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은 여러 경우에 사용된다.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없고, 몸에 통증이 없으며, 지금 있는 곳에서 불편감을 느끼지 않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거리낌이 없는 상태를 편안하다고 말한다. 내가 머무르는 자리가 내가 있을 곳일 때, 사람은 편안함과 만족감을 느낀다.
누구나 원하는 것이 있고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 하지만 어떤 길에 들어서는 시작점에서는 알기 어렵다. 길을 걷다가 잠시 멈춰 방향의 확인이 필요한 이유다. 확인하지 않은 채 한참의 길을 가면 어느 순간 허무함이 찾아온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지?’, ‘내가 원했던 것이 정말 이것이고 이 길은 과연 나의 길인가?’
그때 비로소 자신에게 질문하게 된다.
‘내가 추구하고 바라는 바가 과연 나의 욕구였을까?’
‘혹시 타인의 욕구 혹은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욕구는 아니었을까?’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내가 가지고 있던 욕구의 상당부분은 사회나 의미 있는 타인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공부 열심히 해야지.”
“좋은 직업 가져야 해.”
“위험한 일은 하지 말고 안정적인 직장에 가렴.”
내용자체는 좋다. 하지만 그들의 기준이기에 나와 맞지 않는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 오래 지날수록 불편함은 커진다. 아무리 애써도 내 옷이 아니라는 느낌은 커져간다.
내려놓으면 된다.
구태여 네 마음을 괴롭히지 말거라
부는 바람이 예뻐
그 눈부심에 웃던 네가 아니었니
받아들이면 된다.
지는 해를 깨우려 노력하지 말거라
너는 달빛에 더 아름답다
- 서해진 「너에게」 -
나의 자리는 '달빛'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자꾸 해를 붙잡으려 했다. 해를 향하는 행렬에 올라타야 할 것 같았다. 대열에 빠지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이 나를 재촉했다. 욕심과 조바심 때문에 밝게 떠올라있는 해가 아닌 이미 '지고 있는 해'임을 알고도 집착했다. 나와 맞지 않지만 놓치면 뒤처질 것만 같아서 말이다. 대학이나 직장의 이름만 보고 선택하는 것도 어쩌면 비슷하다. 나에게 맞는지보다 남들이 알아주는 곳인지, 내세울 수 있는 곳인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사진출처 : Unsplash
이전의 나는 눈에 띄고 사람들의 관심 받는 것을 좋아했다. 직장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무슨 말이 돌고 있는지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즐기는 성향인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옷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특히 관리자라는 자리가 나와 잘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승진해서 관리자가 되는 것이 직장인들의 자연스러운 목표처럼 여겨진다. 나 역시 그 길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서보니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불편하고 껄끄러웠다.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여러 사람과의 모임이나 회의에 참석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는 일들이 버겁고 즐겁지 않았다. 많은 사람과 넓게 관계를 맺는 것보다 소수의 마음맞는 이들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이 나에게는 훨씬 편안했다. 취미 역시 활동성이 높은 야외 활동보다는 몇몇 사람과 마음을 나누거나, 산책을 하거나, 홀로 사색하며 책을 읽는 시간이 좋았다.
그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나를 알아갔다. 나의 자리와 성향, 선호를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에 마음을 뺏기는 빈도가 줄었다. 그들에게는 좋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내가 달빛에 더 어울리는지 햇빛에 어울리는지 직접 부딪혀보며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러 옷을 입어봐야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새로운 기회가 올 때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직접 경험해보면서 맞지 않는 것이라면 하나씩 내려놓으면 된다. 그렇게 하나씩 경험하고, 하나씩 덜어내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자리가 보인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된다. 나도 편안하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그것을 느낀다.
남의 자리를 부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는 눈부신 햇빛이 나에게는 너무 뜨거울 수 있다. 반대로 누군가에게는 어둡고 평범해 보이는 달빛이 나에게는 가장 편안하고 아름다운 빛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자리가 나에게 맞는가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불편하다면 잠시 멈춰 나에게 물어보자. 나는 정말 이 곳을 원하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좋다고 해서 이곳에 있는가. 누군가의 햇빛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어쩌면 나는, 달빛에 더 아름다운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편안함은 여러 경우에 사용된다.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없고, 몸에 통증이 없으며, 지금 있는 곳에서 불편감을 느끼지 않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거리낌이 없는 상태를 편안하다고 말한다. 내가 머무르는 자리가 내가 있을 곳일 때, 사람은 편안함과 만족감을 느낀다.
