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라면의 탄생
(출처=닛신)
[밸류체인타임스=김시우 인재기자] 컵라면은 1970년, 일본 닛신식품의 차업주인 안도 모모후쿠의 의해 개발되었다. 1958년에 봉지라면을 개발한 안도 모모후쿠는 자신이 만든 라면을 서양에도 알리고 싶었다. 보통 라면은 넓고 깊은 그릇에 담아 먹지만 주로 접시를 사용하는 서양에서 라면을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안도 모모후쿠는 외국 바이어가 봉지라면을 부숴 종이컵에 넣고 끓는 물을 부어 포크로 먹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미국인들에게 라면을 냄비에 끓여 젓가락으로 먹는 방식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도 모모후쿠는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서양인들이 포크로 면을 건져 먹기 편한 용기 연구를 시작했다.
이로 인해 스티로폼 컵에 건조된 면과 수프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컵누들'을 고안해냈다. 컵라면의 면은 봉지라면보다 빨리 익히기 위해 면이 더 얇고 전분이 더 많이 들어간다.
컵라면의 역전, 한국에 컵라면이 들어온 이유
당시 일반 봉지 라면의 가격보다 4배나 비싼 컵누들은 처음에 사람들에게 외면 받았다. 그러나 1972년 2월, 일본의 아사마 산장 사건이 벌어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뉴스에서 테러범과 경찰이 대치하는 장면을 생중계했는데, 이때 시청률이 50% 이상, 최고 89%까지 나왔다. 거의 전국민이 지켜보고 있던 가운데 컵라면을 먹는 경찰들의 모습이 방영되었다. 이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컵라면의 소비량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이 일어난지 약 한 달 후인 1972년 3월, 삼양은 컵라면을 빠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점을 어필하며 '삼양 컵라면'을 출시했다. 당시 한국의 1인당 GDP는 324달러로 일본보다 7배나 낮은 상황이었다. 봉지 라면보다 비싼 가격인데다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봉지라면이 있는 상황에서 컵라면은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국내 컵라면 경쟁의 시작
당시 서민들은 컵라면을 쉽게 즐겨먹을 수 없었다. 삼양은 한국 GDP가 급증할 지점을 기다리며, 컵라면 자판기 출시 등 여러 마케팅을 진행했지만 ‘삼양 컵라면’은 여전히 판매되지 않았다. 삼양 컵라면이 출시된 지 약 10년 후인 1981년 10월, 한국인의 1인당 GDP가 오르는 시기에 발맞춰 경쟁사인 농심에서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소고기 육수를 사용한 컵라면 '사발면'을 출시했다.
농심 사발면은 삼양 컵라면보다 양도 20g 더 많았고, 이에 소비자들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농심 사발면 출시 이후 컵라면 수요가 점차 늘어났고, 이에 삼양 라면도 반사이익을 보면서 조금씩 판매량이 늘기 시작했다.
삼양은 농심 사발면에 대응하기 위해 면이 1분 만에 익는 ‘컵라면 퀵 원’을 출시했다. 사실 컵라면의 면이 봉지라면보다 빨리 익는 이유는 감자전분이 더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밀가루보다 감자전분이 더 빨리 익는 특성을 갖고 있다. 편리함은 얻었지만 맛은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삼양의 퀵 원은 소비자들에게 선택받지 못했다.
국민 컵라면, 농심 '육개장 사발면'의 등장
(육개장 사발면, 농심)
삼양이 퀵 원을 출시한 시기에 농심은 현재까지도 컵라면의 근본이라 불리는 ‘육개장 사발면’을 출시했다. 육개장은 출시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농심이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의 공식 납품 업체로 지정되면서 그 정점을 찍었다. 선수들과 국내외 팬들이 육개장 사발면을 먹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방영되었다. 또한 당시 한국인의 등산이나 낚시, 여행 등 여가 활동이 늘어나면서 육개장 사발면을 챙겨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육개장 사발면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이후 농심은 우동 사발면, 해장국 사발면을 출시했지만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러다 1986년, 또 한 번의 히트작인 김치 사발면을 출시했고, 이후 새우탕면, 우육탕면 같이 큰 컵라면을 출시하면서 제품군을 늘려나갔다. 1998년 신라면을 컵라면으로 출시하면서 그 인기가 정점을 찍게 되었다.
