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체인타임스=황주하 인재기자] 1903년 1월 10일, 미국 캔자스주 캔자스시티에서 찰스 엘머 둘린이 태어났다. 찰스 엘머 둘린은 치토스를 만든 인물이다. 찰스 엘머 둘린이 치토스를 만들기 전 개발한 것은 바로 프리토스다.
그의 아버지 찰스 버나드 둘린은 기계를 잘 만지는 발명가였다. 기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찰스 버니드 둘린은 아들들이 어릴 적부터 기계공학과 발명을 위해 특허 출원서 쓰는 법을 가르쳤다.
출처=UNSPLASH
찰스 엘머 둘린은 청소년 시절부터 아버지의 자동차 정비 가게에서 일하며 가게 운영과 영업에 대해 익혔고, 사업가로서의 역량도 키웠다. 1932년, 찰스 엘머 둘린이 29살이 되던 해 당시 찰스 엘머 둘린의 가족은 샌안토니오의 하이랜드 파크에서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찰스네 제과점은 두 회사의 아이스크림을 주력으로 판매하고 있었는데, 아이스크림을 만든 두 회사가 가격 경쟁을 하는 바람에 찰스 엘머 둘린의 제과점 매출에 문제가 생기게 됐다.
출처=UNSPLASH
그래서 찰스 엘머 둘린은 아이스크림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새로운 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샌안토니오 익스프레스 광고를 보고 눈이 트이게 된다. 구스타보 올긴이란 사람이 특수 개조한 감자 라이서와 옥수수 칩 레시피, 19곳의 소매 거래처를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찰스 엘머 둘린은 곧장 구스타보의 가게를 방문했다. 그는 옥수수칩 샘플을 먹어보고 옥수수칩의 매력에 빠져 구스타보 올긴이란 사람에게 특수 개조한 감자 라이서와 옥수수칩 레시피, 19곳의 소매 거래처를 100달러(13만 3780원(2024.02.20 기준))에 일괄 구매했다.
출처=flicker
이후 찰스 엘머 둘린은 부모님 댁 부엌에서 아버지, 어머니, 동생까지 온 가족이 모여 새로운 옥수수칩을 만들었다. 먼저 구입해 특수 개조된 감자 라이서로 옥수수 반죽을 압출했다. 이때 원통형으로 압출하고 납작하게 밀었는지, 아님 처음부터 납작하게 압출되어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압출된 반죽의 작은 조각을 끓는 기름에 바로 잘라 넣어 바삭한 옥수수칩을 만들었다. 이것이 프리토스의 시작이었다.
출처=unsplash
1932년 9월, 찰스 엘머 둘린은 새로운 옥수수 칩 판매를 하기 위해 프리토 컴퍼니를 설립했다. 초기에는 부엌에서 온 가족이 하루에 4.5kg 정도의 프리토스를 생산해 하루 평균 2달러 정도의 마진을 남겼다.
1933년 반죽을 압출하는 기술인 해머 프레스를 개발해 프리토스 생산량을 하루 45kg까지 확대했다. 이후 프리토 컴퍼니는 이 해머 프레스 기술의 특허를 출원했다. 1937년에는 연구 개발 연구소도 만들었다. 1955년에는 50개 이상의 생산 공장을 보유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에게 영양가 높은 식단을 제공하기 위해 미국의 전투식량인 K-ration과 C-ration에 포함되어 있던 치즈 스프레드가 있었다. 미군은 더욱 효율적으로 포장하고 보급하기 위해 치즈 수분을 제거하고 부피를 줄이고자 했다.
미군뿐 아니라 미 농무부 USDA, 캘리포니아 대학 등에서도 탈수 치즈 연구를 진행했다. 1943년 USDA 낙농 과학자 조지 샌더스가 최초로 탈수치즈, 가루치즈를 개발하는데 성공해 미군은 전쟁을 위해 이 치즈가루를 대량으로 구입했다.
하지만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이나 미군은 시중에 저렴한 가격으로 탈수 치즈가루를 내놓는다. 이 대량 치즈가루를 찰스 엘머 둘린이 사게 된다. 찰스 엘머 둘린은 옥수수가루에 물을 섞어 압축하고, 뜨거운 열과 압력으로 가열해 바삭하게 만들고, 오렌지색 가루 치즈 시즈닝을 뿌려 마무리한 새로운 과자를 개발한다.
1948년 프리토 컴퍼니 최초의 치토스, 치토스 크런치가 출시된다. 치토스 크런치는 뜨거운 공기와 접촉해 얻은 바삭한 식감과 강력한 치즈 가루 덕분에 특유의 중독성을 얻어 출시 직후 매우 잘 팔리는 제품이 됐다.
출처=unsplash
당시 찰스 엘머 둘린은 전국에 유통할 능력이 없었다. 유통 파트너로 허먼 레이를 만나게 된다. 허먼 레이는 미국의 감자칩 브랜드 레이스를 설립한 인물이다. 찰스 엘머 둘린과 허먼 레이의 사업 제휴 덕에 치토스는 미국 전역에 안정적으로 출시됐다.
