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레스토랑에서 그릇을 닦던 소년, 지금은 공격수들의 벽이 된 수비왕 버질 반다이크(Virgil van Dijk) | 밸류체인타임스

최한성 수습기자
2023-11-07
조회수 11107

[밸류체인타임스=최한성 수습기자] 최고의 수비왕 반다이크는 1991년 7월 8일 네덜란드 노르트브라반트주 브레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네덜란드 출신이고, 어머니는 남아메리카수리남 출신이다. 어린 시절의 반다이크는 유난히 작았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컸다.


반다이크는 길거리 어떤 장소든 공이 있는 곳이라면 항상 행복해 했고, TV속 호나우지뉴를 보며 축구선수의 꿈을 키워나갔다. 축구는 브레다 클럽의 유스에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느리고 작았던 반다이크는 새로운 환경과 코치에 적응하기 힘들어 했다.


반다이크는 브레다가 아닌 빌렘II의 입단테스트를 받으러 갔다. 반다이크는 이내 합격했고, 수비수로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반다이크를 빌렘으로 이끈 것은 아버지였고, 당시 반다이크의 나이는 만 6살이었다. 이후 반다이크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반다이크가 12살이던 2003년 이혼을 했다.


반다이크의 어머니가 반다이크를 비롯해 3명의 자녀를 키우게 됐다. 아버지에게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된 반다이크는 이후 자신의 유니폼에 반다이크 대신 버질을 새기고 뛰기 시작했다. 빌렘 시절 반다이크는 센터백으로 나설만큼 큰 키가 아니었기 때문에 풀백으로 뛰었고 이마저도 발이 느렸다.


반다이크는 주전으로 나서기 힘들었다. 게다가 넉넉치 못한 집안 사정 때문에 레스토랑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반다이크는 17살 무렵 갑자기 키가 18cm나 커지면서 축구인생이 크게 변화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신체 변화로 무릎연골쪽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만 커진 몸집으로 인해 센터백으로 나설 수 있게 됐다.


반다이크는 빌렘에서 뛰어난 슈퍼수비수 사미 히피아의 4번을 새긴 후 몸싸움과 스피드, 공격까지 갖춘 만능 수비수로 성장했다. 2010년 반다이크는 고향을 떠나 흐로닝언 유스로 이적하게 된다. 빌렘 시절 상대의 공을 빼앗는 천부적인 능력을 발휘했지만 빌렘은 프로 계약에 난색을 표했고 흐로닝언이 바로 손을 내밀었다.

                                                                                                                                  (출처=Ailura)

반다이크는 흐로닝언 유스에서 1년 만에 성인팀으로 올라섰고, 2011년 5월 1일 네덜란드 리그에 데뷔했다. 반다이크는 5월 29일 덴 하그와의 유로파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첫 풀타임을 소화했고, 2골 1어시를 기록했다. 1차전 1-5로 대패했기 때문에 사실상 2차전은 희망이 없었지만 반다이크의 맹활략으로 흐로닝언은 극적인 유로파 진출권을 따내게 됐다.


2011-2012 시즌 반다이크는 흐로닝언에서 석현준과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흐로닝언의 돌풍을 이끌었다. 하지만 시즌 막바지 맹장이 터졌다. 홀로 살면서 온갖 좋지 않은 음식을 섭취했던 반다이크는 맹장수술 이후 영양조절과 몸관리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흐로닝언 시절 반다이크의 몸놀림을 지켜본 사람은 셀틱의 닐 레논 감독이었다. 기성용을 지도했던 닐 레논 감독은 반다이크를 노리는 팀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다이크는 수비진에서 튀어나와 몇십 미터 멀리있는 윙어에게 패스하는 시야와 킥에 매료됐다.


당시 닐 레논 감독은 네덜란드 리그 득점 선두였던 윌브레드 보니를 막는 모습에 확신까지 들었다. 반다이크는 이 당시 리그 내 다른 빅클럽으로 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빅클럽들은 이미 다른 선수를 영입하거나 수비수가 완벽해 선수를 영입할 마음이 없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일부 팬들은 셀틱행을 만류했지만 반다이크는 영국축구에 대한 매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닐 레논 감독은 당시 이적료를 한화로 39억 원을 주고, 반다이크를 2012년 여름 전격 영입했다. 너무 저렴하게 영입을 했기 때문에 감독은 쾌재를 불렀지만 반다이크를 오랜 시간동안 데리고 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다.


셀틱으로 반다이크가 합류하고 훈련 첫날 닐 레논 감독은 반다이크에게 "당신은 오래 못 있을 것 같으니 즐겨라"라고 말했다. 영입된 선수에게 굉장히 충격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반다이크는 셀틱으로 이적하자마자 단숨에 주전자리를 차지했고, 리그 베스트11에 오르는 대활약을 펼쳤다.


2013년 4월 당시 반다이크에 대한 축구 전문가들의 평가는 “유망주는 맞지만 14~20위권내”라고 말했다.마르틴스 인디, 데파이, 마르코 반 한켈이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던 시기였다. 하지만 반다이크는 셀틱에서 리오 퍼드난드를 연상케하는 모습으로 리그를 초토화시켰다.


