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인스타 버거킹부터 버거킹까지, 버거킹의 역사 |밸류체인타임스

황주하 인재기자
20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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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황주하 인재기자] 1952년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에 매튜 번즈라는 남성이 살고 있었다. 매튜 번즈는 플로리다 데이투나 비치에서 드라이브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매튜 번즈는 캘리포니아 샌 버나티오에 대박난 레스토랑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곳은 맥도날드 형제가 운영하는 맥도날드 레스토랑이었다.


매튜 번즈는 조카의 남편 케이스 크래머와 캘리포니아 샌 버나디오에 있는 맥도날드 레스토랑을 방문한다. 그리고 매튜 번즈와 케이스 크래머는 자신도 패스트푸드 사업을 하면 잘 될 거라는 확신을 얻게 된다. 그 당시 조지리드는 12장의 고기를 한 번에 구울 수 있는 그릴 인스타 브로일러를 발명해 구매자를 찾았는데 매튜 번즈와 케이스 크래머는 조지리드를 만나 인스타 브로일러를 구입했다.


플로리다 주 잭슨빌, 인스타 버거킹 탄생하다

1953년 7월 28일, 플로리다 주 잭슨빌에 인스타 버거킹을 오픈한다. 인스타버거킹은 인스타 브로일러의 이름을 따 지은 이름이었다. 그래서 간판 중간에 인스타를 배치했다. 매튜번즈와 케이스 크래머는 햄버거를 15센트에 팔고, 프렌치프라이와 청량음료, 디저트 등을 사이드 메뉴로 구성했다.


출처=unsplash

1954년 3월 1일,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 인스타 버거킹 첫 가맹점이 세워진다. 식당을 오픈한 사람은 데이비드 애드거턴이다. 데이비드 애드거턴은 하위드 존스 레스토랑 매니저로 일하다가 자신만의 사업을 하기 위해 인스타 버거킹을 선택한다. 1954년 6월 1일, 데이비드 애드거턴은 친구 제임스 맥라모어에게 동업을 제안한다.


마이애미 버거킹 코퍼레이션을 설립해 마이애미 여러 지역에 인스타 버거킹 매장을 운영한다. 이들도 패티를 굽기 위해 인스타 브로일러를 사용했는데 인스타 브로일러는 틈만 나면 고장이 났다. 그래서 제임스와 데이비드는 직접 패티를 굽는 기계를 만들어 버린다. 바로 프레임 브로일러였다. 직화 그릴에 구워진 패티는 육즙이 살아있고, 불 맛도 나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었다.


출처=flickr


인스타를 제외하고 온전한 버거킹이 되다

인스타 브로일러를 사용하지 않아 자신들의 레스토랑에서 인스타를 빼고 버거킹으로 변경한다. 이때 햄버거의 가격은 19센트였다. 1957년 제임스와 데이비드는 플로리다 주 게인즈 빌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서 커다란 햄버거를 팔아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도 커다란 햄버거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고기 패티를 110g으로 늘리고 햄버거빵, 양상추, 토마토, 피클, 양파, 케첩, 마요네즈를 구성한다.

출처=unsplash


‘와퍼'를 먹기 위해 와퍼의 집을 찾다

엄청난 크기의 햄버거는 엄청난 것이란 의미의 와퍼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와퍼는 37센트로 판매된다. 불 맛이 나는 햄버거가 커져 가격이 2배 정도 비싸졌어도 수많은 사람들이 와퍼를 먹기 위해 버거킹을 찾아온다. 1958년, 제임스와 데이비드는 버거킹을 와퍼의 집(home of the whopper)이라고 홍보한다.