1959년, 56살의 찰스 엘머 둘린은 심장마비로 인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1961년, 프리토 컴퍼니와 허먼의 HY 레이앤 컴퍼니가 합병해 프리토- 레이라는 이름의 회사가 되었다. 프리토-레이는 해외 판로 개척을 목표로 펩시콜라와 합병한다. 이것이 지금의 펩시코다.
치토스의 치토스 크런치는 23년 동안 브랜드의 유일한 제품으로 자리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1971년, 치토스 퍼프가 출시된다. 치토스 퍼프는 부드럽고 푹신한 식감을 제공하며 새로운 맛의 재미를 사람들에게 안겨줬다. 이후로도 많은 제품들이 출시됐다.
1992년에는 치토스 불타는 매운맛이 출시됐다. 이 과자는 마케팅 부서나 제품 개발팀 직원이 아닌 프리토-레이 공장 청소부 리처드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그는 멕시코 출신 이민자로 영어실력이 좋지 않아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못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끝에 프리토-레이의 청소부가 되었다.
출처=unsplash
그는 매운맛 버전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려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해 펩시코 대표실에 전화를 걸어 프리젠테이션을 할 기회를 얻어냈다. 그의 노력 덕분에 펩시코는 리처드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1992년 치토스 불타는 매운맛이 출시돼 프리토-레이 전 제품 중 가장 잘 팔리는 과자로 등극됐다. 이후 리처드는 펩시콜라 북미지역 다문화 제품 판매 담당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04년 일반 치즈맛 스낵의 높은 칼로리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해 구워낸 치토스 베이크를 출시했다. 2010년에는 천연재료와 화이트 체다 치즈를 더해 만든 치토스 화이트 체다 치즈를 출시했다. 화이트 체다 치즈 치토스는 인공 향료나 색소 없이 좋은 재료만 사용하는 심플리 브랜드와 콜라보 형태로 출시되고 있다.
현재는 바삭바삭한 크런치군, 부드러운 퍼프군, 팝콘군, 치즈 풍미가 담긴 맥앤치즈군, 매콤한 프라밍핫군, 구운 옥수수군, 감자가 만난 판타지스군, 건강한 심플리군, 구운 베이크군 등 여러 제품군으로 나뉘어 30여 종이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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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황주하 인재기자]
[밸류체인타임스=황주하 인재기자] 1903년 1월 10일, 미국 캔자스주 캔자스시티에서 찰스 엘머 둘린이 태어났다. 찰스 엘머 둘린은 치토스를 만든 인물이다. 찰스 엘머 둘린이 치토스를 만들기 전 개발한 것은 바로 프리토스다.
그의 아버지 찰스 버나드 둘린은 기계를 잘 만지는 발명가였다. 기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찰스 버니드 둘린은 아들들이 어릴 적부터 기계공학과 발명을 위해 특허 출원서 쓰는 법을 가르쳤다.
출처=UNSPLASH
찰스 엘머 둘린은 청소년 시절부터 아버지의 자동차 정비 가게에서 일하며 가게 운영과 영업에 대해 익혔고, 사업가로서의 역량도 키웠다. 1932년, 찰스 엘머 둘린이 29살이 되던 해 당시 찰스 엘머 둘린의 가족은 샌안토니오의 하이랜드 파크에서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찰스네 제과점은 두 회사의 아이스크림을 주력으로 판매하고 있었는데, 아이스크림을 만든 두 회사가 가격 경쟁을 하는 바람에 찰스 엘머 둘린의 제과점 매출에 문제가 생기게 됐다.
출처=UNSPLASH
그래서 찰스 엘머 둘린은 아이스크림만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새로운 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샌안토니오 익스프레스 광고를 보고 눈이 트이게 된다. 구스타보 올긴이란 사람이 특수 개조한 감자 라이서와 옥수수 칩 레시피, 19곳의 소매 거래처를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찰스 엘머 둘린은 곧장 구스타보의 가게를 방문했다. 그는 옥수수칩 샘플을 먹어보고 옥수수칩의 매력에 빠져 구스타보 올긴이란 사람에게 특수 개조한 감자 라이서와 옥수수칩 레시피, 19곳의 소매 거래처를 100달러(13만 3780원(2024.02.20 기준))에 일괄 구매했다.
출처=flicker
이후 찰스 엘머 둘린은 부모님 댁 부엌에서 아버지, 어머니, 동생까지 온 가족이 모여 새로운 옥수수칩을 만들었다. 먼저 구입해 특수 개조된 감자 라이서로 옥수수 반죽을 압출했다. 이때 원통형으로 압출하고 납작하게 밀었는지, 아님 처음부터 납작하게 압출되어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압출된 반죽의 작은 조각을 끓는 기름에 바로 잘라 넣어 바삭한 옥수수칩을 만들었다. 이것이 프리토스의 시작이었다.
