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미국의 꼬리잡기, 다음 타깃은 중국인가 | 밸류체인타임스

권예원 칼럼니스트
202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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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권예원 칼럼니스트]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호텔에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주요 5개국(G5)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였다. 이들이 체결한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는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기 위해 외환시장에 공동 개입하기로 한 역사적 합의였다. 이 결정은 단기적인 무역 불균형 해소를 목표로 했지만, 결과적으로 세계 경제에 장기적인 여파를 남겼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지금, 그 ‘플라자 합의의 그림자’는 다시 중국을 향해 드리워지고 있다.


플라자 합의란 무엇인가?

플라자 합의는 1980년대 미국의 심각한 무역적자와 달러 초강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다자간 외환정책 협정이다. 당시 미국은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이후 변동환율제를 도입했지만, 1980년대 초 레이건 행정부의 고금리 정책으로 달러 가치가 급등했다. 그 결과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고 무역적자가 폭증했다.


플라자 합의 이전의 미국 경제 상황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았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되고,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을 중지하면서 달러는 금과의 연동성을 잃었다. 그 결과 달러 가치는 불안정한 상태로 떨어졌고, 인플레이션이 심화되었다. 이에 1980년대 초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급격한 금리 인상 정책을 단행했다. 이 조치는 단기적으로 달러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미국 경제 전반에는 큰 충격을 주었다.


고금리 정책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1980년대 초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에 빠졌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률은 두 자릿수를 기록했고, 실업률도 급등했다. 경제 성장이 마이너스로 전환되면서 소비와 투자가 동시에 위축되었다. 결국 1981년 1월 20.06%까지 치솟았던 연방기금금리는 1982년 10월 이후 10%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진출처:unsplash


이와 동시에 미국이 유지하던 ‘고(高)달러 정책’도 한계에 부딪혔다. 달러 강세는 미국의 수입품 가격을 낮추어 단기적으로 물가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었지만, 그 대가로 무역적자가 급증했다. 1980년 GDP 대비 0.9% 수준이던 무역적자는 1984년에는 2.8%로 폭등했다. 수출이 급감하고 제조업이 침체되자, 미국 산업의 경쟁력은 빠르게 약화되었다.


경제학적으로 통화 가치 상승은 무역수지를 악화시킨다. 달러 강세는 곧 타국 통화 대비 달러의 교환비율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미국이 100달러짜리 제품을 일본에 수출할 경우 환율이 100엔/달러일 때는 1만 엔에 판매되지만, 200엔/달러로 상승하면 같은 제품이 2만 엔으로 비싸진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는 줄어들고, 미국의 수출 경쟁력은 떨어진다.


사진출처:unsplash


반대로 달러 강세는 해외 기업들에게는 기회가 된다. 미국의 수입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져, 외국 기업들의 대미(對美) 수출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달러 강세는 미국 기업의 수출을 위축시키고 해외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며, 결국 미국의 무역수지를 악화시키는 구조를 만들었다.


결국 이러한 고금리·고달러 정책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로 등장한 것이 바로 1985년의 플라자 합의였다.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절하함으로써 수출 경쟁력을 회복하고, 급등한 무역적자 문제를 완화하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플라자 합의와 미국

미국은 1980년대 초 심화된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달러 강세’ 정책을 포기하고 ‘달러 약세’로 방향을 전환해야 했다. 그러나 달러 가치를 낮추는 일은 미국의 독자적인 정책 변화만으로는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미국이 단독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하더라도 독일이나 일본 등 경쟁국이 비슷한 조치를 취하면 달러의 상대 가치는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플라자 합의(Plaza Accord)였다. 1985년 9월, 미국과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의 5개국(G5)은 달러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하락시키고, 대신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데 합의했다. 각국이 동시에 외환시장에 개입하여 환율을 조정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이 합의는 ‘달러 약세를 유도한 최초의 다자간 통화 협력’으로 평가된다. 독일과 일본은 자국 통화의 절상을 수용함으로써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을 돕는 데 동의했다.


사진출처:unsplash


플라자 합의 이후, 미국 경제는 서서히 회복세를 보였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서 미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고, 수출이 점차 늘어났다. 미국 기업들은 해외시장에서 재도약의 기회를 얻었으며, 서비스 산업과 첨단 기술 부문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무역수지 적자는 단기간에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달러 약세가 수출을 늘리는 효과를 냈지만, 이미 해외로 이전된 제조 기반이 빠르게 복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은 경제 구조 전환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대응책을 추진했다. 내수 소비를 촉진하고, 첨단 기술과 금융산업 중심의 경제 체제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1980년대 후반, 월가(Wall Street)를 중심으로 금융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미국은 제조업 중심 국가에서 금융·서비스 중심의 경제 대국으로 탈바꿈했다.


