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의 시대, 신뢰가 먼저 고갈되고 있다ㅣ밸류체인타임스

이아림 칼럼니스트
2026-01-04
조회수 6298

벌써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지다가도,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온 노후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존재가 있다. 바로 ‘연금’이다. 대화의 시작에서는 조연처럼 등장하지만, 이내 논의의 정점에서 주연이 되는 주제다.


과거에는 월급을 받기 시작한 이후에 노후를 고민해도 늦지 않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소득이 없는 10대일지라도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빠르게 노후를 대비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국민연금뿐 아니라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미래의 삶을 스스로 보장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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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Unsplash)


이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노후 보장 제도가 바로 ‘연금’이다. 국내 연금 제도는 크게 3층 구조로 나뉜다. 1층 보장은 국가가 기초적인 생활 안정을 위해 운영하는 국민연금으로, 소득이 있는 경우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2층 보장은 근로소득이 있는 근로자가 회사와 함께 자산을 운용해 노후 소득을 마련하는 퇴직연금이다. 마지막으로 3층 보장은 개인이 자율적으로 선택해 보다 여유로운 노후를 대비하는 개인연금이다. 연금의 종류는 이보다 더 세분화될 수 있지만, 우선 가장 기본적인 제도인 국민연금부터 살펴보자.



국민연금, 세대 간 연대의 시험대에 서다

가장 보편적인 연금 제도인 국민연금은 노후 생활비 마련을 위해 젊을 때부터 국가 주도로 자금을 적립하는 제도다. 다른 연금 제도와 달리 강제성이 있으며, 국가가 보장하고 모든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공적 성격을 지닌다. 직장인은 자동으로 가입되지만, 프리랜서나 자영업자는 지역가입자로 분류되어 보험료 전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소득이 없는 학생이나 주부는 임의가입자로 자발적인 참여가 가능하다.


다만 국민연금에 납입된 보험료는 개인 계좌에 고스란히 쌓였다가 훗날 그대로 돌아오는 구조가 아니다. 현재 납입되는 보험료의 일부는 이미 연금을 수령하고 있는 노년층의 연금 지급에 사용된다. 이러한 점에서 국민연금은 개인의 저축이 아니라, 세대 간 연대를 바탕으로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제도라고 볼 수 있다. 1988년 도입 이후 국민과 정부 사이의 윈윈 구조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이 제도를 둘러싼 우려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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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Unsplash)


1960~1970년대 시행된 산아 제한 정책을 떠올려 보자. 6·25전쟁 이후 황폐해진 국가의 인구 부양 능력은 당시 급격히 증가한 인구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이에 정부는 각종 캠페인과 홍보를 통해 출산을 억제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성공적이었던 탓일까. 현재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올해 초 OECD는 『한국의 태어나지 않는 미래: 저출산 추세의 이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심각한 저출산 현실을 짚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과 수십 년 전 산아 제한을 외치던 정부는 이제 급격히 줄어든 출생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종교 단체까지 저출산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으며, 언론 역시 매년 발표되는 합계출산율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러한 사회적 긴장감의 배경에는 국민연금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적립식 시스템, 부과식 시스템으로 운용된다. 적립식 시스템이란 본인이 납입한 금액을 모아서 훗날 수령하는 시스템이다. 말 그대로 '모으는’ 방식으로, 인구 변화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나 저금리 환경에서는 실질 수익률이 낮아진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반면 부과식 시스템은 현재 경제활동을 하는 세대가 납부한 보험료로 당장의 연금 수급자를 부양하는 방식이다. 즉, ‘지금 내가 낸 돈이 누군가의 연금이 되는’ 구조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이 두 제도가 결합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문제는 저출산으로 인해 경제활동 인구는 줄어드는 반면, 이들이 부양해야 할 세대는 인구 규모가 큰 베이비붐 세대라는 점이다. 이들은 현재 중·장년층으로,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이미 은퇴한 상태다. 여기에 더해 연금 수령이 시작되는 연령은 60~65세 수준이지만, 평균 수명은 이미 80세를 훌쩍 넘겼다. 그만큼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 기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단순히 인구가 많은 세대가 아니라, 본격적인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첫 세대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뿐 아니라 그 윗세대까지 함께 부양해야 하는 구조적 부담을 떠안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부양해야 할 부모는 두 분이지만 실질적으로 책임져야 할 노년층은 그보다 훨씬 늘어난 셈이다.


이처럼 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저출산의 여파는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점차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지금 내는 연금이, 훗날 나에게 돌아올 수 있을까?” 


연금 제도는 무엇보다 신뢰를 기반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한 번 생긴 의심은 빠르게 퍼지고,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


세대 간 형평성 문제와 더불어 기금 운용 수익률 역시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은 주로 국내 주식과 채권에 투자되고 있지만, 수익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연금 고갈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국내 투자만으로는 기금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글로벌 투자 확대와 수익률 제고 전략이 필수적이다.



성공적인 국민연금 운용의 세 가지 핵심 축: 유동성, 투명한 소통 그리고 신뢰

지속 가능한 국민연금 제도를 구축하기 위한 현실적인 해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과제가 아니라, 인구 감소와 고령화를 동시에 겪고 있는 여러 선진국이 공통으로 마주한 난제다. 다행히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며 지속 가능한 연금 제도를 만들어낸 선례는 이미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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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Unsplash)


대표적인 사례가 스웨덴과 캐나다다. 이들 국가는 자동 조정 장치 도입, 사회적 합의 형성, 그리고 재정 안정화 노력을 세 축으로 삼아 연금 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해결해 왔다.


먼저 스웨덴은 기존의 전통적인 연금 지급 방식인 확정급여형(DB) 제도에서 확정기여형(DC) 연금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자동조정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인구 고령화와 같은 사회·경제적 변수를 예측 모델에 반영해 연금 제도를 설계하고, 변화하는 경제 상황과 인구 구조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다.


이 제도는 연금 재정이 불안정해지거나 연금 수급자가 증가할 경우, 연금 지급액이나 수급 조건이 자동으로 조정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를 통해 연금 재정의 균형을 유지하고, 제도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한편 캐나다는 높은 수익률과 국민의 두터운 신뢰를 동시에 확보한 연금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로 평가받는다. 캐나다는 연금 제도의 핵심 가치인 ‘신뢰’를 회복하고 유지하는 데 집중해 왔다. 캐나다 연기금(CPPIB)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마이클 르덕은, 다양하고 균형 잡힌 투자 포트폴리오를 통해 장기적이고 일관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신뢰를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결국 연속적인 성과를 증명하는 것”이라며, “성과가 축적되고 그 과정이 반복적으로 검증될 때 비로소 믿음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이어 “이와 함께 적극적이고 투명한 소통이 필수적”이라며, “결과가 좋든 나쁘든 모든 과정과 의사결정을 중립적인 태도로 공개해야 불필요한 오해와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축은 지속적인 재정 안정화 노력이다. 보험료율 조정, 투자 수익률 제고 등 구조적인 개선을 통해 연금 기금의 재정 건전성과 지속 가능성을 꾸준히 높여 나가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뒷받침될 때 국민연금은 미래 세대에게도 신뢰받는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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