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Unsplash의Gülfer ERGİN)
[밸류체인타임스=황지민 칼럼니스트] 현대사회에서 난독증을 가진 사람들을 발견하는 일은 더 이상 어렵지 않다. 2025년 11월 19일 기준, 경기도교육청 발표에 따르면 난독증 증상을 보이는 초등학생은 1,087명으로, 전년 대비 267명, 약 32% 증가했다. 2023년 748명을 기록한 이후 3년 연속 증가세다.
교육청은 그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IT 기기에 이른 나이부터 노출되는 환경을 지목한다. 문장을 천천히 따라 읽는 경험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이미지와 영상에 먼저 익숙해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어린 세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글을 읽는 데 집중하기 어렵거나 문장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혼란을 겪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읽기의 어려움은 개인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인지 환경의 변화와 깊이 연결돼 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 환경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 난독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거나, 난독증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자신을 뒤처진 사람으로 판단해 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형성된 시선은 교정의 대상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감내해야 할 낙인이 되어버린다.
난독증은 치료가 불가능한 불치병이 아니다. 학습 장애의 유형 중 하나인 읽기 장애를 의미한다 정의는 학자와 연구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좁은 의미에서의 난독증은 독해력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문자로 표기된 단어를 말소리로 변환하는 해독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상태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글의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과 읽는 과정의 어려움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난독증은 이해의 부재가 아니라, 처리 방식의 차이에 가깝다.
난독증은 연령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학령 초기에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를 읽기 어렵고, 받침이나 음운 변동이 있는 단어에서 오류가 잦다. 베껴 쓰기는 가능하지만 받아쓰기는 힘들며, 글을 읽어주면 이해는 비교적 잘하는 편이다.
학령 후기에는 소리 내어 읽는 속도가 느리고, 긴 단어나 외래어를 읽을 때 생략이나 대치가 나타난다. 철자법과 작문에 어려움을 겪으며, 책 읽기를 점점 피하게 된다. 청소년기와 성인기에 이르면 읽기 속도가 느리고 자세히 읽기보다는 대충 읽는 경향이 나타나며, 철자 오류와 작문 어려움이 지속된다.
난독증의 진단은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통해 이루어지며, 병력 청취와 함께 지능, 읽기 능력, 인지 처리 능력에 대한 심리·교육적 평가가 포함된다. 치료의 핵심은 음운 인식 훈련을 중심으로 한 체계적인 읽기 교육이며, 조기에 개입할수록 예후가 좋다. 적절한 개입이 없을 경우 어려움이 성인기까지 이어질 수 있지만, 난독증은 충분히 호전될 수 있는 학습 특성이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읽기의 속도와 정확도를 능력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 기준 앞에서 난독증은 자주 ‘극복해야 할 결함’으로만 이해된다. 하지만 만약 그 기준을 잠시 내려놓는다면, 다른 질문이 가능해진다.
"읽지 못함은 언제나 뒤처짐을 의미하는가? 문자로 설명하지 못한 사람들은 정말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는가?"
미술사의 한가운데에는 글보다 이미지에 훨씬 능숙했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문자 대신 선과 형태로 사고했고, 문장 대신 장면으로 세계를 이해했다. 그들에게 읽기의 어려움은 끝이 아니라 다른 길의 시작이었다. 난독증이라는 걸림돌은, 적어도 그들에게 있어 넘을 수 없는 벽도, 회피해야 할 대상도 아니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심한 난독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빈치가 남긴 원고를 살펴보면 their와 rain을 각각 there, rane으로 적는 등, 문자 사용에서의 어려움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난독증이 다빈치의 천재성을 이끄는 원동력 중 하나였다는 연구가 있다. 미국 '토머스 제퍼슨 대학교(Thomas Jefferson University)' 의과대학 교수인 '살바토르 만지오네 박사(Dr. Salvatore Mangione)'는 “난독증은 다빈치를 창의적으로 만든 요소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다빈치가 하나의 단어를 표현하기 위해 최대 아홉 가지의 다른 방식으로 철자를 구성했으며, 기존 단어와 같은 발음을 가진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난독증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다빈치에게 그것은 한계를 드러내는 낙인이 아니라, 언어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사고로 나아가게 한 계기였다. 단어를 정확히 쓰지 못했던 대신, 그는 세상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어냈다.
성경 속에서도 자신의 언어적 한계를 먼저 고백한 인물이 있다. 모세,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기보다, 오히려 가장 부족하다고 여겼던 부분을 드러냈다.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 (출애굽기 4:10)
모세의 고백은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실제적인 두려움에 가까웠다. 말로 설명하고 설득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야 하는 자리에서, 그는 자신을 적합한 인물로 여기지 못해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약점을 이유로 모세를 부르심에서 제외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말이 둔한 자, 약한 자인 모세를 택해 그를 통해 영광을 드러내셨다.
난독증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생각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말과 문장으로 옮기는데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유창한 언어와 명확한 표현만을 사용하는 사람만 쓰셨다면, 모세 역시 부르심의 목록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님은 결핍을 제거한 뒤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결핍을 포함한 채로 부르신다. 말이 아닌 방식으로, 글이 아닌 시선으로, 각 사람에게 허락된 언어로 응답하게 하신다.
결핍을 다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오늘날 우리는 너무 빠르게 이해되는 사람, 즉각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을 유능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속도와 명확성만이 능력의 기준이 될 때,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수많은 가능성은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난독증은 단지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얼마나 다양한 인지 방식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드러내는 지표일지도 모른다.
