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체인타임스=황주하 인재기자] 제인구달은 1934년 영국 런던 북서부에 위치한 햄스테드에서 태어났다. 제인구달의 아버지는 전화선 공사를 하는 회사에서 일했으며, 자동차 경주 선수로도 활동했다.
제인구달은 어릴 적부터 동물에 관심이 많았다. 1935년 제인구달의 첫 번째 생일 제인구달의 아버지는 침팬지 인형을 선물해 ‘주빌리’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제인구달이 2살 때 땅을 파서 지렁이를 한 줌 집어 집에 가지고 들어와 지렁이들과 침대에 사이좋게 누워있었다.
출처=denstoredanske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하며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됐다. 제인구달과 가족들은 폭격이 있을 때마다 주방 옆 대피소로 피신했다. 전쟁으로 인해 긴 시간 떨어져 지낸 제인구달의 부모님은 제인구달이 열두 살일 때 이혼했다.
제인구달의 꿈은 아프리카에 가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동물들과 말을 하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인 <돌리틀 선생이야기>, <타잔>과 같은 책을 무척 좋아해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1953년 제인구달은 런던에 있는 퀸스 비서 학교에 들어갔다. 비서라는 직업은 전 세계를 돌아다닐 수도 있고 아프리카에 갈 수도 있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unsplash
비서 학교를 마친 제인구달은 이모가 근무하던 병원에서도 일해보고 옥스퍼드 대학의 행정실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곧 영화 제작 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 클로에게 "제인, 우리 부모님께서 케냐에 농장을 구입하셨어, 와서 몇 달 머물러 가지 않겠니?"라고 편지가 왔다.
제인구달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몇 개월 동안 일하며 비행기표를 구했다. 1957년 3월 아프리카 서쪽 해안을 따라 멀리 돌아서 케냐로 이동했다. 제인구달은 케냐로 가며 항구 네 곳을 들렸다. 1947년 4월 케냐의 몸바사 항구에 도착했다. 제인구달은 한나절 기차를 타고 나이로비로 향했다.
제인구달은 농장 근처를 탐험하고 동물들을 관찰하며 케냐에서의 시간을 즐겼다. 제인구달은 나이로비에 있는 건축회사에서 일하게 됐다. 제인구달은 틈나는 대로 동물들을 관찰하고 동물에 관한 책을 읽었다. 제인구달은 친구들에게 ‘루이스 리키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루이스 리키는 나이로비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에서 화석을 발굴에 이를 기본으로 인류의 친화과정을 연구하는 인류학자였다. 1957년 5월 제인구달은 코린돈박물관(케냐국립박물관)에서 루이스 리키를 만난다. 루이스 리키는 제인구달에게 루이스 리키 밑에서 일하던 조수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제인구달은 바로 승낙한다.
그리고 얼마 뒤 제인에 열정과 실력에 감탄해 루이스 리키가 제인구달은 제자로 받아들인다. 루이스 리키 박사는 탄자니아 지역에 사는 유인원(침팬지, 고릴라 등) 연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때 루이스 리키 박사는 직접 연구에 참여할 수 없어 제인구달이 유인원 연구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출처=storenorskel
1970년 7월, 제인구달은 조수인 엄마와 함께 아프리카 곰베로 출발했다. 제인구달은 카사켈라라는 지역에 캠프를 설치했다. 제인구달은 두 번째로 침팬지와 마주친 지점을 피크라고 불렀다. 피크에 나타나는 침팬지 무리는 50마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인구달은 침팬지를 구별할 수 있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1960년 10월, 제인구달은 침팬지들이 새끼 돼지를 먹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그때까지 침팬지는 채식동물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침팬지가 육식도 한다”라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다.
침팬지가 육식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2주 뒤 11월 초 제인은 침팬지가 풀잎을 흰개미집에 넣었다가 빼 개미를 먹는 것을 보고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제인구달의 연구성과가 알려져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연구 지원금을 대주겠다고 했다. 한편 제인구달의 어머니는 제인구달이 곰베에 자리를 잡자 영국으로 돌아갔다.
