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Freepik)
아스퍼거 증후군은 왜 진단 목록에서 사라졌나
[밸류체인타임스=김유진 기자] 2013년 5월, 미국정신의학회(APA)가 정신질환 진단 기준의 최신판인 DSM-5를 발표했다. 이 개정판에서 가장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변경 사항 중 하나는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s Syndrome)'의 삭제였다. 1994년 DSM-IV에 처음 독립 진단으로 등재된 지 불과 19년 만의 일이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에 흡수되는 과정은 격렬한 논쟁과 함께 진행됐으며, 특히 기존 아스퍼거 진단을 받은 당사자들 사이에서 고유한 정체성 상실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낳았다. 이 기사는 그 결정의 과학적 근거와 그것이 남긴 것을 추적한다.
■ DSM이란 무엇인가, 진단의 '성경'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은 미국정신의학회가 발간하는 정신질환 진단 기준서다. 미국에서 출발했지만 현재 전 세계 임상 현장과 연구, 보험 체계에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한국의 정신건강의학과와 소아청소년정신과 역시 이 기준을 주요 진단 도구로 활용한다. DSM이 바뀌면 누가 진단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가 달라진다. 진단 기준은 단순한 학문적 분류가 아니라 수백만 명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제도적 언어다.
■ DSM-IV의 체계, 5가지 독립 진단
DSM-IV에서는 자폐 관련 장애가 '전반적 발달장애(Pervasive Developmental Disorders, PDD)' 범주 아래 다섯 가지 독립 진단으로 나뉘어 있었다. 자폐성 장애(Autistic Disorder), 아스퍼거 장애(Asperger's Disorder), 달리 분류되지 않는 전반적 발달장애(PDD-NOS), 레트 증후군(Rett Syndrome), 소아기 붕괴성 장애(Childhood Disintegrative Disorder)가 그것이었다.
이 체계에서 아스퍼거 증후군은 자폐성 장애와 구별되는 독립적 진단 지위를 가졌다. 핵심 구별 기준은 두 가지였다. 첫째, 언어 발달의 임상적 지연이 없을 것. 둘째, 인지 발달의 지연이 없을 것. 즉, 언어와 지능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자폐 스펙트럼 집단을 별도로 분류한 체계였다.
■ DSM-5의 결정, 단일 스펙트럼으로 통합
DSM-5는 기존의 네 가지 독립 진단인 자폐성 장애, 아스퍼거 증후군, PDD-NOS, 소아기 붕괴성 장애를 단일 진단명인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ASD)'로 통합했다. APA의 입장은 이 장애들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증상을 공유하되 심각도가 다를 뿐이라는 것이었다.
DSM-5는 또한 기존 DSM-IV의 사회성과 의사소통 증상 영역을 하나의 '사회적 의사소통 영역'으로 통합했다. 이를 통해 이전 진단 체계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폐 스펙트럼을 광범위한 스펙트럼 진단 실체로 지지하는 증거 기반에 부응했다.
■ 왜 통합했나, 과학적 근거 3가지
DSM-5 작업반이 통합 결정을 내린 데는 세 가지 핵심 과학적 근거가 있었다.
첫째, 하위 진단 간 증상 프로필의 중첩. 아스퍼거 증후군과 자폐성 장애 사이의 경계가 임상적으로 명확하지 않았다. 핵심 증상 프로필이 사실상 겹쳤으며, 두 집단을 신뢰할 수 있게 구분할 수 있는 생물학적 지표가 존재하지 않았다.
둘째, 하위 진단의 낮은 예측 타당도. DSM-5로의 통합을 이끈 연구들은 하위 집단 진단이 장기적 결과 예측에 낮은 타당성을 보임을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Szatmari 등의 2009년 연구는 아스퍼거 증후군과 자폐 집단이 아동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유사한 발달 궤적을 보인다는 것을 보여줬다.
