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체인타임스=김혜선기자] “그거 있잖아요. 아……. 그거.”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나의 마음이지만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속 시원하게 표현하고 싶지만 마땅한 단어를 고르기 어렵고 선택한 단어도 딱 맞지 않아 뭔가 아쉽습니다. 마음을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유는 마음을 읽어내지 못하거나 저장된 단어가 충분하지 않거나 일치하는 단어를 선택하지 못해서입니다. 마음을 글이나 말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변화와 상태를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모두가 자신의 세계에서 살아갑니다. 교류를 통해 서서히 세계가 확장되어 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세계만 고집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작은 세계에 함몰된 이들과 대화하면 답답합니다.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고 제자리를 맴돌거나 평행선입니다. 답답함은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사용하는 용어나 단어를 이해하고 생각의 수준과 관심사가 비슷해야 말이 통합니다. ‘1’만 볼 수 있는 사람과 ‘10’을 볼 수 있는 사이에서는 안부 인사나 스몰토크는 가능하지만 깊이 있는 대화에 이르기는 어렵습니다.
먹는 것이 대화 내용의 대부분인 사람과 자기 계발 및 성장에 집중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상대가 어린아이라면 어른이 인내심을 가지고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지만, 성인임에도 만날 때마다 먹는 이야기가 전부라면 좀 더 높은 차원을 꿈꾸고 노력하는 이들은 대화에 흥미를 잃게 됩니다. ‘10’차원의 이야기를 ‘1’의 차원에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말이 통하려면 사용하는 단어와 의미에 대한 이해가 기초되어야 합니다. 또래 문화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비슷하듯 각각의 영역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동질감과 이해도를 깊게 합니다.
[사진출처 unsplash]
“좋다”, “싫다”라는 두 단어가 감정 표현의 전부인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은 좋다, 싫다는 양극단에만 있지 않으며 그 사이에 무수한 감정과 단어들이 존재합니다. 계절의 변화 또한 “덥다”, “춥다”로만 표현하기에는 아쉽고 아까운 무언가가 있습니다. 다양한 단어들을 통한 표현은 감정을 다양하게 만들어주며 삶의 풍요로움과 연결됩니다. 항상 이분법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사람과는 대화가 어렵습니다. 벽이 느껴지고 대화가 확장되지 않고 피하고 싶어집니다.
사용하는 단어에 따라 생각의 차이가 납니다. 사용하던 단어만 사용하면 생각이 그 단어 안에 머뭅니다. 낯선 환경을 만나면 예민해지며 신경의 안테나가 켜지듯 낯선 언어는 인식을 일으켜 세웁니다. 언어는 생각을 담습니다. 따라서 기존에 사용했던 언어들은 새로운 생각을 불러오지 못합니다. 시와 문학작품을 가까이하는 이유는 접하지 못했던 단어와 내용을 통해 생각의 폭을 넓히기 위함입니다.
“봉오리는 나무의 손톱이야.”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한 나뭇가지의 끝에 매달린 봉오리를 보며 ‘나무의 손톱’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저희 둘째 딸의 표현입니다. 나만의 단어가 많아지면 단어와 단어의 조합으로 표현이 확장됩니다. 봉오리도 알고 나무도 알고 손톱도 알지만 이를 한데 모아 조합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익숙해서 보이지 않던 의미가 살아납니다. 매일 바라보는 풍경이 같을지라도 읽어냄이 다른 까닭은 나의 단어들로 읽어내고 조합해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문학을 접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조한 마음에 문학이 들어오면 감정의 물기가 촉촉하게 배어듭니다. 고기에 양념이 잘 배어들면 감칠맛이 나듯 우리의 마음에도 나만의 단어와 문장들이 많아질수록 일상이 풍요로워집니다.