그런데 최초로 인스타 버거킹을 오픈한 매튜번즈와 케이스 크래머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시달리던 그들은 제임스와 데이비드에게 인스타 버거킹에 관련된 모든 사업권을 매각해버리게 된다. 1959년, 제임스와 데이비드는 모든 매장의 이름을 버거킹으로 바꾼다. 1960년부터 버거킹은 티비 광고를 활용해 와퍼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버거킹, 미국 전역에 확산되다

1961년, 제임스와 데이비드는 미국 전역으로 가맹점을 늘리기 시작했다. 버거킹은 가맹 사업에 대한 계약을 맺고 점주가 자유롭게 가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1963년 버거킹은 미국 자치령인 푸에르토리코에 첫 가맹점을 오픈해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1963년 푸에르토리코에서 근무하던 루이스 아레나스 페레즈는 와퍼에 사용되던 빵을 만들던 중 이스트를 다 쓰고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일반 햄버거 빵을 사용해 와퍼 레시피를 적용해 작은 와퍼를 만들게 된다. 이 햄버거에 이름을 붙여서 팔기 위해 와퍼 주니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된다. 이것이 좋은 아이디어로 채택되어 전 매장에 퍼지게 된다.


덕분에 루이스 아레나스 페레즈는 푸에르토리코 버거킹의 모회사인 캐리비안 레스토랑의 사장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제임스와 데이비드의 가맹점이 점차 늘어 1967년에는 전체 가맹점 수가 274개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제임스와 데이비드가 감당하긴 너무 많은 가맹점이었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필스버리 컴퍼니에 버거킹을 매각하다

1967년, 제임스와 데이비드는 버거킹 코퍼레이션을 필스버리 컴퍼니에 1억 8,000만 달러를 받고 팔아버리게 된다. 버거킹을 인수한 필스버리 컴퍼니는 매장관리가 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맹점들을 살펴보았다.

출처=unsplash

가장 큰 문제는 매점마다 점주가 자유롭게 운영하게 한 것이었다. 제임스와 데이비드처럼 자유롭게 레시피를 만들고 확장시켰던 것과 같이 버거킹의 가맹사업을 하며 자유롭게 자신들의 브랜드를 만들던 사람들이 있었다. 


300개의 프랜차이즈를 늘리다

루이지애나 주에서 차트하우스라는 회사를 세워 버거킹 가맹점을 운영하던 빌리 트로터와 지미 트로터 형제였다. 이 형제는 1963년 루이지애나 주에 최초로 버거킹 가맹점을 오픈하고 자체적으로 프랜차이즈 관리 방법을 개발해 운영했다. 1970년까지 300개의 가맹점을 늘렸다.


트로터 형제는 버거킹 가맹 계약을 맺어 사업권을 얻어내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또 다른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했다. 그리고 트로터 형제는 버거킹으로부터 차트하우스를 독립시키기 위해 1973년 1억 달러에 버거킹을 인수하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필스버리 컴퍼니는 이 제안을 거절한다. 


버거킹, 신제품 출시로 매출을 15%나 상승시키다

1978년, 필스버리 컴퍼니는 버거킹의 전반적인 관리 체계를 개편하기 위해 맥도날드의 임원이던 도널드 스미스를 영입한다. 스미스는 시장조사를 하게 된다. 그 결과 18세에서 34세 연령층은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이 출시된다면 지출하겠다고 답변한다. 그래서 스페셜티 샌드위치 라인을 출시한다. 버거킹은 신메뉴 덕분에 1979년 매출이 15% 증가한다.

출처=unsplash

버거킹, 그랜드 메트로폴리탄에 인수되다

1980년, 도널드 스미스는 펩시코로 이직한다. 1980년대 후반, 비만이 사회적 문제로 주목받으며 버거킹의 매출이 급격하게 감소되고 필스버리 경영이 악화되자 그랜드 메트로폴리탄에 인수된다. 2002년 TPG 캐피털, 2010년에는 브라질 사모펀드 3G캐피탈에 인수되어 지금에 이르게 된다. 2021년 4월 25일 기준, 버거킹의 매장은 1만 8,800개다.


호주, 버거킹 아닌 헝그리 잭스로 운영되다

호주에서는 버거킹이 아닌 헝그리 잭스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버거킹이 호주에 진출한 1971년 당시 이미 버거킹이란 레스토랑이 상표를 등록해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스버리 소유 팬케이크 분말 브랜드 헝그리 잭이라는 이름을 따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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