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체인타임스=김혜선기자] 2022년 11월, 지인과 점심을 먹으러 가던 길이었다. 맞은편에서 오던 한 여성과 부딪혔고, 그녀의 핸드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액정이 깨졌다. 그런데 그녀의 일행 중 한명이 다짜고짜 내 잘못이라고 말했다. 쌍방과실도 아닌, 모든 책임을 내게 돌리는 말이었다.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지금 무슨 말을 하세요. 같이 부딪혔으면 쌍방이지 왜 우리가 잘못한 거죠?”
보다못한 지인분이 나섰다. 그쪽도 한발 앞으로 다가오며 맞서는 분위기였다. 감정적으로 대응해봐야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AS센터에서 확인을 받아보고 이야기를 하죠.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알아보고 연락주세요.”
우리는 서로 연락처를 저장하고 헤어졌다. 지인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해결방법을 물었다. 합의가 되지 않으면 결국 민사로 갈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일단 점심을 먹으며 불쾌한 감정을 흘려보냈다.
그날 저녁, 전화가 왔다. 당사자가 아닌 그녀의 남자 친구였다. 그는 통화 내내 내 잘못이라고 말했다. “같이 부딪혔는데 저만 잘못한건가요?”라는 상식적인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허탈했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막말을 한 것도 아닌데 정작 당사자가 아닌 남자친구를 내세워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이 아쉬웠다. 일단 가입한 보험의 일상생활 배상책임 특약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고 통화를 마쳤다.

[사진출처 unsplash]
다음 날, 그녀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다른 매장에서 견적을 받아보니 30만원이 나왔고 본인이 10만원을 부담하겠다고 했다. 보험처리는 시간이 걸리고 자신은 휴대폰을 빨리 사용하고 싶단다. 분명 내가 손해다. 쌍방과실이라면 반씩 부담이 맞고, 보험으로 처리할 수도 있으니까.
“엘리자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는걸요!”
[백영옥 저, 『빨강머리앤이 하는 말』 p. 22]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 문장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떤 선택이 좋은 걸까?’. 민사로 넘어가면 20만원으로 처리할 수 없는 영역으로 넘어갈 것이 분명했다. 나는 상대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했다. 20만원을 입금하고 커피쿠폰 두 장과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서로 의도한 건 아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네요.
휴대폰 수리 잘 받고 남자친구와 커피드세요.”
물론 나도 돈이 아깝고 속상하며 남자친구를 내세우는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일은 일어났다. 그 사건을 어떻게 남길지는 내 선택이었다. 원망이 올라오던 중, 문득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새로 구입한 휴대폰 액정이 깨져 속상한 마음으로 여러 대리점을 방문하여 견적 받고 속상해하는 모습 말이다. 그 모습이 떠오르자 마음이 평온해졌다.
사고는 우연히 시작됐지만 마무리는 아름답게 맺고 싶었다. 결국 선을 이루는 경험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일’로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이 사건은 내가 나를 기특하게 여기게 된 에피소드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뿌듯한 마무리로 남아 있고, 혹시라도 다시 그녀를 만나게 되어도 불편하거나 껄끄러운 감정 없이 인사할 수 있을 것 같다. 20만원으로 참 좋은 수업을 받았다. 만약 경찰서를 오가고 소송까지 갔으면 어땠을까. 상대를 얼마나 미워하고 증오하겠는가. 일이 커지기 전에 멈출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끝맺음을 잘하고 내가 누린 마음의 평안은 20만 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였다.
