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험난했던 그의 인생스토리 | 밸류체인타임스

김시원 인재기자
2023-11-11
조회수 13790

[밸류체인타임스=김시원 수습기자] 1985년 2월 5일 포르투갈 마데이라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태어났다. 그러나 호날두의 어머니는 호날두에 대해 유산을 시도할 정도로 집은 매우 가난했다. 호날두의 어머님은 청소부일을 하며 여섯 식구의 생활비를 감당했다. 호날두의 아버지는 심각한 알콜중독자였다.


호날두는 클럽 안도리냐에서부터 축구를 시작하며 아픈 시련과 스트레스를 축구로 풀며 항상 축구를 사랑했었다. 이어 또래들은 호날두의 아버지가 유니폼을 세탁한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았지만 호날두는 또래들의 놀림을 무시하며 축구의 대한 꿈을 계속해서 쫓았다.


호날두는 매번 안도리나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남들보다 좋은 재능을 보여주었고, 마데이라의 스타가 됐다. 호날두는 “어릴 적 상대는 누구든 상관없으며 지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라고 말했다. 호날두의 소문은 포르투갈의 본토까지 퍼졌으며, 스포르팅과 계약을 해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으로 12살에 비행기를 타고 자신의 고향을 떠나보냈다.


호날두는 리스본의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호날두는 또래들에게 억양이 다르다며 놀림받았고 심지어 학교선생님도 호날두의 말투로 놀렸다. 호날두는 화가 나 의자를 던졌고, 이로 인해 퇴학까지 당했다. 더군다나 15살에 심장에 문제가 생겨 심장수술을 받게 됐다. 


호날두는 매일 고달프고 힘든 생활에 밤마다 울며 축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호날두의 아버지는 “이게 네가 원하던 거잖아. 도전해 보렴. 어떻게 되는지 보자꾸나. 쉽지 않은 걸 알고 있잖니”라며 호날두의 꿈을 응원해 주었다. 그 후, 호날두는 자신이 성취한 것의 이상을 원하며 피나는 노력과 자신에게 온 기회를 항상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호날두는 불과 16살이라는 나이로 1군에 참여하며 주전으로 뛰게 되었다. 눈에 띄는 활약으로 스포르팅 최고의 선수가 되었다. 어느 날 호날두의 인생을 바꿔줄 기회가 왔다.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였다. 호날두는 마치 퍼거슨 감독에게 자신의 재능을 보란 듯이 폭발적인 활약을 했고 퍼거슨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출처:Flickr


이후 호날두는 1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잉글랜드의 최강의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됐다. 이적이 확정되자마자 호날두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이제 더 이상 일 안 하셔도 돼요”라고 말했다. 이후 퍼거슨 감독은 호날두에게 7번이라는 번호를 주는 이례적인 결정을 했다.


호날두는 너무 자신에게 부담감을 주는 듯한 번호를 주어 다른 번호를 원했지만 퍼거슨의 마음은 달랐다. 호날두의 데뷔전에서 퍼거슨의 마음 뜻대로 호날두는 PK를 유도하며 좋은 데뷔전을 치르게 되었다. 이로 인해 맨유의 팬들은 호날두를 향한 마음이 불타올랐다.


물론 호날두는 데뷔 초 비판을 받았다. 팀플레이를 하지 않고, 너무 개인 플레이를 한다는 등 지적을 받았다.. 이로 인해 호날두는 맨유의 고참 선수들과 갈등이 있었고, 과도한 액션이 섞여 일부 팬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호날두를 늘 챙겨주는 것은 바로 맨유의 감독 퍼거슨이었다. 항상 퍼거슨은 호날두를 변호해 주었고 감싸주었다. 호날두는 매일 남들보다 제일 빠르게 훈련에 참여했고, 제일 늦게 떠나는 훈련생활을 반복했다. 그 후 호날두는 무서운 성장세를 보여주며 팀에서 매경기마다 좋은 활약을 했다.


그렇게 점점 날이 갈수록 모든 비판을 잠재웠고, 자신이 왜 맨유의 7번인지를 증명해나갔다. 호날두는 항상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기를 원했다. 그렇게 첫 FA컵 트로피를 가져가게 되었다. 하지만 호날두의 인생의 2번째 시련이 찾아오게 된다.