출처=unsplash
1932년 9월, 찰스 엘머 둘린은 새로운 옥수수 칩 판매를 하기 위해 프리토 컴퍼니를 설립했다. 초기에는 부엌에서 온 가족이 하루에 4.5kg 정도의 프리토스를 생산해 하루 평균 2달러 정도의 마진을 남겼다.
1933년 반죽을 압출하는 기술인 해머 프레스를 개발해 프리토스 생산량을 하루 45kg까지 확대했다. 이후 프리토 컴퍼니는 이 해머 프레스 기술의 특허를 출원했다. 1937년에는 연구 개발 연구소도 만들었다. 1955년에는 50개 이상의 생산 공장을 보유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에게 영양가 높은 식단을 제공하기 위해 미국의 전투식량인 K-ration과 C-ration에 포함되어 있던 치즈 스프레드가 있었다. 미군은 더욱 효율적으로 포장하고 보급하기 위해 치즈 수분을 제거하고 부피를 줄이고자 했다.
미군뿐 아니라 미 농무부 USDA, 캘리포니아 대학 등에서도 탈수 치즈 연구를 진행했다. 1943년 USDA 낙농 과학자 조지 샌더스가 최초로 탈수치즈, 가루치즈를 개발하는데 성공해 미군은 전쟁을 위해 이 치즈가루를 대량으로 구입했다.
하지만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이나 미군은 시중에 저렴한 가격으로 탈수 치즈가루를 내놓는다. 이 대량 치즈가루를 찰스 엘머 둘린이 사게 된다. 찰스 엘머 둘린은 옥수수가루에 물을 섞어 압축하고, 뜨거운 열과 압력으로 가열해 바삭하게 만들고, 오렌지색 가루 치즈 시즈닝을 뿌려 마무리한 새로운 과자를 개발한다.
1948년 프리토 컴퍼니 최초의 치토스, 치토스 크런치가 출시된다. 치토스 크런치는 뜨거운 공기와 접촉해 얻은 바삭한 식감과 강력한 치즈 가루 덕분에 특유의 중독성을 얻어 출시 직후 매우 잘 팔리는 제품이 됐다.
출처=unsplash
당시 찰스 엘머 둘린은 전국에 유통할 능력이 없었다. 유통 파트너로 허먼 레이를 만나게 된다. 허먼 레이는 미국의 감자칩 브랜드 레이스를 설립한 인물이다. 찰스 엘머 둘린과 허먼 레이의 사업 제휴 덕에 치토스는 미국 전역에 안정적으로 출시됐다.
1959년, 56살의 찰스 엘머 둘린은 심장마비로 인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1961년, 프리토 컴퍼니와 허먼의 HY 레이앤 컴퍼니가 합병해 프리토- 레이라는 이름의 회사가 되었다. 프리토-레이는 해외 판로 개척을 목표로 펩시콜라와 합병한다. 이것이 지금의 펩시코다.
치토스의 치토스 크런치는 23년 동안 브랜드의 유일한 제품으로 자리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1971년, 치토스 퍼프가 출시된다. 치토스 퍼프는 부드럽고 푹신한 식감을 제공하며 새로운 맛의 재미를 사람들에게 안겨줬다. 이후로도 많은 제품들이 출시됐다.
1992년에는 치토스 불타는 매운맛이 출시됐다. 이 과자는 마케팅 부서나 제품 개발팀 직원이 아닌 프리토-레이 공장 청소부 리처드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그는 멕시코 출신 이민자로 영어실력이 좋지 않아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못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끝에 프리토-레이의 청소부가 되었다.
출처=unsplash
그는 매운맛 버전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려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해 펩시코 대표실에 전화를 걸어 프리젠테이션을 할 기회를 얻어냈다. 그의 노력 덕분에 펩시코는 리처드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1992년 치토스 불타는 매운맛이 출시돼 프리토-레이 전 제품 중 가장 잘 팔리는 과자로 등극됐다. 이후 리처드는 펩시콜라 북미지역 다문화 제품 판매 담당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04년 일반 치즈맛 스낵의 높은 칼로리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해 구워낸 치토스 베이크를 출시했다. 2010년에는 천연재료와 화이트 체다 치즈를 더해 만든 치토스 화이트 체다 치즈를 출시했다. 화이트 체다 치즈 치토스는 인공 향료나 색소 없이 좋은 재료만 사용하는 심플리 브랜드와 콜라보 형태로 출시되고 있다.
현재는 바삭바삭한 크런치군, 부드러운 퍼프군, 팝콘군, 치즈 풍미가 담긴 맥앤치즈군, 매콤한 프라밍핫군, 구운 옥수수군, 감자가 만난 판타지스군, 건강한 심플리군, 구운 베이크군 등 여러 제품군으로 나뉘어 30여 종이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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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황주하 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