셋째, 진단 기관 간 불일치. 어떤 진단을 받는지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예측 변수가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어느 클리닉을 방문하는가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아스퍼거 증후군, PDD-NOS, 자폐증 사이의 구분이 임상 현장에서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고 있었다.
이 세 가지 문제를 종합하면, 하위 진단 체계가 과학적으로 견고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APA는 하위 분류를 유지하는 것이 임상적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판단했다.
■ 반론, 통합에 반대한 목소리들
그러나 DSM-5의 결정이 단순히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통합에 반대하는 측에서도 과학적 논거를 내세웠다.
아스퍼거 증후군과 고기능 자폐(HFA)를 비교한 연구들은 언어 발달, 사회적 기술, 인지 프로필에서 미묘하지만 의미 있는 차이를 보고했다. 아스퍼거 증후군 아동은 더 정교한 언어를 보였지만, 그것이 더 좋은 사회적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MRI와 유전자 연구를 포함한 생물학적 연구들은 혼재된 결과를 보였으며, 종종 질적 차이가 아닌 양적 차이만을 발견했다.
DSM-IV의 자폐 장애 항목을 주도한 프레드 볼크마르(Fred Volkmar) 예일대 교수는 아스퍼거 진단 삭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가진 임상적 특수성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채 통합이 결정됐다고 주장했다.
"아스퍼거 진단의 삭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아스퍼거 진단이 일관되지 않게 사용돼 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임상적으로 중요한 구분을 가릴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 Volkmar & Klin, Molecular Autism (2013)
■ "DSM-5가 우리의 정체성을 빼앗아 가고 있다"
과학적 논쟁 못지않게 뜨거웠던 것은 당사자 커뮤니티의 반응이었다. 온라인 아스퍼거 커뮤니티를 분석한 연구는 DSM-5의 변화 제안이 수만 명의 회원을 가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음을 보여준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을 중심으로 강력한 정체성 문화를 형성해 왔다.
"DSM-5가 우리의 정체성을 빼앗아 가고 있다(DSM-V is taking away our identity)"는 문구는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광범위하게 공유됐다. 당사자들에게 아스퍼거 진단은 단순한 의학적 분류가 아니었다. 수십 년간 자신을 이해하는 언어이자,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공동체와 연결되는 고리였다.
DSM-5 이후 아스퍼거 진단을 받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호주 연구에서, 참여자들은 이 변화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의 견해 차이는 인구통계학적 변수보다는 아스퍼거 및 자폐 정체성 통합의 단계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진단명과의 심리적 결합 정도에 따라 반응이 달랐다.
■ 실제로 진단이 줄었는가, 후속 연구
통합 이후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하나였다. 기존에 아스퍼거 진단을 받았던 사람들이 DSM-5 기준 하에서도 ASD 진단을 유지할 수 있는가.
DSM-5 작업반 위원이자 웨일 코넬 의과대학 캐서린 로드(Catherine Lord) 교수는 "새 기준의 의도는 세심하게 진단된 ASD를 가진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것이지 대다수를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진단 감소에 대한 우려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연구들은 엇갈린 결과를 보였다. 일부 연구는 DSM-IV에서 PDD 진단을 받은 집단의 50~75%가 DSM-5 기준으로 진단을 유지한다고 보고했으며, 고기능 집단(아스퍼거 증후군 또는 PDD-NOS)에서 감소폭이 가장 크게 나타났다. 반면 다른 연구에서는 고기능 자폐가 63%, 아스퍼거는 92%가 진단을 유지해, DSM-5 우려가 과장됐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 ASD 심각도 분류, 삭제됐지만 남은 구분
아스퍼거 증후군이 사라졌다고 해서 스펙트럼 내부의 다양성이 무시된 것은 아니다. DSM-5는 ASD 진단 내에 '심각도 수준(Severity Level)' 명시를 도입했다. 사회적 의사소통 영역과 반복 행동 영역 각각에 대해 1~3단계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 체계는 이전의 별도 진단명 대신, 단일 진단 안에서 지원 필요도를 기술하는 방향을 택했다. 지지자들은 이것이 더 유연하고 개인화된 지원을 가능하게 한다고 본다. 비판론자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이 가진 독특한 임상 프로필이 이 숫자 분류로는 충분히 포착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 한국 맥락, 제도 변화가 남긴 공백
한국의 임상 현장은 DSM-5 기준을 공식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국내 장애 등록 및 복지 지원 체계는 여전히 '자폐성 장애'라는 단일 범주로 운영되며, 스펙트럼 내 다양성을 반영하는 세분화된 지원 기준이 부재한 상황이다.