호날두가 20살이 될 무렵 2005년 9월 6일 호날두의 아버지가 사망했다. 호날두는 이 이야기를 월드컵 예선 경기 전날, 국가 대표팀에서 듣게 됐다. 그래서 국가대표 감독, 코치들은 원하면 경기에 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호날두는 자신의 꿈에 대한 집념을 강하게 표출하며, 경기에 임했다.


호날두는 그렇게 경기를 마치고 아버지의 장례식으로 향했다. 호날두는 아버지와 대화를 많이 해보지 못했고, 깊은 대화를 해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보다 호날두는 더 슬픈 일이 있었다. 자신의 성공을 지켜보시지 못한 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버렸다는 사실이었다.


호날두는 점점 다가오는 첫 월드컵에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버지에게 바치는 월드컵을 시작했다. 호날두는 월드컵 8강전 잉글랜드와 경기에서 논란이 발생했다. 호날두는 클럽팀 동료 루니에게 퇴장 유도를 하여 퇴장시키고 이어 누군가에게 윙크를 날렸다.

출처Flickr


그렇게 포르투갈은 잉글랜드를 꺾고 4강에 진출하게 됐다. 호날두는 아버지를 향한 세리머니를 날렸다. 호날두의 세리머니는 누군가에게는 감동적이었지만 잉글랜드의 팬들은 호날두를 향해 분노했다. 그렇게 호날두는 잉글랜드에게 좋지 않은 인식을 심겨주었다.


호날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잉글랜드의 모든 언론들은 호날두를 계속해서 비판했다. 심지어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 하지만 호날두에겐 항상 든든한 사람 퍼거슨이 있었다. 퍼거슨은 호날두를 격려하며 안심시켰다. 역시 예상대로 클럽팀에서 호날두가 공을 잡을 때마다 팬들에게서 야유를 당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호날두가 더 강하게 된 계기가 됐다.


호날두는 경기에만 집중하기로 결심했고, 추가로 5년 재계약을 하며 자신의 굳게 다져진 마음을 흔들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후 호날두는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 지난 시즌 2배에 달하는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고, 야유를 환호성으로 바꿔버리는 엄청난 성과를 보여줬다.


또 다음 시즌 호날두의 전매특허 무회전 프리킥을 보여주며, 42골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그렇게 맨유는 4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2번 연속으로 리그 우승 타이틀을 탈환해냈다. 그렇게 호날두는 2008년 첼시VS맨유 첫 챔피스언리그 결승전으로 향하게 됐다다.


양 팀은 치열한 싸움 끝에 승부차기까지 향했고, 첼시의 주장 존 테리가 실축했다. 맨유는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하며 세계 정상에 등극하는 엄청난 커리어를 보여줬다. 그렇게 호날두는 역사를 썼다. 두 대회를 우승하며 파괴적인 활약을 보여준 호날두는 자신이 되고자 했던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나게 되며 발롱도르를 수상하게 됐다.

출처:Flickr


그렇게 전 세계는 호날두에게 열광하며 7번은 호날두를 상징하는 번호가 됐. 그렇게 호날두는 22살의 나이에 유럽 정상에 오르게 됐다. 결국 맨유는 스타성이 폭발하는 호날두를 보호해 줄 수 없었고 호날두는 지난 6년을 같이 보낸 맨유를 떠나보냈다.


약 1300억 원으로 스페인의 명문 구단 레알마드리드로 떠나게 됐다. 그렇게 호날두의 입단식을 보러 레알마드리드의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에 약 8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렇게 호날두는 공식적으로 레알마드리드의 선수가 됐고, 할라 마드리드를 외치며 입단식을 마쳤다.


호날두는 인터뷰에서 “새 시즌이 시작되면 최선을 다하며 뛰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호날두는 새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맨유에 있었을 때보다 더 좋은 골 감각능력으로 두 시즌 만에 88골을 넣어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호날두에게 3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팬들은 그토록 원하던 것이 있었다. 바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다.