누구나 원하는 것이 있고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 하지만 어떤 길에 들어서는 시작점에서는 알기 어렵다. 길을 걷다가 잠시 멈춰 방향의 확인이 필요한 이유다. 확인하지 않은 채 한참의 길을 가면 어느 순간 허무함이 찾아온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지?’, ‘내가 원했던 것이 정말 이것이고 이 길은 과연 나의 길인가?’
그때 비로소 자신에게 질문하게 된다.
‘내가 추구하고 바라는 바가 과연 나의 욕구였을까?’
‘혹시 타인의 욕구 혹은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욕구는 아니었을까?’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내가 가지고 있던 욕구의 상당부분은 사회나 의미 있는 타인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공부 열심히 해야지.”
“좋은 직업 가져야 해.”
“위험한 일은 하지 말고 안정적인 직장에 가렴.”
내용자체는 좋다. 하지만 그들의 기준이기에 나와 맞지 않는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 오래 지날수록 불편함은 커진다. 아무리 애써도 내 옷이 아니라는 느낌은 커져간다.
내려놓으면 된다.
구태여 네 마음을 괴롭히지 말거라
부는 바람이 예뻐
그 눈부심에 웃던 네가 아니었니
받아들이면 된다.
지는 해를 깨우려 노력하지 말거라
너는 달빛에 더 아름답다
- 서해진 「너에게」 -
나의 자리는 '달빛'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자꾸 해를 붙잡으려 했다. 해를 향하는 행렬에 올라타야 할 것 같았다. 대열에 빠지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이 나를 재촉했다. 욕심과 조바심 때문에 밝게 떠올라있는 해가 아닌 이미 '지고 있는 해'임을 알고도 집착했다. 나와 맞지 않지만 놓치면 뒤처질 것만 같아서 말이다. 대학이나 직장의 이름만 보고 선택하는 것도 어쩌면 비슷하다. 나에게 맞는지보다 남들이 알아주는 곳인지, 내세울 수 있는 곳인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사진출처 : Unsplash
이전의 나는 눈에 띄고 사람들의 관심 받는 것을 좋아했다. 직장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무슨 말이 돌고 있는지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내가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즐기는 성향인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옷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특히 관리자라는 자리가 나와 잘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승진해서 관리자가 되는 것이 직장인들의 자연스러운 목표처럼 여겨진다. 나 역시 그 길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서보니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불편하고 껄끄러웠다.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여러 사람과의 모임이나 회의에 참석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는 일들이 버겁고 즐겁지 않았다. 많은 사람과 넓게 관계를 맺는 것보다 소수의 마음맞는 이들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이 나에게는 훨씬 편안했다. 취미 역시 활동성이 높은 야외 활동보다는 몇몇 사람과 마음을 나누거나, 산책을 하거나, 홀로 사색하며 책을 읽는 시간이 좋았다.
그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나를 알아갔다. 나의 자리와 성향, 선호를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에 마음을 뺏기는 빈도가 줄었다. 그들에게는 좋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내가 달빛에 더 어울리는지 햇빛에 어울리는지 직접 부딪혀보며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러 옷을 입어봐야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새로운 기회가 올 때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직접 경험해보면서 맞지 않는 것이라면 하나씩 내려놓으면 된다. 그렇게 하나씩 경험하고, 하나씩 덜어내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자리가 보인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된다. 나도 편안하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그것을 느낀다.
남의 자리를 부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는 눈부신 햇빛이 나에게는 너무 뜨거울 수 있다. 반대로 누군가에게는 어둡고 평범해 보이는 달빛이 나에게는 가장 편안하고 아름다운 빛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자리가 나에게 맞는가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불편하다면 잠시 멈춰 나에게 물어보자. 나는 정말 이 곳을 원하는가. 아니면 누군가가 좋다고 해서 이곳에 있는가. 누군가의 햇빛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어쩌면 나는, 달빛에 더 아름다운 사람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