1964년 3월 28일, 제인구달은 곰베에 사진작가로 와있었던 라윅과 결혼한다. 제인구달은 제인구달에게 지원해 주던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연구센터 설립을 제안해 1965년 곰베 강 연구센터가 문을 연다. 1965년 라윅이 촬영한 미스구달과 야생 침팬지가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자 제인구달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1966년 제인구달은 학사를 거치지 않고 동물 행동 연구로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다. 1967년 제인구달의 첫 번째 저서 <내 친구 야생 침팬지>를 출간한다. 제인구달은 아들의 이름을 남편 라윅, 외삼촌 에릭, 루이스 리키 박사의 이름을 넣어 ‘휴고 에릭 루이스 반 라윅’이라고 지었다.
제인구달이 곰베에 있을 때 1966년 여러 마리의 침팬지가 소아마비로 죽어가자 제인구달은 루이스 리키에게 요청해 바나나에 백신을 넣어 나눠주었다. 라윅은 촬영 때문에 곰베를 떠나있는 시간이 많았고, 제인구달도 곰베와 제인구달이 유명해져 곰베를 떠나있는 시간이 많아 두 사람은 헤어졌다.
출처=UNSPLASH
제인구달의 연구소는 원주민들에게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커피콩을 재배하도록 지원했다. 커피콩을 재배하기 위해 숲이 확장되어 침팬지의 서식지도 보호받았다. 커피콩은 곰베지역의 주 수입원이 되어 현재 연간 400톤이나 판매되고 있다. 제인구달은 1995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 허바드 상을 받았다.
2002년에는 국제 연합 UN 평화 특사로 임명됐다. 2003년 영국 여왕에게로부터 대영제국의 직위를 받았다. 제인구달은 1년에 300일 이상을 전 세계로 돌아다니며 일정을 소화해가고 있다. 2012년 11월 14일 제인 구달은 한국을 방문해, 불법 포획된 돌고래 제돌이를 방사하는 서울대공원 활동을 지지했다.
(2013년~2024년까지 연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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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황주하 인재기자]
[밸류체인타임스=황주하 인재기자] 제인구달은 1934년 영국 런던 북서부에 위치한 햄스테드에서 태어났다. 제인구달의 아버지는 전화선 공사를 하는 회사에서 일했으며, 자동차 경주 선수로도 활동했다.
제인구달은 어릴 적부터 동물에 관심이 많았다. 1935년 제인구달의 첫 번째 생일 제인구달의 아버지는 침팬지 인형을 선물해 ‘주빌리’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제인구달이 2살 때 땅을 파서 지렁이를 한 줌 집어 집에 가지고 들어와 지렁이들과 침대에 사이좋게 누워있었다.
출처=denstoredanske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하며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됐다. 제인구달과 가족들은 폭격이 있을 때마다 주방 옆 대피소로 피신했다. 전쟁으로 인해 긴 시간 떨어져 지낸 제인구달의 부모님은 제인구달이 열두 살일 때 이혼했다.
제인구달의 꿈은 아프리카에 가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동물들과 말을 하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인 <돌리틀 선생이야기>, <타잔>과 같은 책을 무척 좋아해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1953년 제인구달은 런던에 있는 퀸스 비서 학교에 들어갔다. 비서라는 직업은 전 세계를 돌아다닐 수도 있고 아프리카에 갈 수도 있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unsplash
비서 학교를 마친 제인구달은 이모가 근무하던 병원에서도 일해보고 옥스퍼드 대학의 행정실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곧 영화 제작 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그러던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 클로에게 "제인, 우리 부모님께서 케냐에 농장을 구입하셨어, 와서 몇 달 머물러 가지 않겠니?"라고 편지가 왔다.
제인구달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몇 개월 동안 일하며 비행기표를 구했다. 1957년 3월 아프리카 서쪽 해안을 따라 멀리 돌아서 케냐로 이동했다. 제인구달은 케냐로 가며 항구 네 곳을 들렸다. 1947년 4월 케냐의 몸바사 항구에 도착했다. 제인구달은 한나절 기차를 타고 나이로비로 향했다.