생각대로 되지 않은 일이 생각지도 못한 일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사람을 한 뼘 더 성장시킨다. 돌이켜보면 그 사건은 나를 힘들게 하려고 찾아온 일이 아니라, 나를 더 넓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찾아온 기회였다. 내게 온 레몬을 레모네이드로 만들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작은 생각으로 판단하고 속단하는 아집을 비워내는 작업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몇 년 후의 나는 또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그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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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김혜선기자] 2022년 11월, 지인과 점심을 먹으러 가던 길이었다. 맞은편에서 오던 한 여성과 부딪혔고, 그녀의 핸드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액정이 깨졌다. 그런데 그녀의 일행 중 한명이 다짜고짜 내 잘못이라고 말했다. 쌍방과실도 아닌, 모든 책임을 내게 돌리는 말이었다.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지금 무슨 말을 하세요. 같이 부딪혔으면 쌍방이지 왜 우리가 잘못한 거죠?”
보다못한 지인분이 나섰다. 그쪽도 한발 앞으로 다가오며 맞서는 분위기였다. 감정적으로 대응해봐야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AS센터에서 확인을 받아보고 이야기를 하죠.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알아보고 연락주세요.”
우리는 서로 연락처를 저장하고 헤어졌다. 지인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해결방법을 물었다. 합의가 되지 않으면 결국 민사로 갈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일단 점심을 먹으며 불쾌한 감정을 흘려보냈다.
그날 저녁, 전화가 왔다. 당사자가 아닌 그녀의 남자 친구였다. 그는 통화 내내 내 잘못이라고 말했다. “같이 부딪혔는데 저만 잘못한건가요?”라는 상식적인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허탈했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막말을 한 것도 아닌데 정작 당사자가 아닌 남자친구를 내세워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이 아쉬웠다. 일단 가입한 보험의 일상생활 배상책임 특약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고 통화를 마쳤다.
[사진출처 unsplash]
다음 날, 그녀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다른 매장에서 견적을 받아보니 30만원이 나왔고 본인이 10만원을 부담하겠다고 했다. 보험처리는 시간이 걸리고 자신은 휴대폰을 빨리 사용하고 싶단다. 분명 내가 손해다. 쌍방과실이라면 반씩 부담이 맞고, 보험으로 처리할 수도 있으니까.
“엘리자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는걸요!”
[백영옥 저, 『빨강머리앤이 하는 말』 p. 22]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지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 문장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떤 선택이 좋은 걸까?’. 민사로 넘어가면 20만원으로 처리할 수 없는 영역으로 넘어갈 것이 분명했다. 나는 상대의 의견을 수용하기로 했다. 20만원을 입금하고 커피쿠폰 두 장과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서로 의도한 건 아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네요.
휴대폰 수리 잘 받고 남자친구와 커피드세요.”
물론 나도 돈이 아깝고 속상하며 남자친구를 내세우는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일은 일어났다. 그 사건을 어떻게 남길지는 내 선택이었다. 원망이 올라오던 중, 문득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새로 구입한 휴대폰 액정이 깨져 속상한 마음으로 여러 대리점을 방문하여 견적 받고 속상해하는 모습 말이다. 그 모습이 떠오르자 마음이 평온해졌다.
사고는 우연히 시작됐지만 마무리는 아름답게 맺고 싶었다. 결국 선을 이루는 경험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일’로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이 사건은 내가 나를 기특하게 여기게 된 에피소드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뿌듯한 마무리로 남아 있고, 혹시라도 다시 그녀를 만나게 되어도 불편하거나 껄끄러운 감정 없이 인사할 수 있을 것 같다. 20만원으로 참 좋은 수업을 받았다. 만약 경찰서를 오가고 소송까지 갔으면 어땠을까. 상대를 얼마나 미워하고 증오하겠는가. 일이 커지기 전에 멈출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끝맺음을 잘하고 내가 누린 마음의 평안은 20만 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였다.
생각대로 되지 않은 일이 생각지도 못한 일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사람을 한 뼘 더 성장시킨다. 돌이켜보면 그 사건은 나를 힘들게 하려고 찾아온 일이 아니라, 나를 더 넓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찾아온 기회였다. 내게 온 레몬을 레모네이드로 만들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작은 생각으로 판단하고 속단하는 아집을 비워내는 작업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몇 년 후의 나는 또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그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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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김혜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