컵라면 시장의 후발주자 '팔도'의 역전
(도시락, 팔도)
1990년대부터 편의점 시장이 크게 성장하면서 컵라면 시장도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팔도는 1986년의 첫 컵라면 '도시락'을 출시했다. 도시락은 다른 기업들이 사용해왔던 동그란 용기에서 벗어나 사각형 용기로 출시되었고, 소비자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가능성을 본 팔도는 다른 기업들과는 더 차별화된 엄청난 크기의 왕뚜껑을 출시했다.
(왕뚜껑 팔도)
왕뚜껑은 도시락 컵라면에 들어간 콩고기를 그대로 사용했고, 도시락 간이 약하다는 피드백을 반영하여 더 맵게 출시했다. 사실 왕뚜껑은 출시 직후에는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당시 인기를 끈 배우 박남현이 출연한 왕뚜껑 유머 광고가 화제가 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박남현의 대사였던 "왕입니다요"도 유행어가 되었다.
팔도는 현재까지도 유머러스한 광고를 지속하고 있다. 2012년, 팔도의 환경 문제로 인해 플라스틱 뚜껑을 없애고 코팅 필름으로 교체했지만 매출이 급락했다. 이에 팔도는 다시 플라스틱 뚜껑으로 바꾸었지만 이미 왕뚜껑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 소비자들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기 위한 새로운 광고가 필요했다.
"단연컨대 뚜껑은 가장 완벽한 물체입니다" 팔도는 팬택 베가아이언의 광고를 패러디한 왕뚜껑 광고를 진행했다. 왕뚜껑의 유머러스한 광고로 다시 소비자들을 끌어모았고, 매출은 다시 상승했다. 2022년까지 왕뚜껑은 컵라면 판매 순위 3위를 차지했고, 전체 판매 매출의 9%, 팔도 라면 매출의 30%를 차지했다.
앞으로의 컵라면
(오뚜기 컵누들, 오뚜기, 신라면 건면, 농심)
현재 소비자들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앞으로는 나트륨 함량이 낮은 저염 라면, 밀가루 대신 쌀가루나 콩가루를 사용하는 글루텐 프리 라면 등 맛뿐만 아니라 영양까지 고려한 라면의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기업들의 경쟁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컵라면의 역사와 발전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라면 제품의 탄생과 변화를 보아왔다. 앞으로도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컵라면이 계속해서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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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김시우 인재기자]
컵라면의 탄생
(출처=닛신)
[밸류체인타임스=김시우 인재기자] 컵라면은 1970년, 일본 닛신식품의 차업주인 안도 모모후쿠의 의해 개발되었다. 1958년에 봉지라면을 개발한 안도 모모후쿠는 자신이 만든 라면을 서양에도 알리고 싶었다. 보통 라면은 넓고 깊은 그릇에 담아 먹지만 주로 접시를 사용하는 서양에서 라면을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안도 모모후쿠는 외국 바이어가 봉지라면을 부숴 종이컵에 넣고 끓는 물을 부어 포크로 먹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미국인들에게 라면을 냄비에 끓여 젓가락으로 먹는 방식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도 모모후쿠는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서양인들이 포크로 면을 건져 먹기 편한 용기 연구를 시작했다.
이로 인해 스티로폼 컵에 건조된 면과 수프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컵누들'을 고안해냈다. 컵라면의 면은 봉지라면보다 빨리 익히기 위해 면이 더 얇고 전분이 더 많이 들어간다.
컵라면의 역전, 한국에 컵라면이 들어온 이유
당시 일반 봉지 라면의 가격보다 4배나 비싼 컵누들은 처음에 사람들에게 외면 받았다. 그러나 1972년 2월, 일본의 아사마 산장 사건이 벌어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뉴스에서 테러범과 경찰이 대치하는 장면을 생중계했는데, 이때 시청률이 50% 이상, 최고 89%까지 나왔다. 거의 전국민이 지켜보고 있던 가운데 컵라면을 먹는 경찰들의 모습이 방영되었다. 이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컵라면의 소비량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이 일어난지 약 한 달 후인 1972년 3월, 삼양은 컵라면을 빠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점을 어필하며 '삼양 컵라면'을 출시했다. 당시 한국의 1인당 GDP는 324달러로 일본보다 7배나 낮은 상황이었다. 봉지 라면보다 비싼 가격인데다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봉지라면이 있는 상황에서 컵라면은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국내 컵라면 경쟁의 시작
당시 서민들은 컵라면을 쉽게 즐겨먹을 수 없었다. 삼양은 한국 GDP가 급증할 지점을 기다리며, 컵라면 자판기 출시 등 여러 마케팅을 진행했지만 ‘삼양 컵라면’은 여전히 판매되지 않았다. 삼양 컵라면이 출시된 지 약 10년 후인 1981년 10월, 한국인의 1인당 GDP가 오르는 시기에 발맞춰 경쟁사인 농심에서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소고기 육수를 사용한 컵라면 '사발면'을 출시했다.