제인구달은 농장 근처를 탐험하고 동물들을 관찰하며 케냐에서의 시간을 즐겼다. 제인구달은 나이로비에 있는 건축회사에서 일하게 됐다. 제인구달은 틈나는 대로 동물들을 관찰하고 동물에 관한 책을 읽었다. 제인구달은 친구들에게 ‘루이스 리키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루이스 리키는 나이로비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에서 화석을 발굴에 이를 기본으로 인류의 친화과정을 연구하는 인류학자였다. 1957년 5월 제인구달은 코린돈박물관(케냐국립박물관)에서 루이스 리키를 만난다. 루이스 리키는 제인구달에게 루이스 리키 밑에서 일하던 조수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제인구달은 바로 승낙한다.
그리고 얼마 뒤 제인에 열정과 실력에 감탄해 루이스 리키가 제인구달은 제자로 받아들인다. 루이스 리키 박사는 탄자니아 지역에 사는 유인원(침팬지, 고릴라 등) 연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때 루이스 리키 박사는 직접 연구에 참여할 수 없어 제인구달이 유인원 연구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출처=storenorskel
1970년 7월, 제인구달은 조수인 엄마와 함께 아프리카 곰베로 출발했다. 제인구달은 카사켈라라는 지역에 캠프를 설치했다. 제인구달은 두 번째로 침팬지와 마주친 지점을 피크라고 불렀다. 피크에 나타나는 침팬지 무리는 50마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인구달은 침팬지를 구별할 수 있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1960년 10월, 제인구달은 침팬지들이 새끼 돼지를 먹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그때까지 침팬지는 채식동물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침팬지가 육식도 한다”라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다.
침팬지가 육식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2주 뒤 11월 초 제인은 침팬지가 풀잎을 흰개미집에 넣었다가 빼 개미를 먹는 것을 보고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제인구달의 연구성과가 알려져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연구 지원금을 대주겠다고 했다. 한편 제인구달의 어머니는 제인구달이 곰베에 자리를 잡자 영국으로 돌아갔다.
1964년 3월 28일, 제인구달은 곰베에 사진작가로 와있었던 라윅과 결혼한다. 제인구달은 제인구달에게 지원해 주던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연구센터 설립을 제안해 1965년 곰베 강 연구센터가 문을 연다. 1965년 라윅이 촬영한 미스구달과 야생 침팬지가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자 제인구달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1966년 제인구달은 학사를 거치지 않고 동물 행동 연구로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다. 1967년 제인구달의 첫 번째 저서 <내 친구 야생 침팬지>를 출간한다. 제인구달은 아들의 이름을 남편 라윅, 외삼촌 에릭, 루이스 리키 박사의 이름을 넣어 ‘휴고 에릭 루이스 반 라윅’이라고 지었다.
제인구달이 곰베에 있을 때 1966년 여러 마리의 침팬지가 소아마비로 죽어가자 제인구달은 루이스 리키에게 요청해 바나나에 백신을 넣어 나눠주었다. 라윅은 촬영 때문에 곰베를 떠나있는 시간이 많았고, 제인구달도 곰베와 제인구달이 유명해져 곰베를 떠나있는 시간이 많아 두 사람은 헤어졌다.
출처=UNSPLASH
제인구달의 연구소는 원주민들에게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커피콩을 재배하도록 지원했다. 커피콩을 재배하기 위해 숲이 확장되어 침팬지의 서식지도 보호받았다. 커피콩은 곰베지역의 주 수입원이 되어 현재 연간 400톤이나 판매되고 있다. 제인구달은 1995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 허바드 상을 받았다.
2002년에는 국제 연합 UN 평화 특사로 임명됐다. 2003년 영국 여왕에게로부터 대영제국의 직위를 받았다. 제인구달은 1년에 300일 이상을 전 세계로 돌아다니며 일정을 소화해가고 있다. 2012년 11월 14일 제인 구달은 한국을 방문해, 불법 포획된 돌고래 제돌이를 방사하는 서울대공원 활동을 지지했다.
(2013년~2024년까지 연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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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황주하 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