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체인타임스= 안현준 인재기자] 파벨 네드베드(Pavel Nedvěd)는 1972년 8월 30일 체코에서 태어난 축구선수다. 네드베드는 하루에 12시간씩 연습을 하여 양발을 모두 잘 쓸 수 있게 되었고, 집에서 연습장까지 계속 뛰어다니며 체력을 길렀다.
네드베드의 장점은 대포알 같은 킥력과 중거리슛, 그리고 엄청난 체력이다. 네드베드는 대한민국의 박지성 이전에 두 개의 심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활동량을 바탕으로 수비 가담도 잘했다. 델 피에로와 번갈아 프리킥을 찰 정도로 킥력이 뛰어났으며, 게다가 크로스마저 동시대의 다른 뛰어난 윙어들과 함께 정상급으로 결점이 없는 미드필더였다.
선수생활의 시작
네드베드는 자국의 FK 두클라 프라하에서 데뷔했다. 1년 후 체코의 명문 클럽인 AC 스파르타 프라하로 이적했다. 네드베드는 그곳에서 리그 우승 3회와 체코컵 우승 1회를 차지했다. 네드베드는 이후 열린 UEFA 유로 1996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쳐 각국의 클럽들에게 러브콜이 왔고, 네드베드는 이탈리아의 SS 라치오로 이적한다.
SS 라치오 시절
네드베드는 SS 라치오로 이적한 이듬해인 97-98시즌에 AC 밀란을 제치고 코파 이탈리아 우승, 그리고 UEFA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SS 라치오는 24년 만에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 다음 시즌인 98-99 시즌에는 UEFA 컵위너스컵 결승에서 RCD 마요르카와의 승부에서 81분에 결승골을 넣으며 우승을 이끌었다.
99-00 시즌에도 네드베드는 엄청난 활약을 이어가는데, 리그에서는 유벤투스와 승점 1점 차로 세리에 A 우승컵인 스쿠데토를 차지했다.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결승전에서 인터 밀란을 만났지만 네드베드가 선제골을 넣으며 2:1로 승리하여 더블을 달성한다.
유벤투스에서의 활약
출처 : GoodFon
라치오의 재정난으로 팀을 떠나게 된 네드베드는 지네딘 지단의 대체자로 유벤투스에 입단했다. 네드베드는 첫 시즌에는 별다른 활약을 하진 못했지만, 이후 세리에 A 2연패, 2002-03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까지 팀을 이끌었다. 하지만 4강전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네드베드가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해 유벤투스는 AC 밀란과의 결승 승부차기에서 결국 패했다. 이 활약으로 네드베드는 UEFA 올해의 미드필더 상과 2003년에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네드베드는 좋은 활약을 계속하지만 유벤투스에 시련이 닥친다. 구단주가 리그 내에서 단순 승부조작이 아닌 범죄 공모 및 스포츠 사기를 벌여 팀은 2부 리그인 세리에 B로 강등당하고 팀의 주전 선수들이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파트리크 비에이라 등이 팀을 떠났다.
네드베드는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나는 녹색 잔디만 있다면 세리에 A든 B든 상관없다. 이제부터 세리에 B는 나의 챔피언스리그가 될 것이다."라며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잔 루이지 부폰, 다비드 트레제게 등과 함께 유벤투스에 잔류할 것을 밝혔다. 또한 네드베드는 팀을 떠나려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설득하려는 모습을 보이며 팀에 대한 엄청난 충성심을 보인다.
출처 : GoodFon
이후 네드베드는 강등당했던 팀을 다시 1부 리그로 승격시킨 뒤 2시즌을 더 뛰고 팀을 다시 챔피언스 리그로 진출시킨 뒤 선수 생활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
은퇴 후 네드베드는 유벤투스의 보드진으로 활동하다가 2015년 10월 23일 유벤투스의 부회장직에 올랐다. 2017년 9월 22일에 자국의 아마추어팀인 FK 스칼나와 현역 계약을 했지만 경기에 출전하지는 않았다. 이 팀에는 네드베드의 아들이 선수로 뛰고 있다.
2023년까지 유벤투스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던 네드베드는 구단이 선수들의 가치를 고평가한 상태로 자본 이득을 본 혐의로 8개월 자격 정지를 받았다. 네드베드는 무죄를 주장하며 부회장직에서 사퇴하며 항소했고,. 결국 네드베드는 항소를 통해 최종적으로 징계가 취소됐다. 하지만 이 사건에 의해 유벤투스는 승점 10점을 삭감당해 리그 3위에서 7위까지 떨어지며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저작권자 © 밸류체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밸류체인타임스= 안현준 인재기자]
[밸류체인타임스= 안현준 인재기자] 파벨 네드베드(Pavel Nedvěd)는 1972년 8월 30일 체코에서 태어난 축구선수다. 네드베드는 하루에 12시간씩 연습을 하여 양발을 모두 잘 쓸 수 있게 되었고, 집에서 연습장까지 계속 뛰어다니며 체력을 길렀다.
