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의학의 기초를 마련한 ‘히포크라테스 학파’ | 밸류체인타임스

유제욱 수습기자
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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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유제욱 수습기자] 늦은 밤, 한 남자가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 몸을 뉘었다. 그는 몇 년째 불치병을 앓고 있었다. 그는 어떤 병이든 치료 가능하다는 소문을 듣고,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으로 찾아왔다. 그는 신전 관례에 따라 정결례를 진행하고 잠을 청했다. 그에게 신에 대한 결함이 없는 이상 그는 다음날 아침 회복될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학파가 만들어지기 전, 질병에 관한 통념은 ‘영적인 문제’로 여겨졌다. 따라서 질병은 신의 저주로 여겨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의 도움이 필요했다. 대표적인 예로 질병을 치유하는 신 아스클레오피스에 관한 믿음을 들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은 아스클레오피스 신전에 와서 사제들의 지침을 따르고 하룻밤을 지낸다면 아스클레오피스가 꿈에 나타나 어떤 지시를 내리거나 의술을 행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아스클레오피스 신전은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어 신선한 공기와 물을 충분히 공급했다. 순례자들은 신전의 자연환경과 순결한 사제, 그들이 외치는 주문, 이곳저곳에서 드려지는 제사와 다친 팔과 다리를 휘감으며 늘어지는 신성한 뱀을 보며 자신의 병이 치유될 거라는 희망을 가졌다.


신전에 다녀간 사람이 치유될 경우, 신전에 사제와 신에게 영광이 돌아갔지만 치유되지 못할 경우에는 전적인 책임이 병자에게 있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영적인 존재는 언제나 절대적인 선이었다.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우주에 질서가 있다고 생각했고 사람의 육체에서 그 질서가 깨어지는 경우 발생하는 것이 질병이라고 여겼다. 때문에 이들은 그 질서를 발견하고 기록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질병의 치유 역시 질서의 회복으로 간주했다.


질병의 원인과 결과가 이해할 수 없는 영적 존재가 아닌 입증할 수 있는 자연의 질서 내에 존재하기 때문에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영적 존재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했다. 학계에서는 이 선택이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가장 위대한 공헌이라고 평가한다. 스위스의 의사 학자인 어윈 아커크네히트는 이를 ‘의학의 독립선언’이라고 명명했다.


히포크라테스는 기원전 460년, 소아시아 서쪽 연안 근처에 있는 코스 섬에서 태어났다. 히포크라테스에 관해서는 후대에 윤색된 역사적 사실과 전설적인 이야기가 만연하지만 유일하게 분명한 근거가 있는 사실은 탄생일이 전부다. 탄생일은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오는 프로타고라스와 파이드로스에서 입증된다.


히포크라테스에 대한 정보는 그가 죽은 지 500년이 지난 2세기에 에페소의 소라노스가 쓴 칭찬 일색의 전기에서 비롯됐다. 이 전기는 첫 기록치고 오래된 만큼 신빙성이 떨어지지만 히포크라테스 생애에 대한 윤곽을 그릴 수 있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아버지로부터 의학을 배웠고 이웃 도시와 에게 해 주변을 여행하며 의술을 공부했다. 의학 관련 강의나 수술을 하고 학생과 환자에게 사례금을 받으며 생활한 것으로 보인다. 코스 섬 의학교에서도 강의를 했고 그는 곧 그의 강의와 치료법 때문에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는 100살이 다 되어 라리사에서 죽었다. 히포크라테스의 생애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저명한 철학자들의 시대와 겹친다.


강령술과 미신을 제외한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의학을 급속도로 발전시켰는데 이들은 ‘환자’ 중심의 의학에 집중했다. 이들은 질병의 원인이 환자의 주변 환경이라 생각했고, 환자의 환경을 변화시켜 면역력을 강화시켰다. 또 내재적 열의 추진력으로 체액이 돌며 신체 내부가 작동한다고 생각했다. 섭취한 음식으로 체액을 만들고 체액들 산의 균형을 유지할 때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보았다.


체액은 불, 공기, 물, 흙 이렇게 네 가지 원소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뜨겁고 건조하고 차갑고 습한 네 가지 성질을 중요하게 여겼다. 따라서 혈액은 뜨겁고 습한 습성, 황담즙은 따뜻하고 건조한 습성, 점액은 차갑고 습한 습성, 흑담즙은 차갑고 건조한 습성을 상징했다.


각각의 성질이 지닌 특성 때문에 네 가지 체액은 계절에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리스의 겨울이 차갑고 습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점액이 많아진다는 식이었다. 이 이론은 당시 계절에 따라 유행하는 질병을 설명할 수 있는 타당한 해결책이었다. 우주의 움직임에 따라 인간의 건강 상태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라서 특정 계절이 많은 곳에는 특정 질병 또한 발병률이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계절 즉, 온도와 습도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사람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발견했다.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사람의 체액 불균형의 특징을 찾기 위해 면밀히 노력했다.

의사들은 오감을 능숙하게 이용하여 잠재적 질병의 징후를 찾았는데 체온 변화, 피부 색, 얼굴 표정, 호흡 방식, 자세, 피부, 머리카락, 손톱, 비정상적인 신체 윤곽 등을 검사했고, 피와 소변, 피부 분비물, 귀지, 콧물, 눈물, 가래, 고름을 맛보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또 대변의 냄새를 맡고 땀의 점성도를 기록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몸의 질서와 질서의 변형에 의한 외부 변화를 꼼꼼히 기록했다. 이런 정보력과 통계, 경험적 의존력은 히포크라테스 학파가 질병의 치료법을 보다 분명하게 확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여기서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진단의 과정의 경험적 특성이다. 그것은 체액 이론이 눈에 보이는 현상에 의존했으며, 이는 의학계에서 새롭게 시도된 방법이었다. 이전에는 병의 치료가 초자연적 존재의 개입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명백한 주요 증상을 거의 무시하고, 병의 주된 원인을 밝히려는 노력도 전혀 하지 않은 채 진단이 이루어졌다.


히포크라테스의 방법에는 놀라울 정도로 일관성이 있었다. 일단 그것을 배운 학생이 그 방법을 적용하면 기본 이론에서 배운 대로 일이 진행되었다. 그 이론은 처음 관찰한 병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근거로 체계화된 것이 분명하지만 여전히 합리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에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뿐만 아니라 그 이론 덕분에 관찰이 활성화되었고,, 그로 인해 과학적 방법이 의학에 도입되는 기틀을 마련했다.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접근 방식은 경험적이며 실험적 방식의 전조였다. 오직 눈에 보이는 현상에 의지한 추론과 함께 신중하게 자료를 기록하는 것이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특징이었다.


그들은 과학적 의학과 같은 방법으로 증례 기록과 임상 강의, 임상 실험으로 자신들의 이론을 가르쳤다. 히포크라테스 학파의 기본적인 철학은 오늘날 의사들이 환자들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이 곧 약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올바른 식습관이 건강 유지와 직결됨을 강조했다.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의사들의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며,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오늘날까지도 의사들의 윤리 강령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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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유제욱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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