아스퍼거 증후군처럼 언어와 인지 발달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스펙트럼 집단은 '장애'로 인정받기도 어렵고, '비장애'로 살아가기도 어려운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진단명이 통합됐다는 사실이 지원의 균등화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DSM 개정이 제도 변화로 연결되기까지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긴 간극이 존재한다.
▶ 참고문헌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13).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5th ed.). APA Publishing.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1994).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4th ed.). APA Publishing.
Szatmari, P., et al. (2009). Similar developmental trajectories in autism and Asperger syndrome: From early childhood to adolescence. Journal of Child Psychology and Psychiatry, 50, 1459–1467.
Lord, C., et al. (2011). A multisite study of the clinical diagnosis of different autism spectrum disorders. Archives of General Psychiatry, 69(3), 306–313.
Giles, D. C. (2014). 'DSM-V is taking away our identity': The reaction of the online community to the proposed changes in the diagnosis of Asperger's disorder. Health, 18(2), 179–195.
Volkmar, F. R., & Klin, A. (2013). Autism in DSM-5: Progress and challenges. Molecular Autism, 4, 13.
Sharma, S., Woolfson, L. M., & Hunter, S. C. (2012). Confusion and inconsistency in diagnosis of Asperger syndrome: A review of studies from 1981 to 2010. Autism, 16, 465–486.
Copyright © 밸류체인타임스.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밸류체인타임스 = 김유진 기자]
(출처: Freepik)
아스퍼거 증후군은 왜 진단 목록에서 사라졌나
[밸류체인타임스=김유진 기자] 2013년 5월, 미국정신의학회(APA)가 정신질환 진단 기준의 최신판인 DSM-5를 발표했다. 이 개정판에서 가장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변경 사항 중 하나는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s Syndrome)'의 삭제였다. 1994년 DSM-IV에 처음 독립 진단으로 등재된 지 불과 19년 만의 일이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에 흡수되는 과정은 격렬한 논쟁과 함께 진행됐으며, 특히 기존 아스퍼거 진단을 받은 당사자들 사이에서 고유한 정체성 상실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낳았다. 이 기사는 그 결정의 과학적 근거와 그것이 남긴 것을 추적한다.
■ DSM이란 무엇인가, 진단의 '성경'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은 미국정신의학회가 발간하는 정신질환 진단 기준서다. 미국에서 출발했지만 현재 전 세계 임상 현장과 연구, 보험 체계에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한국의 정신건강의학과와 소아청소년정신과 역시 이 기준을 주요 진단 도구로 활용한다. DSM이 바뀌면 누가 진단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가 달라진다. 진단 기준은 단순한 학문적 분류가 아니라 수백만 명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제도적 언어다.
■ DSM-IV의 체계, 5가지 독립 진단
DSM-IV에서는 자폐 관련 장애가 '전반적 발달장애(Pervasive Developmental Disorders, PDD)' 범주 아래 다섯 가지 독립 진단으로 나뉘어 있었다. 자폐성 장애(Autistic Disorder), 아스퍼거 장애(Asperger's Disorder), 달리 분류되지 않는 전반적 발달장애(PDD-NOS), 레트 증후군(Rett Syndrome), 소아기 붕괴성 장애(Childhood Disintegrative Disorder)가 그것이었다.