셀틱이 리그 우승에 성공하자 반다이크의 이름이 서서히 전 유럽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다이크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바르사, 밀란, 유로파에서 인테르 등을 상대하면서 크게 성장했다. 로날드 쿠만 감독이 2015년 사우스햄튼의 지휘봉을 잡을 무렵 수비진에 반다이크 영입을 구상하고 있었다.


반다이크는 셀틱 수비의 핵심선수로 2014년 1256분 동안 팀이 지지 않는 역할에 큰 공헌을 했다. 올해의 스코틀랜드 리그 베스트에 2년 연속으로 선정되며 반다이크의 주가는 하늘을 찔렀다. 114경기에서 15골을 넣는 활약을 마친 반다이크는 아스널의 벵거감독이 강력하게 노리고 있었으나 반다이크의 선택은 사우스햄튼이었다.


                                                                                                                     (출처=Flickr)  

반다이크는 2015년 이적 시장 마지막날 한화 195억 원에 사우스햄튼의 수비수가 되었고 불과 한달 만에 주간 리그 베스트11에 선정되는 활약을 선보였다. 가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를 때도 있지만 거의 완성된 수비수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첫해 EPL 전체 선수 평점 5위, 수비수 한정 1위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이뤄냈다.


첫해 보여준 반다이크의 활약에 사우스햄튼은 흡족함을 드러내며 6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쿠만 감독은 반다이크에게 "퍼펙트"라는 찬사를 보냈고, 빠른 적응력으로 EPL 첫해 32경기에 출전했다. 하락 수준이었던 사우스햄튼을 리그 7위로 올려놓은 1등 공신 중 한 명이었다.


반다이크의 빅무대 검증까지 끝나자 리버풀, 맨유, 맨시티, 첼시까지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사우스햄튼 2년차에 접어든 반다이크의 활약을 여전했지만 팀의 공격이 신통치 않아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갔다. 그런 상황에도 반다이크의 활약은 여전했고, 빅클럽들의 영입설이 흘러나왔다.


리버풀은 당시 사우스햄튼의 클라인, 마네, 랄라나, 로브렌까지 영입해 사우스햄튼 전문 영입팀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반다이크 본인도 챔피언스리그 출전에 대한 야망을 숨기지 않았다. 사우스햄튼은 리버풀에게 반다이크를 팔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리버풀과 반다이크가 비밀리에 만났고, 이는 곧 들통이 났다


                                                                                                   (출처=Wikimedia Commons)

리버풀이 공식 사과를 했지만 이미 사우스햄튼 팬들 입장에선 배신감을 느끼는 상황이었다. 리버풀의 쿠티뉴가 옵션 포함 2000억 원 가까이에 바르사로 팔리자 클롭 감독은 반다이크 영입을 결심했다. 클롭의 추진력과 포부는 반다이크의 마음을 흔들었고, 결국 2018년 1월 1일 1080억 원에 반다이크 영입을 성공했다.


이는 축구 역사상 수비수 최고 이적료였다. 반다이크의 영입 후 캐러거는 "반다이크가 리버풀 수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라고 지적했다. 리그 후반기 합류한 반다이크는 초기적응에 호흡이 맞지 않아 비난받았지만 클롭 감독 전술에 적응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반다이크는 챔스 8강 맨시티전에서 두 경기동안 1실점만 내주는 철벽 수비를 선보였다. 비록 챔스 우승엔 실패했지만 반다이크는 리버풀 합류 4개월동안 팀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경기마다 1.2실점을 하던 리버풀이 반다이크로 인해 0.6실점으로 절반까지 떨어졌다.


반다이크는 16경기에서 9경기를 무실점에 기여했고, 이 기간 다른 어떤 팀보다 많은 수치였다. 로버트슨이나 아놀드의 활약도 무시할 순 없지만 중심축을 잡아준 것은 반다이크였다. 반다이크 본인이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뛰어넘어 수비진 전체 기량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2018-2019 시즌의 반다이크는 변함없는 활약으로 “세계 최고 수비수의 타이틀이 아깝지 않다”라는 평을 받게 됐고, EPL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2005년 존테리 이후 14년 만에 수비수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것이다. 한 시즌 동안 반다이크가 돌파를 허용한 횟수는 0개다.


2019-2020 시즌 리버풀의 수비는 다시 한 번 리그 최소 실점을 뽐내는 탄탄함을 자랑했고, 반다이크는 1~4위팀의 수비수 중 가장 많은 걷어내기 횟수를 기록했다. 로브렌, 조엘 마티프 등 파트너들이 부상과 기복을 타는 사이 반다이크는 팀 수비의 중심을 굳건히 지켜내며 리그 전 경기를 출전했다.


반다이크는 2020년 10월 17일 에버튼전에서 픽포드와 충돌 직후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당했고, 시즌 전체를 날릴 위기에 처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파비뉴가 센터백으로 내려오는 등 조치가 취해졌다. 이후 2021-2022 시즌에 다시 복귀했고 현재까지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napolion06)

옛날 레스토랑의 그릇을 닦던 소년이 지금은 공격수들의 벽이 된 버질 반다이크. 가족의 결별에도 자신의 꿈을 이어나간 점에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온맘다해 보여주며 팬들의 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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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최한성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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