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설계하다, 미란 보고서 | 밸류체인타임스

권예원 칼럼니스트
2025-12-09
조회수 2717


[밸류체인타임스=권예원 칼럼니스트] 2024년, 미국의 향후 경제 정책 방향을 예측한 한 보고서가 발표됐다. 하버드대 출신 경제학자가 작성한 ‘글로벌 무역 시스템 재구축을 위한 사용자 가이드’, 이른바 미란 보고서(Miran Report)다. 이 보고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적인 정책 방향을 정확히 짚어내며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전 세계가 집중하는 ‘미란 보고서’란 무엇일까?



미란 보고서(Miran Report)

미란 보고서는 달러·관세·환율을 재구성해 글로벌 무역 질서를 다시 짜겠다는 설계도다. 2024년 11월 발표된 이 문건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스티븐 미란이 작성했다. 하버드대 출신 경제학자인 미란은 트럼프 행정부 2기의 경제정책 핵심 설계자로 꼽힌다.


789e26e9c04a4.jpg사진출처:unsplash


이 보고서가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단순히 무역 문제를 지적했기 때문이 아니다. 보고서의 내용이 실제 정책으로 즉각 반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영향력은 훨씬 크다. 미국이 관세 전쟁에 돌입하자 “트럼프 경제의 교과서가 바로 미란 보고서”라는 평가도 나온다.


미란보고서의 주요내용

미란보고서의 핵심 문제의식은 단순하다. 미국 달러가 구조적으로 지나치게 강세를 보이면서 미국 제조업 경쟁력이 약해지고 무역수지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점이다. 달러가 글로벌 무역 시스템에서 기축통화로 기능하는 한 전 세계는 지속적으로 달러를 필요로 한다. 특히 시장이 불안정할 때 달러는 준비자산이자 안전자산으로 더욱 높은 수요를 끌어모으며 달러 강세를 더 공고히 한다.


이러한 고질적인 강달러 구조는 미국 제품의 해외 가격을 비싸게 만들고, 오히려 해외 제품이 미국 내에서 더 저렴하게 판매되는 결과를 낳아 미국 자국 내 제조업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이로 인해 무역적자가 구조화되고, 제조업 일자리 감소와 중산층 붕괴 같은 사회·경제적 문제도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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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unsplash


미란보고서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 가지 목표를 제시한다. 첫째, 구조적인 강달러 문제를 해소하고, 둘째, 미국 제조업을 재건하며, 셋째, 미국의 기축통화국·패권국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보고서는 지속적인 달러 강세가 미국 제조업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공장 폐쇄와 중산층 경제 침체를 유발했다고 분석한다. 또한 달러 패권을 유지하는 비용을 미국 제조업 종사자들이 떠안고 있으며, 이로 인해 미국 경제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달러가 기축통화로 유지되는 이상 미국은 인위적인 달러 약세 정책을 선택하기 어렵다. 그 결과 미국은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국채 발행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고, 해외에 국채를 판매하고 그 대가로 외국 상품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떠안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했다. 이는 국제경제학에서 말하는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의 전형적인 사례로, 미란 보고서는 이 문제가 미국 경제에 지속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8304a6ae233ea.jpg사진출처:unsplash


이에 따라 미란 보고서는 미국이 동맹국을 포함한 모든 교역 대상국에 최대 20%의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무역 불균형을 바로잡고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재취임 직후 본격적인 관세 전쟁을 시작하면서 미란보고서의 방향성과 신뢰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미란은 또한 미국이 동맹국들에게 경제적·군사적 지원을 제공해온 반면 강달러와 무역적자라는 부담을 떠안고 있다고 지적하며, 관세를 지렛대로 활용해 동맹국들이 무역에서 보다 공정한 역할을 하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미란보고서는 현재 글로벌 무역 시스템이 미국 경제의 근본적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관세와 환율 조정 등 적극적 정책 수단을 사용해 새로운 무역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두 번의 경험, 브레튼우즈와 플라자 합의

미국은 이미 두 차례의 국제경제 재편을 주도하며 글로벌 패권을 공고히 해왔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번 미란 보고서 역시 미국의 세계적 위상을 강화하는 데 활용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를 통해 미국은 금 태환을 기반으로 달러를 세계 기축통화로 만들며 혼란스러웠던 전후 세계경제의 중심축이 되었다. 이어 1985년 플라자 합의에서는 강달러로 인해 심화된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주요국과 협력해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절하하는 데 성공했다. 두 합의 모두 미국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국제 금융·무역 구조는 결국 미국의 방향성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흐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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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unsplash


