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체인타임스=김혜선기자] 둘레길 산책 시간. 팔에 러브버그 한 마리가 앉았다. 날이 더워지면서 점점 극성을 부리는 모양이다. 정식 이름은 붉은등우단털파리지만, 암수 한 쌍이 꼬리를 맞댄 채 함께 날아다니는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러브버그’라 부른다. 반가움보다는 불청객에 가까운 이름이다. 팔에 붙은 벌레를 털어냈지만, 주변엔 여전히 많았다.
그중 가까이에 붙어 있는 한 쌍이 눈에 들어왔다. 크기 차이가 제법 뚜렷했다. 한 마리는 크고, 다른 한 마리는 작았다. ‘러브버그는 꼭 암수 한 쌍으로만 다니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 차이 때문인지 엄마와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어머니들이 포대기에 아이를 업고 논밭일을 나서던 모습처럼. 언젠가 TV에서 본, 배달일을 하며 거동이 불편한 아이를 업고 다니던 아버지의 모습도 떠올랐다.
내가 근무하는 검진센터에도 종종 그런 장면이 펼쳐진다. 김○○ 할머님은 늘 50대 중반의 아들을 동행하신다. 본인은 청각장애가 있고, 둘째 아들은 지적장애가 있어 항상 함께 다녀야 한다. 어느 날, 아들의 건강검진을 위해 문진표의 항목을 읽어드렸다. 술과 담배 관련 질문을 드리자, 할머님은 이렇게 되물으셨다.
“술 담배할 줄 알면 병신 아니게?”
처음엔 엉뚱한 대답이라 생각했지만, 아들을 직접 보고 나서는 그 말 속에 담긴 현실과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진출처 unsplash]
그럼에도 나는, 할머니는 아들이 술도, 담배도 할 수 있을 만큼 독립적으로 살아가길 바라고 계신다고 느꼈다. 큰아들은 그런 동생과 어머니, 그리고 연로하신 아버지를 돌보느라 삶의 짐이 무거울 것이다. 그럼에도 세 식구가 늘 함께 검진센터에 오시는 모습은 마치 러브버그처럼, 사랑으로 단단히 연결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그 가족은 저소득층의 힘든 가정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그들은 서로에게 온기를 주고받는, 무엇보다 따뜻한 가족이었다. 시인 보들레르는 ‘세상은 상형문자’라고 말했다. 둘레길에서 마주한 러브버그는 그 상형문자처럼, 한 가족의 따뜻함을 나에게 해석하게 해주었다.
일상은 반복되기에 때론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그 지루함은 평안함의 다른 이름이다. 특별한 사건이 없기에 무료할 뿐, 무탈한 하루가 지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시인은 그 평온한 일상을 번역하고 해독함으로써 생명을 불어넣는다. 나 역시, 둘레길에서 만난 ‘러브버그’라는 상형문자를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
“사람들이 스스로 ‘난 흙수저야’라고 프레임을 씌우지 않았으면 좋겠어. 금은 치장하는 데밖에 쓰이지 않지만, 흙은 생명을 잉태하고 키우잖아. 흙이 훨씬 더 가치 있는 거야.”
배우 조민수 씨의 말이다. 고명환 씨의 책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가져야 할 부에 대하여』에 실린 이 구절은, 자신을 낮추는 수저론에 반기를 들고 ‘흙’의 생명력을 통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생명이 자라는 곳, 그곳이 바로 진짜 부의 자리라는 그녀의 해석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사람의 삶은 얼핏 보면 비슷비슷하지만, 그 해석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 러브버그를 ‘기괴한 벌레’로만 여길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그 모습에서 한 가족의 애틋한 정을 떠올릴 수도 있다.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고 했다. 그렇게, 나의 시선과 해석의 폭은 오늘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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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김혜선기자]
[밸류체인타임스=김혜선기자] 둘레길 산책 시간. 팔에 러브버그 한 마리가 앉았다. 날이 더워지면서 점점 극성을 부리는 모양이다. 정식 이름은 붉은등우단털파리지만, 암수 한 쌍이 꼬리를 맞댄 채 함께 날아다니는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러브버그’라 부른다. 반가움보다는 불청객에 가까운 이름이다. 팔에 붙은 벌레를 털어냈지만, 주변엔 여전히 많았다.
그중 가까이에 붙어 있는 한 쌍이 눈에 들어왔다. 크기 차이가 제법 뚜렷했다. 한 마리는 크고, 다른 한 마리는 작았다. ‘러브버그는 꼭 암수 한 쌍으로만 다니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 차이 때문인지 엄마와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어머니들이 포대기에 아이를 업고 논밭일을 나서던 모습처럼. 언젠가 TV에서 본, 배달일을 하며 거동이 불편한 아이를 업고 다니던 아버지의 모습도 떠올랐다.
내가 근무하는 검진센터에도 종종 그런 장면이 펼쳐진다. 김○○ 할머님은 늘 50대 중반의 아들을 동행하신다. 본인은 청각장애가 있고, 둘째 아들은 지적장애가 있어 항상 함께 다녀야 한다. 어느 날, 아들의 건강검진을 위해 문진표의 항목을 읽어드렸다. 술과 담배 관련 질문을 드리자, 할머님은 이렇게 되물으셨다.
“술 담배할 줄 알면 병신 아니게?”
처음엔 엉뚱한 대답이라 생각했지만, 아들을 직접 보고 나서는 그 말 속에 담긴 현실과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진출처 unsplash]
그럼에도 나는, 할머니는 아들이 술도, 담배도 할 수 있을 만큼 독립적으로 살아가길 바라고 계신다고 느꼈다. 큰아들은 그런 동생과 어머니, 그리고 연로하신 아버지를 돌보느라 삶의 짐이 무거울 것이다. 그럼에도 세 식구가 늘 함께 검진센터에 오시는 모습은 마치 러브버그처럼, 사랑으로 단단히 연결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그 가족은 저소득층의 힘든 가정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그들은 서로에게 온기를 주고받는, 무엇보다 따뜻한 가족이었다. 시인 보들레르는 ‘세상은 상형문자’라고 말했다. 둘레길에서 마주한 러브버그는 그 상형문자처럼, 한 가족의 따뜻함을 나에게 해석하게 해주었다.
일상은 반복되기에 때론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그 지루함은 평안함의 다른 이름이다. 특별한 사건이 없기에 무료할 뿐, 무탈한 하루가 지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시인은 그 평온한 일상을 번역하고 해독함으로써 생명을 불어넣는다. 나 역시, 둘레길에서 만난 ‘러브버그’라는 상형문자를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
“사람들이 스스로 ‘난 흙수저야’라고 프레임을 씌우지 않았으면 좋겠어. 금은 치장하는 데밖에 쓰이지 않지만, 흙은 생명을 잉태하고 키우잖아. 흙이 훨씬 더 가치 있는 거야.”
배우 조민수 씨의 말이다. 고명환 씨의 책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가져야 할 부에 대하여』에 실린 이 구절은, 자신을 낮추는 수저론에 반기를 들고 ‘흙’의 생명력을 통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생명이 자라는 곳, 그곳이 바로 진짜 부의 자리라는 그녀의 해석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사람의 삶은 얼핏 보면 비슷비슷하지만, 그 해석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 러브버그를 ‘기괴한 벌레’로만 여길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그 모습에서 한 가족의 애틋한 정을 떠올릴 수도 있다.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고 했다. 그렇게, 나의 시선과 해석의 폭은 오늘도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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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 = 김혜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