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술통에서 배양된 푸른곰팡이, 역사에 남을 치료제되다.. ‘항생제’ 탄생 비화 | 밸류체인타임스

유제욱 수습기자
2024-03-28
조회수 1192


[의학] 술통에서 배양된 푸른곰팡이, 역사에 남을 치료제되다.. ‘항생제’ 탄생 비화 | 밸류체인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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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출처: 쳇 gpt



[밸류체인타임스=유제욱 수습기자] 1914년, 1차세계대전이 한창인 전장 속 야전병원에서 의사인 33세의 알렉산더 플레밍은 열심히 뛰어다녔다. 다친 병사들이 몰려오자, 플레밍은 서둘러 환부를 소독하고 방부제연고를 발랐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군인의 3분의 2는 총상이 아니라 상처로 인한 감염으로 인해 사망했다.


원인은 체내에 이미 감염된 세균이었다. 플레밍이 처리했던 소독과 방부제연고 처방은 외부세균 침투를 막지만 체내에 있는 세균은 처리하지 못했다. 결국 체내에서 세균이 증식되자 총상은 가스괴저(Gas Gangrene, 조직을 괴사시키면서 가스를 만드는 세균에 의한 감염 질환: 네이버 지식백과)와 패혈증으로 번졌고 사망에 이르게 했다. 이런 상황은 1차세계대전 내내 있던 상황이었지만 해결방안은 없었다.


플레밍은 전쟁이 끝난 후 친구와 병원을 설립했다. 일상생활로 돌아간 플레밍의 머리 속에는 아직도 체내 세균에 대응할 해결책에 관한 생각 뿐이었다. 그는 병원에 연구소를 설립했고, 그 해결책을 찾기까지 10년간 노력했다.


연구를 시작하고 3년 뒤, 플레밍의 연구 성과물이 나왔다. 그는 감기에 걸렸을 때 ‘건강한 신체와 감기에 걸린 상태의 콧물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졌다. 그의 콧물을 당시 세균을 배양하고 있던 배양접시에 떨어뜨려놨다. 그런데 다음 날 확인해보니 콧물 주변에 세균이 모두 죽어있었던 것이다. 그는 인체의 다른 체액을 가지고 실험을 진행했고, 결국 세균을 죽이는 신기한 물질을 발견했다.


그는 이 신기한 물질을 ‘라이소자임(lysozyme)’이라는 이름을 붙여 학회에 보고했다. 그러나 당시 학회에서는 그의 발견이 각광 받지 못했다. 라이소자임이 세균을 죽이는 능력은 ‘인체에 무해한 세균’에게만 적용됐거나 질병을 일으키기도 전에 사라지는 ‘순한 세균’에게만 발휘됐기 때문이다.


7년 뒤, 플레밍은 세균이 배양되는 페트리 접시를 살펴보던 중 포도상구균이 배양된 접시에 푸른색의 곰팡이가 핀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곰팡이 옆에 세균의 군체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페니실리움 노타툼이라는 푸른곰팡이를 배양했고, 여러 세균에 실험해 보았다. 이때 푸른곰팡이가 폐렴구균, 각종 화농성 질환을 일으키는 포도상구균, 파상풍균, 디프테리아균 등 인체에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퇴치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어서 플레밍은 적혈구에 푸른곰팡이를 함께 두었을 때,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로써 푸른곰팡이가 인체에 무해하지만 세균만을 찾아서 죽이는 ‘놀라운 물질’임을 추측해 볼 수 있었다. 그는 1929년 2월, 런던에서 열린 ‘메디컬 리서치 클럽'에서 푸른곰팡이를 소개했다. 그러나 학회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학회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플레밍은 푸른곰팡이가 가진 가능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단 하나, 푸른곰팡이의 순수한 항생물질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강력한 항생물질을 가진 푸른곰팡이를 갈아서 처방할 수는 없는 상황이니 이를 치료제로 개발시켜야 했다.


 

출처: Flickr 


그러나 순수물질을 분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개인의 역량에 한계를 느낀 플레밍은 유능한 생화학자 라이스트릭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 역시 분리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이 연구는 라이스트릭도 해결하지 못한 연구’로 낙인 찍혀 대부분의 연구소와 과학자들이 플레밍의 연구에서 시선을 돌렸다.


항생제 연구로부터 이미 10년이 지났기 때문에 플레밍 역시 지쳐갔다. 그러나 그의 라이소자임 연구를 관심있게 보았던 화학자 에른스트 체인과 하워드 플로리가 푸른곰팡이에서 노란색을 띤 순수물질 즉, 페니실린 추출에 성공했고, 플레밍은 곧바로 그들과 공동연구를 진행해 페니실린을 더 연구했다.


그들이 발견한 페니실린 추출 방법은 푸른곰팡이 100리터당 1g 정도의 페니실린을 얻을 수 있게 했다. 보통 패혈증 환자 한 명을 살리기 위해서 5~10g 정도 페니실린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 방법은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또한, 이런 대용량의 푸른곰팡이를 배양하려면 대규모의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들은 후원자가 필요했다. 후원자 후보는 기업과 국가 뿐이었는데 국가는 당시 세계대전으로 인한 자금난을 겪고 있어 이들의 연구를 무시했고, 기업조차도 상업적 가치를 가지기엔 너무 위험이 높은 연구라며 마다했다.


후원자를 구할 수 없을 것이라 직감한 플레밍과 공동연구진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은 세계대전에서 지리상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적었고, 그간 쌓인 연구정보를 활용해 홍보한 덕에 후원금을 모을 수 있었다.


또 2가지 호재가 페니실린 상용화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하나는 이들의 연구를 돕던 메리헌트 박사가 썩은 멜론에서 기존 페니실리움 노타툼보다 페니실린 생산량이 200배나 많은 새로운 종류의 푸른곰팡이를 발견한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푸른곰팡이를 대규모로 효율적이게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었다.


당시, 미국에는 양조장이 많았는데 1919년부터 1933년까지 미국에선 ‘금주법’이 시행되어 양조장이 줄줄이 폐업됐다. 플레밍과 공동연구진은 양조장에 사용되는 술통이 푸른곰팡이 배양에 효과적이라고 밝혀냈고, 술통 안의 찌꺼기는 배양액으로써 훌륭하다는 사실도 이어서 발견했다. 100리터로 1g을 만들었던 초기 방법에서 4,000배 이상 효율이 증대됐다.


이런 배경에서 페니실린은 완벽히 상용화됐고, 이로 인해 2차세계대전 기간에 수많은 생명을 구해냈다. 단편적인 예로 오드리 햅번도 어린 시절 페니실린으로 인해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 페니실린은 플레밍이 1차대전에서 고전했던 체내 세균 증식을 완벽히 막아냈다. 결국 플레밍, 체인, 플로리는 2차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페니실린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 받아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수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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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유제욱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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