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집을 끝없이 풀어도 왜 성적이 안 오를까?ㅣ밸류체인타임스

이소율 칼럼니스트
2026-04-18
조회수 679

594d0f1d7480c.png(출처: Unsplash)

[밸류체인타임스=이소율 칼럼니스트]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서점의 참고서 코너는 중고등학생들로 붐빈다. 책상 위에 과목별로 문제집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하루에 몇 장씩 풀어내는 것을 '열심히 공부했다'는 척도로 삼는 학생이 적지 않다. 하지만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성적이 기대만큼 오르지 않아 좌절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그 이유는 단순한 노력 부족이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공부 방식' 자체에 숨어 있다.



양(量)에 집착하는 공부, '지식의 착각'을 부른다

문제집 풀이가 성적 향상으로 직결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이해'가 아닌 '양'을 중심에 두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이 해설지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이를 자신이 완전히 이해했다고 믿는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를 '지식의 착각(Illusion of Competence)'이라고 부른다.


미국 퍼듀대학교 제프리 카피키(Jeffrey Karpicke) 교수가 2011년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연구는 이를 명확히 증명한다. 연구진은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텍스트를 반복해서 읽게 하고, 다른 그룹은 텍스트를 덮고 머릿속에서 내용을 떠올리는 '인출(Retrieval)' 연습을 하게 했다. 


일주일 후 테스트 결과, 인출 연습을 한 그룹의 기억 유지율이 반복 읽기를 한 그룹보다 무려 50% 이상 높았다. 단순히 문제를 풀고 답을 눈으로 확인하는 행위는 정보에 잠시 노출되는 '재인(Recognition)'일 뿐, 뇌가 스스로 정보를 꺼내는 진짜 학습이 아니라는 뜻이다.


기계적 풀이의 함정, 개념 없는 반복은 시간 낭비다

중학교 교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학 공부의 사례가 이 맹점을 방증한다. 매 시험마다 수학 문제집을 두 권씩 끝내는 학생이 있다. 매일 빠짐없이 문제를 풀고, 틀린 것은 답지를 보며 고친다. 그러나 막상 시험지에 약간 변형된 유형이 출제되면 손조차 대지 못한다.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Hermann Ebbinghaus)의 '망각 곡선'에 따르면, 인간은 학습 후 단 1시간만 지나도 배운 내용의 50% 이상을 망각하며, 하루가 지나면 70% 가까이 잊어버린다. 개념의 뼈대를 세우지 않은 채 풀이 과정만 기계적으로 반복하면, 정작 뇌에 새겨져야 할 '내가 틀린 이유'와 '핵심 원리'는 하루도 안 돼 증발해 버린다. 무엇을 모르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맹목적인 문제 풀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



영어 공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독해 문제를 반복해서 풀지만, 정작 틀린 문항을 깊이 있게 분석하지 않는다. 오답의 원인이 어휘 부족인지, 구문 파악의 실패인지, 혹은 논리적 추론의 오류인지 진단하지 않고 정답만 확인하고 넘어가면, 비슷한 문장 구조가 등장할 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무엇을 모르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맹목적인 문제 풀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

07ad21cc6d7f8.png(출처: Pixnio)

상위권의 비밀, '메타인지'와 '의도적 연습'

반면,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학생들의 학습법은 궤를 달리한다. 이들은 문제의 양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히 구분하는 '메타인지(Metacognition)'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실제로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교 마르셀 빈만(Marcel Veenman)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학생의 학업 성취도 차이를 설명하는 데 있어 지능(IQ)이 미치는 영향은 25%에 불과했지만, 메타인지의 영향력은 40%에 달했다.



막연하게 이미 아는 문제를 반복하며 안도감을 느끼는 대신, 이들은 자신의 취약점을 정확히 타격하여 보완하는 데 시간을 쏟는다. 이는 저명한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슨(Anders Ericsson)이 주창한 '의도적 연습(Deliberate Practice)'과 일치한다. 자신의 약점을 파악하고 피드백을 통해 집중적으로 교정해 나가는 과정만이 실력을 향상시킨다. 상위권 학생들은 한 번 틀린 문제를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진다. 겉보기에 푼 문제 수는 적어 보일지라도, 정보 처리의 깊이는 압도적으로 높다.



문제집은 도구일 뿐, 핵심은 '완벽한 소화'다

결국 성적은 맹목적인 반복만으로 오르지 않는다. 이해 없는 문제 풀이, 원인 분석이 결여된 오답 처리, 그리고 분량에 대한 강박은 오히려 학습의 효율성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이제는 '얼마나 많이 풀었는가'라는 양적 지표에서 벗어나, '얼마나 깊이 있게 이해했는가'라는 질적 지표로 공부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다.



문제집은 학습을 돕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를 활용해 나의 빈틈을 찾아내고 단단하게 메우는 과정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문제집도 무용지물이다. 틀린 문제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데 집중하는 순간, 공부의 결과는 비로소 배신하지 않고 성적 향상으로 응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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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이소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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