네드베드의 장점은 대포알 같은 킥력과 중거리슛, 그리고 엄청난 체력이다. 네드베드는 대한민국의 박지성 이전에 두 개의 심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활동량을 바탕으로 수비 가담도 잘했다. 델 피에로와 번갈아 프리킥을 찰 정도로 킥력이 뛰어났으며, 게다가 크로스마저 동시대의 다른 뛰어난 윙어들과 함께 정상급으로 결점이 없는 미드필더였다.
선수생활의 시작
네드베드는 자국의 FK 두클라 프라하에서 데뷔했다. 1년 후 체코의 명문 클럽인 AC 스파르타 프라하로 이적했다. 네드베드는 그곳에서 리그 우승 3회와 체코컵 우승 1회를 차지했다. 네드베드는 이후 열린 UEFA 유로 1996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쳐 각국의 클럽들에게 러브콜이 왔고, 네드베드는 이탈리아의 SS 라치오로 이적한다.
SS 라치오 시절
네드베드는 SS 라치오로 이적한 이듬해인 97-98시즌에 AC 밀란을 제치고 코파 이탈리아 우승, 그리고 UEFA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SS 라치오는 24년 만에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 다음 시즌인 98-99 시즌에는 UEFA 컵위너스컵 결승에서 RCD 마요르카와의 승부에서 81분에 결승골을 넣으며 우승을 이끌었다.
99-00 시즌에도 네드베드는 엄청난 활약을 이어가는데, 리그에서는 유벤투스와 승점 1점 차로 세리에 A 우승컵인 스쿠데토를 차지했다.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결승전에서 인터 밀란을 만났지만 네드베드가 선제골을 넣으며 2:1로 승리하여 더블을 달성한다.
유벤투스에서의 활약
출처 : GoodFon
라치오의 재정난으로 팀을 떠나게 된 네드베드는 지네딘 지단의 대체자로 유벤투스에 입단했다. 네드베드는 첫 시즌에는 별다른 활약을 하진 못했지만, 이후 세리에 A 2연패, 2002-03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까지 팀을 이끌었다. 하지만 4강전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네드베드가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해 유벤투스는 AC 밀란과의 결승 승부차기에서 결국 패했다. 이 활약으로 네드베드는 UEFA 올해의 미드필더 상과 2003년에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네드베드는 좋은 활약을 계속하지만 유벤투스에 시련이 닥친다. 구단주가 리그 내에서 단순 승부조작이 아닌 범죄 공모 및 스포츠 사기를 벌여 팀은 2부 리그인 세리에 B로 강등당하고 팀의 주전 선수들이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파트리크 비에이라 등이 팀을 떠났다.
네드베드는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나는 녹색 잔디만 있다면 세리에 A든 B든 상관없다. 이제부터 세리에 B는 나의 챔피언스리그가 될 것이다."라며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잔 루이지 부폰, 다비드 트레제게 등과 함께 유벤투스에 잔류할 것을 밝혔다. 또한 네드베드는 팀을 떠나려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설득하려는 모습을 보이며 팀에 대한 엄청난 충성심을 보인다.
출처 : GoodFon
이후 네드베드는 강등당했던 팀을 다시 1부 리그로 승격시킨 뒤 2시즌을 더 뛰고 팀을 다시 챔피언스 리그로 진출시킨 뒤 선수 생활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
은퇴 후 네드베드는 유벤투스의 보드진으로 활동하다가 2015년 10월 23일 유벤투스의 부회장직에 올랐다. 2017년 9월 22일에 자국의 아마추어팀인 FK 스칼나와 현역 계약을 했지만 경기에 출전하지는 않았다. 이 팀에는 네드베드의 아들이 선수로 뛰고 있다.
2023년까지 유벤투스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던 네드베드는 구단이 선수들의 가치를 고평가한 상태로 자본 이득을 본 혐의로 8개월 자격 정지를 받았다. 네드베드는 무죄를 주장하며 부회장직에서 사퇴하며 항소했고,. 결국 네드베드는 항소를 통해 최종적으로 징계가 취소됐다. 하지만 이 사건에 의해 유벤투스는 승점 10점을 삭감당해 리그 3위에서 7위까지 떨어지며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저작권자 © 밸류체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밸류체인타임스= 안현준 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