결국 플라자 합의는 미국이 단순히 환율 조정을 넘어서 경제 체질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달러는 약세를 유지했지만, 그 과정에서 미국은 세계 금융시장을 장악하며 ‘달러 패권’을 더욱 공고히 했다. 오늘날까지도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시기 미국이 글로벌 금융 중심국으로 변모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플라자 합의로 인한 일본 경제

플라자 합의의 최대 피해국은 단연 일본이었다. 합의가 체결된 1985년 당시 일본은 ‘엔저(円低) 효과’ 덕분에 수출 중심의 경제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자동차, 전자제품, 반도체 등 제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며 일본은 전후(戰後) 고도성장의 정점에 있었다. ‘저비용·고효율’의 산업 구조와 정교한 품질관리로 인해 일본 제품은 해외에서 “싸고 좋은 제품”으로 인식되었고, 이는 일본의 무역 흑자를 폭발적으로 늘렸다.


그러나 이러한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는 결국 미국과의 무역 불균형을 심화시켰다. 미국은 자국의 무역 적자를 해소하고 달러 강세를 완화하기 위해 일본의 엔화 절상을 요구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플라자 합의(Plaza Accord)였다.


사진출처:unsplash


합의 이후 일본 엔화는 급격히 절상되었다. 1985년 1달러당 240엔 수준이던 환율은 2년 만에 120엔대로 떨어졌다. 이는 곧바로 일본 수출 경쟁력의 급락으로 이어졌다. 수출품의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비싸지자 해외 수요가 급감했고, 일본의 제조업체들은 타격을 받았다. 수출이 둔화되자 일본 경제는 경기 침체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경기 둔화를 막기 위해 금리를 대폭 인하하고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시행했다. 시중에 유동성이 넘쳐나면서, 돈은 실물경제가 아닌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었다. 도쿄 땅값은 폭등했고, 닛케이 지수는 1983년 1만 엔대에서 1989년 3만 9천 엔을 돌파했다. 사람들은 “도쿄 땅을 팔면 미국 전역을 살 수 있다”는 말을 할 정도로 과열된 투기 열풍에 휩싸였다.


하지만 1990년대 초, 일본은행이 과열된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면서 거품은 순식간에 꺼졌다.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고, 은행은 부실채권에 시달렸다. 수많은 기업이 도산했고, 일본은 장기적인 경기 침체에 빠졌다. 이후 일본은 약 10년 이상 성장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잃어버린 10년(실제로는 30년)’을 맞이했다.


사진출처:unsplash


플라자 합의 이전, 일본은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하며 미국을 위협하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합의 이후 엔고(円高)는 일본의 수출 기반을 붕괴시켰고, 무리한 경기 부양은 자산 버블을 초래했다.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은 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졌고, 지금까지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플라자 합의는 일본 경제의 분기점이자, 호황에서 불황으로 전환된 결정적 계기였다. 미국의 달러 약세 전략은 일본의 수출호황을 꺾었고, 그 여파는 수십 년간 이어지는 경제 침체로 돌아왔다. 즉, 플라자 합의는 한 나라의 환율 조정이 단순한 숫자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한 국가의 경제 구조와 역사까지 뒤흔들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제2의 플라자합의, 이번 타깃은 중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하기 전, 미국 경제는 이미 제조업의 쇠퇴와 무역적자 확대, 일자리 감소 등으로 예전과 같은 경제적 위상을 잃고 있었다. 세계화가 가속화되는 동안 미국의 산업 경쟁력은 점차 약화되었고, 특히 중국은 기술력과 생산력에서 빠르게 미국을 추격하며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이에 트럼프는 환율이 아닌 ‘관세’라는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의 대표적 슬로건 “Make America Great Again(MAGA)”처럼, 트럼프의 목표는 명확했다. 미국의 제조업 부활과 산업 주도권 회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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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1985년 플라자 합의에 빗대어 ‘제2의 플라자 합의’, 혹은 ‘마러라고 합의(Mar-a-Lago Accord)’를 추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그 예상을 뒤엎고 외교적 협상 대신 관세전쟁(trade war)을 선택했다. 그는 정책적 조정이 아닌 직접적인 경제 압박을 통해 미국 산업을 보호하고, 글로벌 경제 질서를 다시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 했다.


트럼프의 관세 공격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중국이었다. 그는 대규모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중국산 제품의 수입을 억제하고, 중국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려 했다. 이는 일종의 “경제적 경고장”이었으나, 중국은 물러서지 않고 맞대응에 나섰다. 결국 미중 간 무역 분쟁은 양국의 관세 보복으로 확대되며 세계 경제 전체에 파급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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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흐름은 1980년대 플라자 합의 당시 미국이 일본을 압박하던 방식과 유사하다. 당시 미국은 엔화 절상을 통해 일본의 수출 경쟁력을 낮추려 했고, 이번에는 관세를 무기화해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의 쇠퇴한 제조업을 되살리고, 기술 패권을 다시 확보하기 위해 중국의 성장 속도를 늦추려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즉, 플라자 합의가 일본을 환율로 압박해 미국 산업을 보호한 사건이었다면, 트럼프의 관세전쟁은 중국을 상대로 한 ‘현대판 플라자 합의’라 할 수 있다. 환율 대신 관세, 협약 대신 실력행사를 택했을 뿐, 근본적인 목적은 동일하다. 미국의 경제 패권 수호다.


결국 이러한 움직임은 쇠락한 미국의 제조 기반을 되살리고,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새로운 패권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플라자 합의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불러왔듯, 트럼프의 관세전쟁 또한 중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촉발시키며 글로벌 경제 질서에 장기적인 영향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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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권예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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