시인은 자신이 발견한 세상을 시로 표현한다. 그 세상은 지금과는 다른, 알려지지 않은 낯선 곳이다. 시를 쓰는 일은 낯선 세계를 발견하고 표현하는 일이고 당연히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작업이다. [안상헌 저, 『새로운 공부가 온다』 p. 141]
바람에 단어를 실으면 언어가 됩니다. 언어는 바람을 타고 흘러가면서 영혼까지 이릅니다. 시인은 흘러가는 바람에 자신만의 색을 칠하는 사람입니다. 보들레르는 말했습니다. ‘이 세상 만물은 상형문자이고 시인은 암호해독자이며 번역가이다’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시인으로 살아갑니다.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는 것이 아닌 시인으로써 나만의 단어를 사용하여 해석과 번역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해석에 기대어 다른 사람의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 아닌 나의 해석에 의한 나의 세계를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익숙한 단어에만 머물지 말고 낯선 단어와의 조우를 환영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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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김혜선기자]
[밸류체인타임스=김혜선기자] “그거 있잖아요. 아……. 그거.”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나의 마음이지만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속 시원하게 표현하고 싶지만 마땅한 단어를 고르기 어렵고 선택한 단어도 딱 맞지 않아 뭔가 아쉽습니다. 마음을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유는 마음을 읽어내지 못하거나 저장된 단어가 충분하지 않거나 일치하는 단어를 선택하지 못해서입니다. 마음을 글이나 말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변화와 상태를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모두가 자신의 세계에서 살아갑니다. 교류를 통해 서서히 세계가 확장되어 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세계만 고집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작은 세계에 함몰된 이들과 대화하면 답답합니다.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고 제자리를 맴돌거나 평행선입니다. 답답함은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사용하는 용어나 단어를 이해하고 생각의 수준과 관심사가 비슷해야 말이 통합니다. ‘1’만 볼 수 있는 사람과 ‘10’을 볼 수 있는 사이에서는 안부 인사나 스몰토크는 가능하지만 깊이 있는 대화에 이르기는 어렵습니다.
먹는 것이 대화 내용의 대부분인 사람과 자기 계발 및 성장에 집중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상대가 어린아이라면 어른이 인내심을 가지고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지만, 성인임에도 만날 때마다 먹는 이야기가 전부라면 좀 더 높은 차원을 꿈꾸고 노력하는 이들은 대화에 흥미를 잃게 됩니다. ‘10’차원의 이야기를 ‘1’의 차원에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말이 통하려면 사용하는 단어와 의미에 대한 이해가 기초되어야 합니다. 또래 문화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비슷하듯 각각의 영역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동질감과 이해도를 깊게 합니다.
[사진출처 unsplash]
“좋다”, “싫다”라는 두 단어가 감정 표현의 전부인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은 좋다, 싫다는 양극단에만 있지 않으며 그 사이에 무수한 감정과 단어들이 존재합니다. 계절의 변화 또한 “덥다”, “춥다”로만 표현하기에는 아쉽고 아까운 무언가가 있습니다. 다양한 단어들을 통한 표현은 감정을 다양하게 만들어주며 삶의 풍요로움과 연결됩니다. 항상 이분법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사람과는 대화가 어렵습니다. 벽이 느껴지고 대화가 확장되지 않고 피하고 싶어집니다.
사용하는 단어에 따라 생각의 차이가 납니다. 사용하던 단어만 사용하면 생각이 그 단어 안에 머뭅니다. 낯선 환경을 만나면 예민해지며 신경의 안테나가 켜지듯 낯선 언어는 인식을 일으켜 세웁니다. 언어는 생각을 담습니다. 따라서 기존에 사용했던 언어들은 새로운 생각을 불러오지 못합니다. 시와 문학작품을 가까이하는 이유는 접하지 못했던 단어와 내용을 통해 생각의 폭을 넓히기 위함입니다.
“봉오리는 나무의 손톱이야.”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한 나뭇가지의 끝에 매달린 봉오리를 보며 ‘나무의 손톱’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저희 둘째 딸의 표현입니다. 나만의 단어가 많아지면 단어와 단어의 조합으로 표현이 확장됩니다. 봉오리도 알고 나무도 알고 손톱도 알지만 이를 한데 모아 조합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익숙해서 보이지 않던 의미가 살아납니다. 매일 바라보는 풍경이 같을지라도 읽어냄이 다른 까닭은 나의 단어들로 읽어내고 조합해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문학을 접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조한 마음에 문학이 들어오면 감정의 물기가 촉촉하게 배어듭니다. 고기에 양념이 잘 배어들면 감칠맛이 나듯 우리의 마음에도 나만의 단어와 문장들이 많아질수록 일상이 풍요로워집니다.
시인은 자신이 발견한 세상을 시로 표현한다. 그 세상은 지금과는 다른, 알려지지 않은 낯선 곳이다. 시를 쓰는 일은 낯선 세계를 발견하고 표현하는 일이고 당연히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작업이다. [안상헌 저, 『새로운 공부가 온다』 p. 141]
바람에 단어를 실으면 언어가 됩니다. 언어는 바람을 타고 흘러가면서 영혼까지 이릅니다. 시인은 흘러가는 바람에 자신만의 색을 칠하는 사람입니다. 보들레르는 말했습니다. ‘이 세상 만물은 상형문자이고 시인은 암호해독자이며 번역가이다’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시인으로 살아갑니다.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는 것이 아닌 시인으로써 나만의 단어를 사용하여 해석과 번역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해석에 기대어 다른 사람의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 아닌 나의 해석에 의한 나의 세계를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익숙한 단어에만 머물지 말고 낯선 단어와의 조우를 환영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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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김혜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