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체인타임스=김혜선기자] 성경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나병환자 10명을 고쳐준 이야기가 나온다. 고침 받은 열 명은 무척 기뻤다.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전염원 즉 균덩어리로 취급받아 격리되고 가족에게도 버림받았기 때문이다. 치유받은 그날도 무리 중에 함께 있지 못하고 ‘멀리 서서’ 예수님께 소리쳐야만 했다. 모든 것에서 철저히 격리되어 꺼림 받던 이들이 치유받았다. 다시 태어났다. 사회적으로 매장되어 있던 그들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돈이나 명예 · 권력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인생의 문제가 해결됐다.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이 살 수밖에 없던 삶에 빛이 임했다. 완전히 인생이 뒤바뀐 치유된 10명은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고침 받은 열 명중 단 한 명만이 예수님께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했다. 예수님은 물으셨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아홉은 어디 있느냐?”
나음을 받은 이후, 생명의 은인에게 감사한 숫자는 10명 중 1명 즉 10퍼센트였다. 생명을 얻었지만 감사하지 않았다. 나머지 아홉은 어디로 먼저 갔을까? 보고 싶었던 가족일 수도 있고, 자신을 무시하며 괴롭혔던 이들에게 가서 복수했을 수도 있고, 병의 회복을 여기저기 소문내며 자랑했을 수도 있다. 요즘이라면 SNS에 올려 실시간 검색어 1위가 됐을 수도 있다.
[사진출처 unsplash]
‘나는 과연 감사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마음에 꽂혔다. 속담에도 있듯 사람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 급박하고 어려운 순간에는 절실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이에게 매달리지만 막상 어려움이 해결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린다. ‘머리 검은 동물은 거둬들이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나온 것도 처음에는 거둬준 것에 감사하지만 나중에는 은혜를 잊고 불만이 늘어가기 때문이다.
출근길 끊어진 샌들로 곤경에 처한 나를 도와주신 간이매점 사장님이 생각났다.
“사장님 어제 너무 감사했어요. 이거 나중에 좀 드셔보세요.”
다음 날 출근길에 작은 간식거리 몇 가지를 담은 쇼핑백을 전했다. 받을 수 없다며 사장님은 강하게 손사래를 치셨기 때문에 예기치 않게 실랑이가 벌어졌다.
“사장님 아니었으면 어제 저 출근 못했어요. 정말 감사해요. 정말이에요.”
“내가 이걸 그냥 받을 수는 없어.” 하시면서 사장님은 팔고 계신 빵과 떡 서너 개를 마구 내 가방에 넣으셨다. 넣어주신 여러 개의 빵과 떡을 나는 다시 돌려드렸고 사장님은 다시 넣으셨다. 결국 빵 두 개를 받는 것으로 타협이 됐다.
“내가 더 고마워.”
사장님의 이 한마디가 마음에 심겼다. 대단한 선물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누군가에게서 감사를 받고 따뜻한 마음을 느끼면 기쁨과 뿌듯함이 차오른다. 시간을 장악하여 주체적으로 빠져드는 것이 몰입이듯 ‘감사’는 나의 마음을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지배하는 방법이다. 몰입하면 시간이 순식간에 흐르고 즐거워지는 것처럼 마음을 감사로 뒤덮으면 팍팍한 삶에 윤기가 돈다. 가까운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해 보자. 처음이 어렵고 쑥스러울 뿐이다.
저작권자 ⓒ 밸류체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밸류체인타임스 = 김혜선기자]
[밸류체인타임스=김혜선기자] 성경 누가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나병환자 10명을 고쳐준 이야기가 나온다. 고침 받은 열 명은 무척 기뻤다.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전염원 즉 균덩어리로 취급받아 격리되고 가족에게도 버림받았기 때문이다. 치유받은 그날도 무리 중에 함께 있지 못하고 ‘멀리 서서’ 예수님께 소리쳐야만 했다. 모든 것에서 철저히 격리되어 꺼림 받던 이들이 치유받았다. 다시 태어났다. 사회적으로 매장되어 있던 그들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돈이나 명예 · 권력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인생의 문제가 해결됐다.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이 살 수밖에 없던 삶에 빛이 임했다. 완전히 인생이 뒤바뀐 치유된 10명은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고침 받은 열 명중 단 한 명만이 예수님께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했다. 예수님은 물으셨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아홉은 어디 있느냐?”
나음을 받은 이후, 생명의 은인에게 감사한 숫자는 10명 중 1명 즉 10퍼센트였다. 생명을 얻었지만 감사하지 않았다. 나머지 아홉은 어디로 먼저 갔을까? 보고 싶었던 가족일 수도 있고, 자신을 무시하며 괴롭혔던 이들에게 가서 복수했을 수도 있고, 병의 회복을 여기저기 소문내며 자랑했을 수도 있다. 요즘이라면 SNS에 올려 실시간 검색어 1위가 됐을 수도 있다.
[사진출처 unsplash]
‘나는 과연 감사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마음에 꽂혔다. 속담에도 있듯 사람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 급박하고 어려운 순간에는 절실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이에게 매달리지만 막상 어려움이 해결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린다. ‘머리 검은 동물은 거둬들이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나온 것도 처음에는 거둬준 것에 감사하지만 나중에는 은혜를 잊고 불만이 늘어가기 때문이다.
출근길 끊어진 샌들로 곤경에 처한 나를 도와주신 간이매점 사장님이 생각났다.
“사장님 어제 너무 감사했어요. 이거 나중에 좀 드셔보세요.”
다음 날 출근길에 작은 간식거리 몇 가지를 담은 쇼핑백을 전했다. 받을 수 없다며 사장님은 강하게 손사래를 치셨기 때문에 예기치 않게 실랑이가 벌어졌다.
“사장님 아니었으면 어제 저 출근 못했어요. 정말 감사해요. 정말이에요.”
“내가 이걸 그냥 받을 수는 없어.” 하시면서 사장님은 팔고 계신 빵과 떡 서너 개를 마구 내 가방에 넣으셨다. 넣어주신 여러 개의 빵과 떡을 나는 다시 돌려드렸고 사장님은 다시 넣으셨다. 결국 빵 두 개를 받는 것으로 타협이 됐다.
“내가 더 고마워.”
사장님의 이 한마디가 마음에 심겼다. 대단한 선물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누군가에게서 감사를 받고 따뜻한 마음을 느끼면 기쁨과 뿌듯함이 차오른다. 시간을 장악하여 주체적으로 빠져드는 것이 몰입이듯 ‘감사’는 나의 마음을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지배하는 방법이다. 몰입하면 시간이 순식간에 흐르고 즐거워지는 것처럼 마음을 감사로 뒤덮으면 팍팍한 삶에 윤기가 돈다. 가까운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해 보자. 처음이 어렵고 쑥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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