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교육 불안, 자녀의 비인지능력으로 점검하자 | 밸류체인타임스 ​

연하진 칼럼니스트
202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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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연하진 칼럼니스트] 지난 2월, 대치동 학부모를 풍자한 ‘제이미맘’ 영상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영상 속 엄마는 4세 자녀를 영어 이름 ‘제이미’로 부르며 수학 학원에 데려다주고, 품격 있는 말투에 영어를 자연스럽게 섞으며, 명품으로 휘감았다. “현실 고증이 완벽했다”라는 댓글이 만연했다. 영상이 화제가 되자, 제이미맘이 입고 있던 고가 브랜드 패딩이 중고 거래 매물로 쏟아져 나오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일각에서는 일부 학부모들이 해당 패딩을 입는 것을 꺼린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같은 시기 ‘4세 고시’, ‘7세 고시’라 불리는 대치동 영어학원의 실태가 공중파 방송을 타면서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7세 아이들에게 영어 단어 1,800개를 달달 외우게 해야 한다는 학원 원장의 설명은, 아직 놀이가 중심이어야 할 아이들에게 부과되는 학습량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고사리 손으로 작성한 영어 에세이는 고등학생 수준의 완성도를 보일 정도였다.  



급기야 지난 3월엔 학부모 단체, 학자, 교육 전문가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같은 극단적인 선행학습은 심각한 아동학대"라며 국가 차원의 대응을 촉구했다. 반면, 부모만을 비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공교육만으로 자녀의 미래를 준비하기 어렵다는 사회적 불안이 이 같은 교육 과열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2022년 PISA(국제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에서 한국은 창의적 사고력 부문에서 64국 중 세계 2위를 기록했지만, 그에 대한 자아효능감은 49위로 매우 낮았다. 이는 학생들이 높은 역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치열한 입시 중심의 교육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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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사교육과 아동 정신건강의 상관관계 

과거부터 “영어유치원 10곳이 생기면 소아정신과 1곳이 생긴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과도한 조기교육은 아동 정신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문제는 교육 기관 그 자체보다, 자녀가 뒤처질까 불안해하는 부모의 불안 심리와 강박적 양육 태도다. 아동은 발달 수준에 개인차가 크고, 영어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면 부정적인 자아개념과 감정적 어려움을 일찍 겪을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서울 강남·서초·송파 지역에서의 9세 이하 아동의 우울증 및 불안장애 관련 건강보험 청구 건수가 서울시 25개 자치구 평균을 몇 배나 상회했다. 서울시교육청이 공개한 유아대상 영어학원 현황 자료에서도 지난해 이 지역의 유아 대상 영어학원 수는 나머지 자치구의 평균의 두 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조기 사교육과 아동 정신건강 사이에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김붕년 서울대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자신의 저서 『4~7세 조절하는 뇌, 흔들리고 회복하는 뇌』에서 영유아기의 과도한 학습이 오히려 뇌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뇌 발달 전문가이자 진료 대기만 3년에 이른다고 하는 그는, "4-7세는 전두엽 특정 부위와 감정을 조절하는 대뇌 연결망이 만들어지는 시기”라며, 이 시기에 아이가 원하지 않는 과도한 학습을 받으면 오히려 정서 발달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지능력에 치중한 교육

우리나라 조기교육은 주로 인지능력 향상에 집중돼 있다. 인지능력이란 지식 습득, 이해력, 사고력, 학습, 기억, 추론 등의 지적 기능을 뜻한다. 예를 들어 IQ나 수리 논리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이 대표적이다. 반면 비인지능력은 인지능력과는 대조적으로 사람이 성과를 내거나 행복하게 사는데 필요한 능력이다. 끈기, 인내, 자기 조절력, 사회 소통 등이 비인지능력에 포함되며 객관적인 측정과 평가가 어렵고 단기간에 형성되기 어려워 학원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다. 



인지능력은 수치로 결과가 드러나기 때문에 학원 입장에서는 효과를 보여주기 쉽다. 그러나 부모는 그 결과를 보고 안심하는 대신, 비인지능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의 신호를 더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인지 위주 교육은 아이에게서 놀이와 부모와의 관계 형성, 감정 교류의 기회를 빼앗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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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지능력, 미래 교육의 핵심

2000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시카고대학교 제임스 헤크먼 교수는 유아 교육의 권위자다. 헤크먼 교수는 비인지능력 발달이 학업 성취는 물론, 향후 수입과 사회적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2010년 방한 당시에도 “한국의 사교육은 교육 효율은 물론 사회 불평등을 고착화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올바른 조기교육이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감정과 성격을 건강하게 길러주는 과정이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자동화의 가속화로 인해 노동 시장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요구되는 핵심 역량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흐름은 2017년 세계은행이 주최한 국제 교육 컨퍼런스에서도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세계은행은 STEP 설문조사를 통해, 끈기, 성실성, 의사결정력 등 비인지능력이 교실 안팎에서 학생의 성취도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노동 시장에서 임금 상승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서울의 한 사립초등학교에서 17년간 교편을 잡은 교육 전문가 김선호 교사는 저서 『내 아이는 괜찮을까』에서 AI가 인간보다 빠르게 정보를 습득하는 시대에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이 없다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불투명하다고 경고한다. 그는 비인지능력을 갖춘 아이들은 자기주도성과 높은 자존감을 바탕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도전한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는 선행학습이나 영어 유치원 같은 인지 교육보다, 감정과 사회성을 기르는 비인지능력 교육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몇 해 전 방송을 통해 소개된 배우 정은표 부부의 가정은 비인지능력을 길러주는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부부 관계가 원만하고 가정 분위기가 밝아 가족 전체가 높은 행복감을 누렸다. 그 영향은 세 자녀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졌고, 별도의 학습 지도를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안정된 정서 속에서 스스로 책을 읽고 공부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정은표 배우는 당시 초등학생이던 자녀들이 지식 학습에만 치우치지 않고, 충분히 놀며 잘 자고, 건강한 생활리듬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애썼다. 그의 이러한 교육 신념은 아들이 이후 서울대학교에 합격하면서 어느 정도 증명되었다. 



아이들이 진짜 원했던 것

상담 현장에서 보면, 초등학교 시절까지 성적이 좋고 무난하던 아이들이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되며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춘기가 본격화되거나 암기 중심의 학습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과목을 접하게 되면서 무기력이나 부적응을 겪는 사례가 많다. 



특히 이런 청소년들 가운데는 어린 시절 ‘학원 뺑뺑이’에 시달리며 정작 놀 시간, 쉴 시간이 부족했던 아이들이 많다. 이들에게 당시 가장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물어보면, 하나같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실컷 놀고 싶었다”고 말한다. 



비교와 불안은 부모를 조급하게 만들고, 자녀에게도 불안을 전이시킨다. 누군가 자녀에게 어떤 교육을 시킨다고 해서 그들과 동일시하려는 마음이 든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왜 이 선택을 하려는가? 진짜 이 아이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



자녀가 단지 성적을 잘 받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어울리고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지를 확인해보자. 그 속에 진짜 교육의 방향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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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체인타임스=연하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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