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의 단상] 말하고 침묵하고 이해하고┃ 밸류체인타임스

김혜선 기자
2026-04-08
조회수 98

[밸류체인타임스=김혜선기자]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비밀을 탐구한 철학자다. 그의 초기 저서 『논리철학논고』에서 그는 우리가 말을 할 때 머릿속에 있는 세상의 그림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보았다. 지도에 없는 길을 억지로 설명하면 길을 잃는 것처럼, 눈으로 확인하거나 증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이 지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후기 저서 『철학적 탐구』에서는 그의 생각이 바뀐다. 언어는 고정된 그림이 아닌 상황에 따라 쓰임이 달라지는 ‘도구’가 된다. 그는 언어를 규칙이 변하는 게임이라고 설명한다. 똑같은 ‘물’도 맥락에 따라 의미가 전혀 다르다. 마셔도 되는지 확인하는 질문이 될 수도 있고, 급하게 물을 가져오라는 요청도 될 수 있으며, H₂O라는 성분임을 설명하는 의미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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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unsplash]



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날 때 특히 소아환자들의 언어표현은 더 많은 뜻을 담고 있다. 아이들의 “싫어, 싫어.”는 단순히 주사를 맞기 싫다는 뜻 외에 병원이라는 환경에 대한 두려움, 이전에 경험했던 통증에 대한 기억이 함께 담겨 있다. 또 ‘아프다’는 표현 안에는 신체적인 통증뿐 아니라 두려움이나 외로움까지 섞여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환자의 말 자체뿐 아니라 그 말이 놓인 상황과 맥락을 함께 살펴야 한다.

 

 

사람들과의 대화가 어긋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각자가 사용하는 언어의 규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통증’을 신체적 아픔으로 말하는 이와 외로움이나 정서적 고통으로 이야기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쉽게 엇갈린다.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서로 다른 세계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야기가 통하기 위해서는 관계와 맥락을 살피고 상대가 어떤 뜻으로 이야기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철학적 탐구』에서 “철학의 목적은 파리가 파리통(fly-bottle)에서 빠져나갈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파리통 속의 파리’는 언어와 개념의 혼란에 갇혀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인간을 비유한다. 그는 철학을 새로운 이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빠져있는 혼란에서 벗어나도록 길을 보여주는 역할이라고 보았다.

 

 

우리는 같은 말을 하면서도 서로 다른 의미로 이해하며 살아간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넘어갔던 말이 다른 사람에게는 날카로운 상처가 되기도 한다. 언어의 규칙과 맥락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낯선 반응을 보일 때, 한발 물러서서 상황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표현을 바꿔보거나, 잠시 침묵하면서 상대의 말을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저, 『논리철학논고』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로 보았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권했다. 동시에 그는 언어가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구라고도 말했다. 이 두 관점은 모두 우리의 일상에 중요한 통찰을 준다. 언제 말해야 하고, 언제 침묵해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상대의 맥락을 더 깊이 이해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 그 균형이 관계를 유연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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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김혜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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