각자 자신의 약점이라 부르는 영역이 있다. 누구도 예외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결핍을 없애는 데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핍이 어떤 시선을 만들어내는지를 묻는 일이다. 결핍은 삶을 제한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세계를 다르게 바라보게 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삶의 방향은 결핍의 유무가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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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황지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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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황지민 칼럼니스트] 현대사회에서 난독증을 가진 사람들을 발견하는 일은 더 이상 어렵지 않다. 2025년 11월 19일 기준, 경기도교육청 발표에 따르면 난독증 증상을 보이는 초등학생은 1,087명으로, 전년 대비 267명, 약 32% 증가했다. 2023년 748명을 기록한 이후 3년 연속 증가세다.교육청은 그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IT 기기에 이른 나이부터 노출되는 환경을 지목한다. 문장을 천천히 따라 읽는 경험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이미지와 영상에 먼저 익숙해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어린 세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글을 읽는 데 집중하기 어렵거나 문장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혼란을 겪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읽기의 어려움은 개인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인지 환경의 변화와 깊이 연결돼 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 환경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 난독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거나, 난독증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자신을 뒤처진 사람으로 판단해 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형성된 시선은 교정의 대상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감내해야 할 낙인이 되어버린다.
난독증은 치료가 불가능한 불치병이 아니다. 학습 장애의 유형 중 하나인 읽기 장애를 의미한다 정의는 학자와 연구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좁은 의미에서의 난독증은 독해력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문자로 표기된 단어를 말소리로 변환하는 해독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상태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글의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과 읽는 과정의 어려움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난독증은 이해의 부재가 아니라, 처리 방식의 차이에 가깝다.
난독증은 연령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학령 초기에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를 읽기 어렵고, 받침이나 음운 변동이 있는 단어에서 오류가 잦다. 베껴 쓰기는 가능하지만 받아쓰기는 힘들며, 글을 읽어주면 이해는 비교적 잘하는 편이다.
학령 후기에는 소리 내어 읽는 속도가 느리고, 긴 단어나 외래어를 읽을 때 생략이나 대치가 나타난다. 철자법과 작문에 어려움을 겪으며, 책 읽기를 점점 피하게 된다. 청소년기와 성인기에 이르면 읽기 속도가 느리고 자세히 읽기보다는 대충 읽는 경향이 나타나며, 철자 오류와 작문 어려움이 지속된다.
난독증의 진단은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통해 이루어지며, 병력 청취와 함께 지능, 읽기 능력, 인지 처리 능력에 대한 심리·교육적 평가가 포함된다. 치료의 핵심은 음운 인식 훈련을 중심으로 한 체계적인 읽기 교육이며, 조기에 개입할수록 예후가 좋다. 적절한 개입이 없을 경우 어려움이 성인기까지 이어질 수 있지만, 난독증은 충분히 호전될 수 있는 학습 특성이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읽기의 속도와 정확도를 능력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 기준 앞에서 난독증은 자주 ‘극복해야 할 결함’으로만 이해된다. 하지만 만약 그 기준을 잠시 내려놓는다면, 다른 질문이 가능해진다.
"읽지 못함은 언제나 뒤처짐을 의미하는가? 문자로 설명하지 못한 사람들은 정말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는가?"
미술사의 한가운데에는 글보다 이미지에 훨씬 능숙했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문자 대신 선과 형태로 사고했고, 문장 대신 장면으로 세계를 이해했다. 그들에게 읽기의 어려움은 끝이 아니라 다른 길의 시작이었다. 난독증이라는 걸림돌은, 적어도 그들에게 있어 넘을 수 없는 벽도, 회피해야 할 대상도 아니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심한 난독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빈치가 남긴 원고를 살펴보면 their와 rain을 각각 there, rane으로 적는 등, 문자 사용에서의 어려움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난독증이 다빈치의 천재성을 이끄는 원동력 중 하나였다는 연구가 있다. 미국 '토머스 제퍼슨 대학교(Thomas Jefferson University)' 의과대학 교수인 '살바토르 만지오네 박사(Dr. Salvatore Mangione)'는 “난독증은 다빈치를 창의적으로 만든 요소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다빈치가 하나의 단어를 표현하기 위해 최대 아홉 가지의 다른 방식으로 철자를 구성했으며, 기존 단어와 같은 발음을 가진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난독증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다빈치에게 그것은 한계를 드러내는 낙인이 아니라, 언어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사고로 나아가게 한 계기였다. 단어를 정확히 쓰지 못했던 대신, 그는 세상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어냈다.
성경 속에서도 자신의 언어적 한계를 먼저 고백한 인물이 있다. 모세,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기보다, 오히려 가장 부족하다고 여겼던 부분을 드러냈다.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 (출애굽기 4:10)
모세의 고백은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실제적인 두려움에 가까웠다. 말로 설명하고 설득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야 하는 자리에서, 그는 자신을 적합한 인물로 여기지 못해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약점을 이유로 모세를 부르심에서 제외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말이 둔한 자, 약한 자인 모세를 택해 그를 통해 영광을 드러내셨다.
난독증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생각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말과 문장으로 옮기는데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유창한 언어와 명확한 표현만을 사용하는 사람만 쓰셨다면, 모세 역시 부르심의 목록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님은 결핍을 제거한 뒤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결핍을 포함한 채로 부르신다. 말이 아닌 방식으로, 글이 아닌 시선으로, 각 사람에게 허락된 언어로 응답하게 하신다.
결핍을 다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오늘날 우리는 너무 빠르게 이해되는 사람, 즉각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을 유능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속도와 명확성만이 능력의 기준이 될 때,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수많은 가능성은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난독증은 단지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얼마나 다양한 인지 방식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드러내는 지표일지도 모른다.
각자 자신의 약점이라 부르는 영역이 있다. 누구도 예외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결핍을 없애는 데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핍이 어떤 시선을 만들어내는지를 묻는 일이다. 결핍은 삶을 제한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세계를 다르게 바라보게 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삶의 방향은 결핍의 유무가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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