이 체계에서 아스퍼거 증후군은 자폐성 장애와 구별되는 독립적 진단 지위를 가졌다. 핵심 구별 기준은 두 가지였다. 첫째, 언어 발달의 임상적 지연이 없을 것. 둘째, 인지 발달의 지연이 없을 것. 즉, 언어와 지능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자폐 스펙트럼 집단을 별도로 분류한 체계였다.
■ DSM-5의 결정, 단일 스펙트럼으로 통합
DSM-5는 기존의 네 가지 독립 진단인 자폐성 장애, 아스퍼거 증후군, PDD-NOS, 소아기 붕괴성 장애를 단일 진단명인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ASD)'로 통합했다. APA의 입장은 이 장애들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증상을 공유하되 심각도가 다를 뿐이라는 것이었다.
DSM-5는 또한 기존 DSM-IV의 사회성과 의사소통 증상 영역을 하나의 '사회적 의사소통 영역'으로 통합했다. 이를 통해 이전 진단 체계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폐 스펙트럼을 광범위한 스펙트럼 진단 실체로 지지하는 증거 기반에 부응했다.
■ 왜 통합했나, 과학적 근거 3가지
DSM-5 작업반이 통합 결정을 내린 데는 세 가지 핵심 과학적 근거가 있었다.
첫째, 하위 진단 간 증상 프로필의 중첩. 아스퍼거 증후군과 자폐성 장애 사이의 경계가 임상적으로 명확하지 않았다. 핵심 증상 프로필이 사실상 겹쳤으며, 두 집단을 신뢰할 수 있게 구분할 수 있는 생물학적 지표가 존재하지 않았다.
둘째, 하위 진단의 낮은 예측 타당도. DSM-5로의 통합을 이끈 연구들은 하위 집단 진단이 장기적 결과 예측에 낮은 타당성을 보임을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Szatmari 등의 2009년 연구는 아스퍼거 증후군과 자폐 집단이 아동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유사한 발달 궤적을 보인다는 것을 보여줬다.
셋째, 진단 기관 간 불일치. 어떤 진단을 받는지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예측 변수가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어느 클리닉을 방문하는가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아스퍼거 증후군, PDD-NOS, 자폐증 사이의 구분이 임상 현장에서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고 있었다.
이 세 가지 문제를 종합하면, 하위 진단 체계가 과학적으로 견고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APA는 하위 분류를 유지하는 것이 임상적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판단했다.
■ 반론, 통합에 반대한 목소리들
그러나 DSM-5의 결정이 단순히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통합에 반대하는 측에서도 과학적 논거를 내세웠다.
아스퍼거 증후군과 고기능 자폐(HFA)를 비교한 연구들은 언어 발달, 사회적 기술, 인지 프로필에서 미묘하지만 의미 있는 차이를 보고했다. 아스퍼거 증후군 아동은 더 정교한 언어를 보였지만, 그것이 더 좋은 사회적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MRI와 유전자 연구를 포함한 생물학적 연구들은 혼재된 결과를 보였으며, 종종 질적 차이가 아닌 양적 차이만을 발견했다.
DSM-IV의 자폐 장애 항목을 주도한 프레드 볼크마르(Fred Volkmar) 예일대 교수는 아스퍼거 진단 삭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가진 임상적 특수성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채 통합이 결정됐다고 주장했다.
"아스퍼거 진단의 삭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아스퍼거 진단이 일관되지 않게 사용돼 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임상적으로 중요한 구분을 가릴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 Volkmar & Klin, Molecular Autism (2013)
■ "DSM-5가 우리의 정체성을 빼앗아 가고 있다"
과학적 논쟁 못지않게 뜨거웠던 것은 당사자 커뮤니티의 반응이었다. 온라인 아스퍼거 커뮤니티를 분석한 연구는 DSM-5의 변화 제안이 수만 명의 회원을 가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음을 보여준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을 중심으로 강력한 정체성 문화를 형성해 왔다.