레알마드리드는 옛날부터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매번 가져가며 챔피언스리그의 우승은 당연한 것이었다. 호날두의 계속되는 챔피언스 리그 부진에 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레알마드리드의 최고의 라이벌인 바르셀로나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모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 후 바르셀로나의 경기에서 5 대 0의 엄청난 격차로 패배하여 메시의 4연속 발롱도르를 보기만 해야 했다. 이어 언론과 기사에서는 호날두의 사생활을 파헤쳐 보며 호날두의 일상을 매번 방해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한 일을 벌이기도 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심지어 제프 블래터 피파 회장은 공개된 석상에서 메시와 호날두를 비교하며 호날두를 조롱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 호날두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계기가 됐다. 호날두는 엄청난 훈련과 혹독한 관리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결국 호날두를 비판하는 것들은 호날두의 자극제가 돼 버렸다.


호날두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든지 상관없다고 말한다. 한 시즌에만 60골을 넣어 엄청나게 각성한 모습을 보여주며 호날두는 그해 가장 많은 득점을 한 선수로 등극했다. 한순간에 골망을 가르는 중거리슛과 긴 체공 시간, 손을 제외한 신체부위로 골을 넣어 2시즌에 106골을 득점하며 괴물 같은 성장을 증명해냈다. 


더불어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매번 승리를 해 득점을 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11경기 17골을 기록하는 엄청난 성과를 냈다. 그렇게 호날두는 레알마드리드에게 10번째 챔피언스리그 트로피 라 데시마를 안겨주게 됐다. 2년 연속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다시 한 번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다.


출처:Wikimedia Commons 


하지만 기쁨은 잠시, 호날두는 4번째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월드컵을 한 달 앞둔 상황에서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하게 됐다. 2004년 유로에서 호날두는 결승전에서 아쉽게 패배하여 조국에게 트로피를 주지 못한 채 뜨거운 눈물을 삼키게 되었다. 그렇게 호날두는 조국에게 우승컵을 선물하는 것이 꿈이 되었다.


호날두는 그렇게 부상을 무시한 채 월드컵을 출전했지만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또다시 포르투갈이 탈락하게 됐다. 그 후 무릎 부상은 호날두에게 독이 됐고, 리그에게도 피해를 주었다. 호날두는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슬프다고 말했다.


그렇게 호날두는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할 때마다 레알의 팬들이 야유를 하며 호날두를 비판했다. 그렇게 호날두는 인터뷰를 통해 야유를 멈춰달라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호날두가 경기를 하던 중 하늘 위에 떠 있던 문장은 보게 된다.


그 문장은 "집으로 돌아와. 호날두"였다. 그 문장을 보낸 사람은 맨유의 팬이었다. 하지만 호날두는 마음을 더욱더 굳게 다짐하고 야유를 환호성으로 바꾸게 만들기로 결심하게 된다. 2015년 펼쳐진 호날두의 챔피언스리그 8강전은 호날두의 독무대였다.


호날두는 8강전 1차전에서 2골 차로 패배를 당했지만 2차전에 폭발적인 활약으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팀을 4강으로 이끌며 또다시 야유를 환호성으로 바꾸었다. 그렇게 레알마드리드는 1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또다시 기록하며 라 운데시마 트로피를 거머쥐게 됐다.


출처:Wikimedia Commons 


그 후 2016 유로 결승전에서 호날두는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경기에 참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동료들이 있었다. 에데르가 극적인 중거리슛으로 프랑스의 골망을 갈라 2016 유로를 우승했다. 호날두는 2004년 조국에게 트로피 주는 꿈을 2016년에 이루게 되었다.


그렇게 레알마드리드는 이후 2017년과 2018년에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하게 됐다. 역사상 최초로 챔스 3연패를 기록하게 된다. 그 우승에는 호날두가 중심에 있었고, 그 후 6년 연속 챔스 득점왕을 차지하고, 챔스 역사상 최다골,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사람들은 그를 ‘챔스의 신’이라고 불렀다.


이후 호날두는 유벤투스로 이적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돌아왔다. 호날두는 어릴 적 가난했던 형편을 무시하고, 항상 피나는 노력으로 최고가 되고자 했다. 끝없이 자신을 깎아내리는 신들의 전쟁에서 피눈물 나는 꿈을 이루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두스 산투스 아베이루라는 이름으로 세계 최고의 정상에 올랐다. 유럽에서의 그의 기록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끝나게 된다.


출처: Devian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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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김시원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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