서 바로 샌들과 발을 테이프로 동여맸다.
사장님께 고마움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일단 바나나우유를 사고 현금을 드리고 잔돈을 받지 않았다. 300원밖에 되지 않았는데 사장님은 그마저도 안 받으시려고 하셨다. 좋은 선물을 드리고 싶었지만 경황이 없었다. 내일 출근길에 사장님께 작은 선물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누군가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기쁘게 해주고 싶은 생각은 먼저 나의 마음에 즐거움과 기쁨을 주었다.
[사진출처 : 김혜선 기자]
우여곡절 끝에 지하철을 탔다. 예전의 나라면 내 신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걱정했겠지만 이젠 개의치 않는다.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나 또한 다른 사람이 발에 박스테이프를 감았다 하더라도 크게 관심 같지 않았을 것이다. 시력이 저하됐지만 안경을 쓰지 않고 다녀 모든 것이 뿌옇게 보이는 상태가 되면서 더욱 타인의 외모에 신경 쓰지 않게 됐다. 특히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핸드폰에 빠져있어서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른다.
지하철 좌석에 앉아 『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을 읽던 중 인용된 아들러 박사의 저서 『다시 일어서는 용기』의 내용이 오늘 상황과 연결이 됐다. 요약하면 우울증의 대부분이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함몰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처방만 따르면 2주 만에 우울증이 나을 겁니다. 날마다 ‘어떻게 하면 누군가를 기쁘게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그들에게 이 말이 어떻게 들릴까 생각해 보자. 이들은 항상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걱정하게 만들 수 있을까?’에만 몰두한다.“ [데일카네기 저, 『데일카네기 자기관리론』 p. 211]
그렇다면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는 선행을 하면 왜 그토록 놀라운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책에 의하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자신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자신에게 집중된 자기중심적인 삶이 걱정 · 두려움 · 우울증의 원인인 것이다.
이 시대의 주류는 ‘나’ 우선주의다. 자신에게 피해가 가거나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면 격렬하게 항의하는 것이 당연하며 현명한 행동이라고 인정받는다. 물론 가끔 착한 미담도 있으며 사람 살 만한 세상이라는 기사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중심주의가 대세다. 자기중심주의의 대표적인 현상 즉 싸움 · 분쟁 · 고소 · 살인 · 폭행 등이 계속해서 늘어가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현대인의 질환인 우울증과 걱정, 두려움은 자신을 갉아먹는 마음의 기생충이다. 물론 적절한 치료가 병행되어야 효과적이지만 아들러 박사의 조언대로 나에게로만 향했던 에너지와 관심을 조금은 이웃과 주변으로 향해보기를 추천해 본다. 이웃에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는 행동은 장미꽃을 전한 손에 장미향이 남는 것처럼 상대뿐 아니라 나에게도 기쁨이 전해지는 아름다운 행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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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김혜선기자]
[밸류체인타임스=김혜선기자] 출근길, 지하철을 향해 걷던 중 오른쪽 샌들이 느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멈춰 살펴보니 몇 년 만에 신은 샌들 끈 3개 중에 두 개가 끊어진 상태였다. 이전에도 쪼리 샌들을 신고 가다가 줄이 끊어져서 난감했던 경우가 있었기에 주변에 편의점이 있는지 살폈다. 안타깝게도 편의점은 이미 지나쳐왔다. 가방 안에 있던 머리끈을 꺼내 일단 샌들과 발을 묶어 임시방편으로 조치한 후 조심조심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샌들은 걸을 때마다 헐떡거렸다.
지하철역 안에도 편의점은 없었다. 하는 수없이 개표를 하고 들어갔다. 플랫폼에 간이매점이 보였고 사장님께 혹시 슬리퍼도 판매하시는지 물었다. 사장님은 “그건 없지.” 하셨다. “제가 샌들을 신고 오다가 끈이 떨어져서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사장님은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시더니 “이거라도 하고 가요.” 하면서 박스 테이프를 내미셨다. “동동 싸매고 가. 급한데 어쩌겠어.” 너무도 감사했다. 엄마같이 푸근한 사장님은 신발을 벗고 하라고 하셨지만 이미 평소보다 출근시간이 지연된 상태라서 바로 샌들과 발을 테이프로 동여맸다.
사장님께 고마움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일단 바나나우유를 사고 현금을 드리고 잔돈을 받지 않았다. 300원밖에 되지 않았는데 사장님은 그마저도 안 받으시려고 하셨다. 좋은 선물을 드리고 싶었지만 경황이 없었다. 내일 출근길에 사장님께 작은 선물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누군가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기쁘게 해주고 싶은 생각은 먼저 나의 마음에 즐거움과 기쁨을 주었다.
[사진출처 : 김혜선 기자]
우여곡절 끝에 지하철을 탔다. 예전의 나라면 내 신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걱정했겠지만 이젠 개의치 않는다.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나 또한 다른 사람이 발에 박스테이프를 감았다 하더라도 크게 관심 같지 않았을 것이다. 시력이 저하됐지만 안경을 쓰지 않고 다녀 모든 것이 뿌옇게 보이는 상태가 되면서 더욱 타인의 외모에 신경 쓰지 않게 됐다. 특히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핸드폰에 빠져있어서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른다.
지하철 좌석에 앉아 『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을 읽던 중 인용된 아들러 박사의 저서 『다시 일어서는 용기』의 내용이 오늘 상황과 연결이 됐다. 요약하면 우울증의 대부분이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함몰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처방만 따르면 2주 만에 우울증이 나을 겁니다. 날마다 ‘어떻게 하면 누군가를 기쁘게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그들에게 이 말이 어떻게 들릴까 생각해 보자. 이들은 항상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걱정하게 만들 수 있을까?’에만 몰두한다.“ [데일카네기 저, 『데일카네기 자기관리론』 p. 211]
그렇다면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는 선행을 하면 왜 그토록 놀라운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 책에 의하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자신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자신에게 집중된 자기중심적인 삶이 걱정 · 두려움 · 우울증의 원인인 것이다.
이 시대의 주류는 ‘나’ 우선주의다. 자신에게 피해가 가거나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면 격렬하게 항의하는 것이 당연하며 현명한 행동이라고 인정받는다. 물론 가끔 착한 미담도 있으며 사람 살 만한 세상이라는 기사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중심주의가 대세다. 자기중심주의의 대표적인 현상 즉 싸움 · 분쟁 · 고소 · 살인 · 폭행 등이 계속해서 늘어가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현대인의 질환인 우울증과 걱정, 두려움은 자신을 갉아먹는 마음의 기생충이다. 물론 적절한 치료가 병행되어야 효과적이지만 아들러 박사의 조언대로 나에게로만 향했던 에너지와 관심을 조금은 이웃과 주변으로 향해보기를 추천해 본다. 이웃에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는 행동은 장미꽃을 전한 손에 장미향이 남는 것처럼 상대뿐 아니라 나에게도 기쁨이 전해지는 아름다운 행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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