농심 사발면은 삼양 컵라면보다 양도 20g 더 많았고, 이에 소비자들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농심 사발면 출시 이후 컵라면 수요가 점차 늘어났고, 이에 삼양 라면도 반사이익을 보면서 조금씩 판매량이 늘기 시작했다.
삼양은 농심 사발면에 대응하기 위해 면이 1분 만에 익는 ‘컵라면 퀵 원’을 출시했다. 사실 컵라면의 면이 봉지라면보다 빨리 익는 이유는 감자전분이 더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밀가루보다 감자전분이 더 빨리 익는 특성을 갖고 있다. 편리함은 얻었지만 맛은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삼양의 퀵 원은 소비자들에게 선택받지 못했다.
국민 컵라면, 농심 '육개장 사발면'의 등장
(육개장 사발면, 농심)
삼양이 퀵 원을 출시한 시기에 농심은 현재까지도 컵라면의 근본이라 불리는 ‘육개장 사발면’을 출시했다. 육개장은 출시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농심이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의 공식 납품 업체로 지정되면서 그 정점을 찍었다. 선수들과 국내외 팬들이 육개장 사발면을 먹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방영되었다. 또한 당시 한국인의 등산이나 낚시, 여행 등 여가 활동이 늘어나면서 육개장 사발면을 챙겨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육개장 사발면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이후 농심은 우동 사발면, 해장국 사발면을 출시했지만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러다 1986년, 또 한 번의 히트작인 김치 사발면을 출시했고, 이후 새우탕면, 우육탕면 같이 큰 컵라면을 출시하면서 제품군을 늘려나갔다. 1998년 신라면을 컵라면으로 출시하면서 그 인기가 정점을 찍게 되었다.
컵라면 시장의 후발주자 '팔도'의 역전
(도시락, 팔도)
1990년대부터 편의점 시장이 크게 성장하면서 컵라면 시장도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팔도는 1986년의 첫 컵라면 '도시락'을 출시했다. 도시락은 다른 기업들이 사용해왔던 동그란 용기에서 벗어나 사각형 용기로 출시되었고, 소비자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가능성을 본 팔도는 다른 기업들과는 더 차별화된 엄청난 크기의 왕뚜껑을 출시했다.
(왕뚜껑 팔도)
왕뚜껑은 도시락 컵라면에 들어간 콩고기를 그대로 사용했고, 도시락 간이 약하다는 피드백을 반영하여 더 맵게 출시했다. 사실 왕뚜껑은 출시 직후에는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당시 인기를 끈 배우 박남현이 출연한 왕뚜껑 유머 광고가 화제가 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박남현의 대사였던 "왕입니다요"도 유행어가 되었다.
팔도는 현재까지도 유머러스한 광고를 지속하고 있다. 2012년, 팔도의 환경 문제로 인해 플라스틱 뚜껑을 없애고 코팅 필름으로 교체했지만 매출이 급락했다. 이에 팔도는 다시 플라스틱 뚜껑으로 바꾸었지만 이미 왕뚜껑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 소비자들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기 위한 새로운 광고가 필요했다.
"단연컨대 뚜껑은 가장 완벽한 물체입니다" 팔도는 팬택 베가아이언의 광고를 패러디한 왕뚜껑 광고를 진행했다. 왕뚜껑의 유머러스한 광고로 다시 소비자들을 끌어모았고, 매출은 다시 상승했다. 2022년까지 왕뚜껑은 컵라면 판매 순위 3위를 차지했고, 전체 판매 매출의 9%, 팔도 라면 매출의 30%를 차지했다.
앞으로의 컵라면
(오뚜기 컵누들, 오뚜기, 신라면 건면, 농심)
현재 소비자들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앞으로는 나트륨 함량이 낮은 저염 라면, 밀가루 대신 쌀가루나 콩가루를 사용하는 글루텐 프리 라면 등 맛뿐만 아니라 영양까지 고려한 라면의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기업들의 경쟁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컵라면의 역사와 발전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라면 제품의 탄생과 변화를 보아왔다. 앞으로도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컵라면이 계속해서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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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김시우 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