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30년, 그 깊은 늪과 ‘엔저’의 역설 | 밸류체인타임스

차시현 칼럼니스트
2026-09-14
조회수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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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

[밸류체인타임스=차시현 칼럼니스트] 침체는 통상 일시적인 경기 순환의 일부에 그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본의 ‘잃어버린 30년’(1991~2024년)은 일반적인 경기 변동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대 경제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장기 침체였다. 1990년대 초반 약 500조 엔 규모였던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30여 년간 제자리에 머문 반면, 같은 기간 세계 경제 규모는 3배 이상 팽창했다. 버블경제 붕괴 이후 한 세대가 지나도록 성장 동력을 회복하지 못한 일본의 사례는 구조적 문제와 정책적 대응 실패가 결합할 경우 국가 경제가 얼마나 깊고 긴 침체에 빠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부실의 방치와 디플레이션의 악순환


일본 장기 침체의 핵심 원인은 구조 개혁의 지연과 금융 시스템의 비효율이었다. 버블 붕괴 이후 많은 기업이 사실상 지급 불능 상태에 놓였지만, 금융권은 대규모 손실을 확정하는 대신 대출을 연장(에버그리닝 관행)하며 부실을 장기간 은폐했다. 그 결과 경쟁력을 잃은 이른바 ‘좀비 기업’이 시장에 연명하게 되었고, 생산성이 높은 기업의 성장과 신규 기업의 진입은 가로막혔다. 


이는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을 심화시켰으며, 결국 1997년 11월 대형 금융사인 야마이치 증권과 홋카이도 다쿠쇼쿠 은행의 연쇄 파산이라는 초유의 금융 시스템 위기로 이어졌다. 당시 일본 은행권이 떠안고 있던 부실채권 규모는 100조 엔을 훌쩍 넘긴 것으로 추산된다.


동시에 일본 경제는 장기간의 디플레이션에 빠졌다. 1999년부터 일본의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사실상 마이너스 기조에 진입했다. 물가 하락은 소비자들에게 소비를 미루도록 만들었고, 소비 위축은 기업의 투자 감소와 임금 정체를 초래했다. 이는 다시 소비를 더욱 위축시키는 ’디플레이션 나선(Deflationary Spiral)’을 형성하며 2020년대 초반까지 약 20년 이상 지속되었다. 


여기에 고도성장기에 형성된 종신고용과 연공서열 중심의 경직된 노동시장, 그리고 1995년(약 8,700만 명)을 정점으로 꺾이기 시작한 생산가능인구(15~64세) 감소 등 본격화된 저출산·고령화의 인구통계학적 변화는 내수 기반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며 장기 침체를 더욱 고착화했다.


엔저(円安)라는 양날의 검과 서민 경제의 그늘


최근 수년간 지속된 역사적 수준의 엔저 역시 일본 경제의 명암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2024년 달러·엔 환율이 160엔 선을 돌파하며 3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할 정도로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크게 하락하면서, 도요타를 비롯한 글로벌 수출 기업들은 환율 효과에 힘입어 사상 최대 수준의 실적을 기록했다. 실제로 도요타자동차는 2023회계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 기준 일본 기업 사상 최초로 영업이익 5조 엔(약 5조 3,529억 엔)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경제 전반의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에너지와 원자재, 식료품을 대부분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일본(일본의 에너지 자급률은 약 12%, 식량 자급률은 약 38% 수준)의 경제 구조상 엔저로 인해 수입 물가가 크게 상승했고, 그 결과 실질임금은 감소하며 가계의 구매력이 약화되었다. 일본 후생노동성 통계에 따르면 일본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2022년 4월부터 2024년 5월까지 26개월 연속 감소하며 사상 최장기 마이너스 행진을 기록한 바 있다.



이른바 ‘엔저 공포’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생활비 부담은 커졌으며, 수출 대기업은 이익을 확대하는 반면 중소 내수 산업과 서민 경제는 높은 수입 물가와 소비 위축에 시달리는 양극화의 구조적 불균형이 심화되었다. 즉, 엔저는 수출 기업에는 호재였지만 국민 경제 전체의 관점에서는 분명한 한계를 지닌 양날의 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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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차시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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