미국은 글로벌 경제가 불안정할 때마다 이를 기회로 삼아 자신의 지위를 더욱 강화했고, 경제적 영향력도 그때마다 확대해왔다. 그러나 미란 보고서가 제시하는 접근은 이전의 합의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공격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다시 한 번 패권을 지키고 제조업 기반을 되살리기 위해 관세·환율·안보 등 자신이 가진 모든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미란 보고서와 ‘마러라고 합의’


미란 보고서는 미국이 관세를 부과한 이후 달러 강세를 유지하면서 무역 구조를 재정비하는 전략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를 위해 미국은 1985년 플라자 합의를 모델로 한 새로운 다자간 통화 협정, 이른바 ‘마러라고 합의(Mar-a-Lago Accord)’를 제안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이 합의는 달러 가치를 조정해 글로벌 무역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을 목표로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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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unsplash


보고서는 미국이 직면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율 조정 △관세 및 무역 체계 재설계 △안보를 지렛대로 한 경제 구조 재편을 핵심 의제로 내세울 것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동맹국 통화가 과도하게 저평가되어 미국의 무역적자를 심화시킬 경우, 미국은 외환시장 개입이나 공동성명을 통해 이를 직접 조정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보고서는 미국이 관세 충격을 완화하는 조건으로 높은 국경세(border tax)를 동맹국에 제안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는 관세 인상으로 발생하는 부담을 조절하는 동시에, 미국의 전략적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협상 카드로 사용될 수 있다.



큰 그림을 그리는 미국, 그리고 10년·20년 뒤 한국의 위치

달러 강세는 미국 소비자에게는 이롭지만 제조업 기반을 약화시키고 무역적자를 확대한다. 이는 결국 미국 산업 전반의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중국의 성장과 기술력 향상, 환율·무역 구조의 중국 중심 재편 가능성까지 더해지면서 미국 패권의 약화가 현실적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강경한 방식으로 경제 질서를 재구축하려 하고 있다.


과거 미국은 산업의 방향성을 시장에 맡기는 경향이 강했지만,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이후 국가 개입이 대대적으로 강화됐다. 반도체 지원 패키지, 친환경 보조금 정책 등 정부가 산업을 직접 밀어주는 형태가 대표적이다. 국가 개입이 커지는 만큼 글로벌 규칙을 다시 설정하려는 움직임도 강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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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unsplash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은 미란 보고서가 제시한 개편안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국가다. 한국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고, 자동차·배터리·철강 같은 주력 산업은 관세 변화에 취약하다. 따라서 미국이 관세와 환율을 기반으로 무역 질서를 재편할 경우, 한국 기업들은 큰 압력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전략적 스탠스를 취해야 할까? 한국은 안보 구조상 미국을 중심축으로 유지할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을 기반으로 한 안보 체제는 현실적으로 미국의 전략 질서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산업과 경제의 주도권은 한국 스스로 확보해야 한다.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의존은 향후 협상에서 자율성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cf00388ea4c92.jpg사진출처:unsplash


따라서 한국은 미국과의 협력을 견고히 유지하되, 자국 안보 역량을 보다 철저히 관리해 ‘협상 자율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안보 전부를 미국에 의존하게 되면, 미국이 경제 분야에서 압박을 가할 때 한국이 대응할 수 있는 선택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한국만의 ‘대체 불가능성’을 키우는 전략이 필수적이다. 반도체, 배터리, AI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전략 산업에서 독보적 위치를 강화해야 한다. 국제 협상에서 힘은 결국 “너 없으면 안 되는 구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이 빠지면 미국도 타격을 받는 공급망 구조를 만들어야 미국의 일방적 요구를 균형 있게 조절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은 군사·안보 측면에서도 일정 수준의 자립도를 확보해야 한다. 미란 보고서는 미국이 안보를 경제적 압박의 수단과 연계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안보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경제적 대가 역시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한국은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되, 경제적 선택지는 더 넓히고 스스로의 전략적 자립도를 높이는 균형 전략이 필요하다. 다가올 10년, 20년을 준비하기 위해 한국은 부족한 부분은 미국을 통해 보완하되, 강점이 있는 분야에서는 더욱 공격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자립적 역량이 없다면 미국과의 협상력도 약해지고, 흔들리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안정적인 위치를 유지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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