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이 사라진 시대에 대하여 | 밸류체인타임스

황지민 칼럼니스트
2026-01-12
조회수 1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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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진: Unsplash의Mayank Sehgal)


[밸류체인타임스=황지민 칼럼니스트] 요즘은 무언가를 오래 좋아하고, 한 가지에 깊이 몰입하는 사람이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지하철을 타고 긴 통로를 걸어가다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 손에 쥔 휴대폰 화면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마저도 긴 글이나 영상보다는 몇 초 만에 넘길 수 있는 짧은 쇼츠를 소비하는 모습이 익숙하다.


짧고 자극적인 영상은 순간적인 재미와 강렬한 자극을 주지만, 그 흥미는 오래 남지 않는다. 화면을 넘길수록 새로운 자극이 이어지고, 만족은 찰나에 생겼다가 빠르게 사라진다. 그 사이 우리는 무언가를 꾸준히 붙들고 생각하거나, 한 문제에 오래 머무를 시간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새로운 자극이 처음에는 높은 만족감을 주지만, 반복될수록 그 효과가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을 ‘신규 자극 효과(novelty effect)’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쉽게 흥미를 잃는 것은 개인의 집중력 부족이나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자극에 빠르게 반응하도록 설계된 인간의 인지 구조에 가깝다.


문제는 이 구조가 일상 전반으로 확장되었다는 데 있다. 우리는 더 빠르고 더 강한 자극에는 익숙해졌지만, 반대로 시간을 들여야만 드러나는 깊이에는 점점 서툴러졌다. 몰입은 능력이라기보다 환경과 선택의 문제에 가깝다. 그러나 지금의 환경은 오래 머무는 선택을 점점 어렵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몰입을 선택하고 있는가?


몰입이 어려워진 이유를 개인의 의지나 집중력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환경이 너무 많이 달라졌다. 손만 뻗으면 새로운 영상이 등장하고, 조금이라도 지루해지면 즉시 다른 선택지가 주어진다. 이런 환경에서는 무엇이 깊어지기 전에 떠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반응이 된다. 


문제는 자극의 양이 아니라 자극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짧고 강한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될수록 뇌는 더 빠른 보상을 기대하게 된다. 그 결과 천천히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문장, 곱씹으며 생각해야 하는 일들, 반복 속에서 의미가 쌓이는 작업, 시간이 지나야 깊어지는 관계는 쉽게 포기된다. 몰입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몰입을 요구하는 것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몰입은 물론, 기다림조차 버거워진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 세계에 몰입하며 오래 머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특별히 더 열정적이거나, 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들 역시 처음의 설렘이 사라지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목표를 다시 바라본다. 처음 느꼈던 마음을 기억하며, 익숙해지는 시간을 지나야만 보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황농문 저자의 《몰입》에 한 챕터 중 '꿈을 가진 어느 조각가의 이야기' 챕터엔 현재 조각의 거장이라 불리는 로댕의 RVD에 대해 자세히 나온다.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런 발자취도 못 남기고 떠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해. 나는 반드시 위대한 예술가가 될 거야. 우리나라 최고미술대학에 최우수 장학생으로 입학하고, 대학을 졸업하면서 출품하는 나의 살롱전 데뷔작은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될 거야. 내가 만들어내는 작품은 모두 전 세계인의 찬사와 존경을 받게 될 거고, 나는 국가적인 영웅으로 칭송을 받을 거야. 사람들은 먼발치에서라도 나를 보았다는 사실에 감격하게 되겠지. 내 작품은 역사에 영원히 남게 될 거고 세월이 흐를수록 명성이 드높아져 내 이름은 마침내 전설이 될 거야."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분명한 목표를 품고 있었다. 흔들리는 순간도 있었겠지만, 그때마다 자신의 꿈을 붙들며 더 깊이 몰입해 나아갔다. 이 지점에서 몰입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가 된다. 좋아하는 마음이 계속 유지되는가보다, 좋아하지 않는 순간을 어떻게 지나느냐가 더 중요해진다. 성장이 느껴지지 않는 시간, 결과가 보이지 않는 구간, 타인과 비교하게 되는 순간을 견뎌내는 힘. 오래 머무는 사람들은 이 시간을 실패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저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일 뿐이다. 


성경 속 인물들 역시 대부분 즉각적인 응답을 경험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래 기다리고, 한 자리에 오래 머무는 시간을 통과한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빠르게 사용하기보다,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 머물게 하며 준비시키셨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았지만,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수십 년을 기다려야 했다. 떠나라는 부르심은 분명했지만, 도착지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의 믿음은 결단의 순간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속에서 더 많이 다듬어졌다. 약속이 지연되는 동안에도 떠나지 않는 태도, 그것이 그의 몰입이었다. 


모세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젊은 시절 한 번의 선택으로 모든 것을 잃고 광야로 도망쳤다. 이후 40년 동안 그는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양을 치며 시간을 보냈다. 기적은 그 이후에야 시작되었다. 광야의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한 사람을 오래 머무르게 하며 준비시키는 시간이었다.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고도 곧바로 왕이 되지 못했다. 그는 도망자의 신분으로 동굴과 광야를 떠돌아야 했다. 이미 선택되었지만, 아직 증명되지 않은 상태로 오랜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 시간 동안 다윗은 도망치지 않았다. 왕이 되기 전에, 먼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갔다. 


이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그들은 모두 약속을 받았지만, 즉시 결과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지연의 시간 속에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신앙에서의 몰입은 ‘확신이 흔들리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머무는 태도에 가깝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목표에 대한 믿음이 확실했다. 나는 지금, 보여주신 목표에 믿음으로 바라보며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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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황지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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