"DSM-5가 우리의 정체성을 빼앗아 가고 있다(DSM-V is taking away our identity)"는 문구는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광범위하게 공유됐다. 당사자들에게 아스퍼거 진단은 단순한 의학적 분류가 아니었다. 수십 년간 자신을 이해하는 언어이자,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공동체와 연결되는 고리였다.
DSM-5 이후 아스퍼거 진단을 받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호주 연구에서, 참여자들은 이 변화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의 견해 차이는 인구통계학적 변수보다는 아스퍼거 및 자폐 정체성 통합의 단계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진단명과의 심리적 결합 정도에 따라 반응이 달랐다.
■ 실제로 진단이 줄었는가, 후속 연구
통합 이후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하나였다. 기존에 아스퍼거 진단을 받았던 사람들이 DSM-5 기준 하에서도 ASD 진단을 유지할 수 있는가.
DSM-5 작업반 위원이자 웨일 코넬 의과대학 캐서린 로드(Catherine Lord) 교수는 "새 기준의 의도는 세심하게 진단된 ASD를 가진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것이지 대다수를 배제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진단 감소에 대한 우려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연구들은 엇갈린 결과를 보였다. 일부 연구는 DSM-IV에서 PDD 진단을 받은 집단의 50~75%가 DSM-5 기준으로 진단을 유지한다고 보고했으며, 고기능 집단(아스퍼거 증후군 또는 PDD-NOS)에서 감소폭이 가장 크게 나타났다. 반면 다른 연구에서는 고기능 자폐가 63%, 아스퍼거는 92%가 진단을 유지해, DSM-5 우려가 과장됐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 ASD 심각도 분류, 삭제됐지만 남은 구분
아스퍼거 증후군이 사라졌다고 해서 스펙트럼 내부의 다양성이 무시된 것은 아니다. DSM-5는 ASD 진단 내에 '심각도 수준(Severity Level)' 명시를 도입했다. 사회적 의사소통 영역과 반복 행동 영역 각각에 대해 1~3단계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 체계는 이전의 별도 진단명 대신, 단일 진단 안에서 지원 필요도를 기술하는 방향을 택했다. 지지자들은 이것이 더 유연하고 개인화된 지원을 가능하게 한다고 본다. 비판론자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이 가진 독특한 임상 프로필이 이 숫자 분류로는 충분히 포착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 한국 맥락, 제도 변화가 남긴 공백
한국의 임상 현장은 DSM-5 기준을 공식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국내 장애 등록 및 복지 지원 체계는 여전히 '자폐성 장애'라는 단일 범주로 운영되며, 스펙트럼 내 다양성을 반영하는 세분화된 지원 기준이 부재한 상황이다.
아스퍼거 증후군처럼 언어와 인지 발달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스펙트럼 집단은 '장애'로 인정받기도 어렵고, '비장애'로 살아가기도 어려운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진단명이 통합됐다는 사실이 지원의 균등화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DSM 개정이 제도 변화로 연결되기까지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긴 간극이 존재한다.
▶ 참고문헌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13).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5th ed.). APA Publishing.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1994).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4th ed.). APA Publishing.
Szatmari, P., et al. (2009). Similar developmental trajectories in autism and Asperger syndrome: From early childhood to adolescence. Journal of Child Psychology and Psychiatry, 50, 1459–1467.
Lord, C., et al. (2011). A multisite study of the clinical diagnosis of different autism spectrum disorders. Archives of General Psychiatry, 69(3), 306–313.
Giles, D. C. (2014). 'DSM-V is taking away our identity': The reaction of the online community to the proposed changes in the diagnosis of Asperger's disorder. Health, 18(2), 179–195.
Volkmar, F. R., & Klin, A. (2013). Autism in DSM-5: Progress and challenges. Molecular Autism, 4, 13.
Sharma, S., Woolfson, L. M., & Hunter, S. C. (2012). Confusion and inconsistency in diagnosis of Asperger syndrome: A review of studies from 1981 to 2010. Autism, 16, 465–486.
Copyright © 밸류체인타임스.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밸류체인타임스 = 김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